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불어넣는 기술자

영혼을 불어넣는 기술자

마스터 블랜더의 시대가 온다 마스터 블랜더의 시대가 온다

바이올린 독주만으로도 훌륭한데, 사람들은 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들을까.
제비꽃 향이 좋다면, 그 향만으로 향수를 만들면 될 것을 왜 굳이 다른 향을 섞을까.
맛과 향이 뛰어난 싱글 오리진 커피는 섞을 필요가 없다는데,
굳이 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블렌딩을 만드는 회사 혹은 사람들이 있을까.
도대체 블렌딩이란 무엇이며, 사람들은 왜 블렌딩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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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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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블랜더의 시대가 온다 마스터 블랜더의 시대가 온다

커피에서 시작된 ‘최고의 손’ 찾기

“존재하는 것의 영혼은 향기이다.” 향수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 유명한 문장은, 내가 세상의 많은 매혹적인 향에 관심을 갖게 하고, 또 움직이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좋은 향을 가진 것들이 다 좋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커피 향을 맡을 때면,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을까 하고 감상에 빠지기 일쑤였다. 20대에 시작된 나의 일본 유학 시절은 온통 커피였다. 대학에서는 다른 공부를 했지만, 지인들은 내 전공을 커피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한 병 혹은 한 잔에 담긴 그 아름다운 영혼들을 만나기 위해 여러 나라의 생산지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이를 다루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수 없이 발품을 팔았다. 그러다 이들의 궁극의 정점에는 ‘최고의 손’ 즉, 영혼을 불어 넣는 기술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존재들

마스터 블렌더(Master Blender)란, 원래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도 위스키를 제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최고의 숙련된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마스터 블렌더는 ‘노우징(nosing)’이라는 향을 맡는 작업을 주로 하는데, 원료인 몰트를 만들어 배합하는 과정, 증류된 원주를 만드는 과정, 저장된 원주의 상태를 파악하는 과정, 수 년 혹은 수십 년 동안 보관된 원주를 배합하여 상품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기술과 경험을 가진 존재다. 꼭 위스키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맛과 향에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하는 장인들을 그간 많이 봐왔다. 나는 이번 연재에서는 이렇게 ‘영혼을 불어 넣는 작업’을 하는 귀한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들을 마스터 블렌더라고 부르려 한다.

  • 마스터 블랜더의 시대가 온다
    스코틀랜드 위스키성지, 더프타운, 2009년 8월
  • 마스터 블랜더의 시대가 온다
    위스키 원주 저장 오크통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드는 블랜딩의 세계

블렌딩이란 무엇일까. 이것 저것 섞어서 그럴싸하게 쓸만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만들고자 하는 맛과 향의 분명한 이미지가 있고, 이유 있는 선택을 통해 그 이미지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창작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블렌딩을 통해 작게는 원료들의 특징을 살리면서 새로운 향미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크게는 자연환경과 시간까지도 담아낸다. 이는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어야만 가능한 창작의 세계로, 예술의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 커피회사를 30년 운영하고 있는 지인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정말 좋은 재료는 소금만 있으면 된다. 굳이 이것 저것 섞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커피도 그렇다. 좋은 싱글 오리진을 섞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정말 그럴까.

바이올린 독주만으로도 훌륭한데,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듣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비꽃 향이 좋다면, 그 향만으로 향수를 만들면 될 것을, 왜 굳이 다른 향을 섞는 것일까. 우수한 품종의 포도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와인을 만들면 될 텐데, 왜 품종의 배합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맛과 향이 뛰어난 단종(싱글 오리진) 커피라면 섞을 필요가 없다는데, 굳이 왜 이름을 걸고 블렌딩을 만드는 회사 혹은 사람이 있는 것일까. 더 번거롭고 복잡할 텐데 말이다.

그럼 왜 블렌딩을 할까. 블렌딩에는 부족한 것을 보완하기 위한 작업도 있지만, 단독으로도 훌륭한 것을 모아서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 고도의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이 둘은 다른 세계인 것이다.

마스터 블랜더의 가치와 철학을 찾아 떠나는 여정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도전과 그러한 작업은 어떤 분야에도 존재하며, 이를 통해 많은 상품과 작품들이 세상에 탄생한다. 그러나 아무리 공장이 기계화 되어도, ‘유일하게’ 사람이 개입하여 결정하는 과정이 바로 블렌딩이다. 마스터 블렌더의 블렌딩 작업은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을 사람(기술자)이 개입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는 용감한 도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가치와 과정이 생략되고 생산성과 효율성이 중시되는 건조한 시대이기에, 더더욱 창조적인 정신세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마스터 블렌더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가치와 철학을 함께 느껴보고자 한다.

㈜후지로얄코리아 대표 : 윤선해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 대표
《커피교과서》, 《스페셜티커피테이스팅》, 《커피과학》 등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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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3-1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