한입 미술관

뭉크, 그는 왜 절규해야만 했나

뭉크, 그는 왜 절규해야만 했나 뭉크, 그는 왜 절규해야만 했나
뭉크, 그는 왜 절규해야만 했나 뭉크, 그는 왜 절규해야만 했나
  • 이동통신망을 이용하여 영상을 보시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네트워크 상황에 따라 재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영상 재생이 안 될 경우FAQ > 멀티미디어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뭉크, 그는 왜 절규해야만 했나 뭉크, 그는 왜 절규해야만 했나

비극의 서막이 된 상처투성이 어린 시절

뭉크는 1863년 노르웨이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의관이었고 어머니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뭉크가 고작 다섯 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몇 년 후 어머니 역할을 대신했던 누나마저 결핵으로 사망한다. 뭉크 또한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났다. 만성 기관지염을 달고 살았고, 빈혈로 쓰러지기 일쑤였다. 연이어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 뭉크,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아버지는 우울증에 걸렸고, 증상이 심해질수록 종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집에 들어오면 기도를 하느라 가정에 소홀했고, 이 때문에 가정 형편은 계속해서 나빠졌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어머니가 먼저 죽은 것을 아이들의 죄 때문이라며 다그쳤고, 저녁식사 때마다 어머니의 유언장을 계속해서 읽어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뭉크는 너무나도 안타깝고 상처가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뭉크의 재능을 응원해준 단 한 사람

그나마 다행인 건 뭉크에게도 정신적으로 지탱해 줄 이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누나가 죽고 그를 챙겨준 유일한 사람, 뭉크에게 이모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 그런 이모의 모습을 그린 ‘카렌 이모’의 배경에는 뭉크의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청아한 청색 나무들이 서 있고, 이모의 얼굴은 밝은 햇살을 받고 있다. 뭉크는 류머티즘 열병과 우울증, 대인기피증까지 겹쳐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기 때문에 친구가 없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그 모든 것을 잊을 만큼 행복해했다. 그의 아버지는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뭉크의 재능을 알아본 이모는 그의 꿈을 지원해주었다. 덕분에 그는 노르웨이 왕립 드로잉 및 예술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노르웨이 화단은 사실주의가 주류였고, 뭉크 또한 처음에는 그 스타일을 따라갔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린 시절 겪은 내면의 아픔과 고통은 그를 계속해서 따라다녔고, 사실주의로는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뭉크의 감정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세계

1885년 작품 ‘아픈 아이’. 그림 속에는 결핵으로 누워있는 누나의 모습이 등장한다. 누나는 흰 베개에 기대어 앉아있고, 옆에는 그의 이모가 누나의 손을 잡으며 위로해 주고 있지만 지켜보는 것이 괴로워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뭉크의 누나는 건너편에 있는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커튼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의 첫 제목은 ‘습작’이었는데, 뭉크는 결국 이 작품을 평생 완성하지 못했다. 평생 잊지 못한 누이의 죽음은 그에게 완성할 수 없는 영원한 습작이었을 것이다. 붓 터치가 그대로 다 보이는 거친 작품에 평론가들은 곰팡이 같다, 덜 그린 작품 같다며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뭉크의 감정은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듯 하다. 예술이란 꼭 아름다워야 하고 규칙에 맞게 그려야 하는 것이 아님을 뭉크는 이 작품 하나로 보여주고 있다.

붉은 노을 아래, 절규의 탄생

뭉크가 파리 유학을 떠났던 1889년, 그에게 또 한 번의 죽음이 찾아오는데 아버지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비록 자신을 괴롭게 했던 아버지였지만 부모님을 모두 잃은 슬픔은 참기 힘든 아픔이었다. 이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뭉크는 어느 날 친구들과 크리스티아니아 근교를 걷다가 붉은 노을이 지는 것을 보게 됐고, 그것이 마치 핏빛 같다고 느낀다. 그때 빈혈증상이 나타나고, 그는 강한 자연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휘청거린다. 뭉크는 이때의 강렬한 기억을 그림으로 그리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절규’의 탄생이다. 붉은 하늘에 요동치는 배경은 당시 그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절규’는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인데, 표현주의는 내면에 있는 강렬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흔히들 작품 속 인물이 비명을 지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자연의 비명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인물의 표정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는 작품이다

정우철

정우철

EBS 클래스 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
<알폰스 무하>, <툴루즈 로트렉>, <앙리 마티스> 展 등

  •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21-06-16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