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따뚜이>의 주인공 생쥐 ‘레미’가 좋은 재료들을 맛보며 중얼거린다.
“음~ 각각의 풍미가 참 독특해. 그런데 그 풍미들이 섞이면
또 다른 새로운 맛이 만들어진단 말이지”라고 말이다.
창조적 감각이 필요한 블렌딩이라는 작업을 참 잘 알고 있는 생쥐다.
재료가 뛰어나다면 각각을 개별적으로 먹어도 맛있을텐데,
굳이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겠다는 욕구를 가진 레미같은 누군가가 바로 ‘마스터 블렌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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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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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블렌더 중에서, 제일 먼저 커피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그 전에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커피는 생두(green bean)를 로스팅(열을 가해 일어나는 화학변화) 해야만 커피다운 맛과 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로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혹은 어느 정도까지 로스팅을 했는지에 따라서도 향미에 큰 변화가 생긴다. 당연히 좋은 원료를 가지면 어느 정도는 좋은 맛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로스팅으로 커피를 망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디까지나 좋은 원료를 가지고 적절한 로스팅을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한다.
커피에 있어서 블렌딩은, ‘서로 다른 생산지(산지)의 커피를 섞는다’가 아닌, ‘어떤 향미를 만들까’의 접근 방식으로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만들고 싶은 커피 향미의 이미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커피도 농산물이라서 1년 내내 똑같은 향미를 제공할 수가 없다. 좋은 쌀이 항상 햅쌀의 향과 찰기로 감동을 줄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그래서 이미 정해진 블렌딩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생산국이 달라지더라도 가까운 향미의 생산국 생두를 찾아서 활용할 수 있는, 폭넓은 맛의 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페셜티 커피’라고 불리는 고품질의 생두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각 생산국가의 여러 산지 콩들이 집하장에 모이면, 작황이 좋은 콩도 그저 그런 콩도 다 섞여서 세분화되지 않은 생산지의 기준만으로 판매되었다. 그러다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옥션 판매나 직접 거래가 가능해지면서(예를 들어 과테말라의 농장주에게 한국의 구매자가 무역업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구매를 할 수 있는 ‘다이렉트 트레이드’가 가능해짐) 이로 인해 그 전과는 달리 생산국뿐만 아니라 생산농원, 품종, 정제 방법까지도 상세히 알 수 있는 시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가 사용하는 생두의 생산 이력을 알 수 있다는 환영할 만한 점이 생긴 이면에 싱글 오리진이 아니면 커피가 아니라는 풍조도 동시에 생겨나게 했다. 1화에서도 언급했지만, 커피회사를 오랫동안 운영하고 있는 베테랑 조차도 싱글 오리진은 ‘섞을’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정말 좋은 재료는 소금만 있으면 된다. 굳이 이것 저것 섞어서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라는 논리다. 물론, 소금만 있으면 그 재료의 품질과 특징을 잘 알 수 있고,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개성이 흐려지는 경우에는 섞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간장을 함께 먹을 때나 와사비를 곁들였을 때의 맛의 변화는 포기할 것인가? 하나의 악기로도 완벽한 연주가 있고, 이들이 어우러져서 새로운 연주가 완성되었을 때의 웅장함과 감동은 그야말로 또 다른 세계인 것이다.
커피 역시 하나의 생두만으로도 충분한 맛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여러 콩들이 적절히 어우러져 풍기는 ‘멋진 향연의 한 잔’이 있다. 뛰어난 품질의 커피는 그대로 마시는 것이 좋은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커피를 다루는 이가 ‘주체적으로 가져야 할 향미’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상상력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참신하고 새로운 맛의 세계를 만든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타계한 故 모리미츠 무네오는 다이보커피의 다이보 가쓰지와 더불어 융드립을 40년 전문으로 해 온 일본의 유명한 커피장인이다. 블렌딩을 위해 싱글 오리진에 대한 연구를 평생토록 이어갔다. 특히 자신이 추구하는 블렌딩 커피의 맛과 향을 완성하기 위해 커피의 고향 예멘과 에티오피아의 오지를 수 차례 답사할 정도였다. 그의 커피숍의 메뉴는 싱글로 예맨모카(이브라힘 모카)가 제공될 뿐, 블렌딩커피 5종류가 메인으로 제공되고 다른 단품은 없다. 다이보커피의 메뉴 역시 블렌딩 커피를 추출 농도만 다르게 하여 주문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메뉴만 봐도 그들의 고집스러움은 충분히 전해져 온다. 블렌딩 커피에 대해 다이보 가쓰지는 “최초의 이미지에 조금씩 가까워지도록 경험에 의지하여 반복하고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이미지 즉 전달하고픈 블렌딩의 주제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 것일까. 그들은 왜 싱글 오리진의 이름으로 판매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왜 굳이 번거로운 일들을 선택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다음화에 커피에 영혼을 담는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더 자세히 소개하려고 한다.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 대표
<커피교과서>, <커피집>, <커피과학>, <커피세계사>,
<스페셜티커피 테이스팅>, <향의 과학> 등 번역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