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5년, 고대 로마의 1인자 카이사르는
이베리아 반도 히스파니아 지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난다.
전투를 준비하는 도중 한 앳된 청년이 카이사르를 찾아오는데,
그의 정체는 바로 카이사르 누나의 손자인 옥타비우스였다.
병을 앓고 있는 중에도 험한 전쟁터를 찾아온 옥타비우스를 보고 카이사르는 그의 투지에
크게 감탄한다. 그리고 이 청년은 훗날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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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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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4년, 고대 로마의 최고 사령관이던 카이사르가 로마의 권력을 독점하자, 이에 불만을 가진 원로원 위원들이 공모해 카이사르를 암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로마의 1인자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 모두의 관심이 모아졌고, 대부분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자 전쟁 영웅인 안토니우스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남긴 유언장에서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카이사르는 19세밖에 되지 않은 옥타비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고, 그를 자신의 양자로 삼는다는 유언을 남겨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다.
카이사르에게 지명된 후계자라는 사실 외에는 모든 것이 열세였던 옥타비우스는 안토니우스에게 분할 통치를 제안한다. 이에 응한 안토니우스는 부유하고 평화로운 동방 지역을 맡고, 옥타비우스는 정적으로 둘러 쌓인 서방 지역을 맡는다. 이러한 옥타비우스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다. 로마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마에 머물며 시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후 이집트로 떠난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고, 반면 로마에서 착실히 힘을 모은 옥타비우스는 그를 반역자로 규정하고 일생일대의 전쟁을 벌인다.
옥타비우스는 장군으로서 역량과 경험이 모두 부족했지만, 그의 곁에는 불세출의 장군 아그리파가 있었다. 아그리파의 활약 덕분에 옥타비우스는 큰 승리를 거두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전쟁에 패한 이집트인들은 옥타비우스가 잔인한 복수를 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자비를 베풀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선언하자 그들은 옥타비우스를 크게 환대했다. 이렇게 전쟁에서 승리한 옥타비우스는 비로소 로마의 1인자가 되었고, ‘존엄자’라는 의미를 지닌 ‘아우구스투스’로 불리게 된다.
아우구스투스의 뛰어난 통치력 덕분에 로마는 평화를 누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에게도 커다란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뒤를 이을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딸 율리아를 아그리파 장군과 억지로 결혼하게 하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2명을 양자로 입양했다. 하지만 2명 모두 일찍 죽게 되자 다시 의붓아들 티베리우스와 친딸을 억지로 결혼시키지만, 딸의 난잡한 사생활로 인해 결혼은 파경을 맞는다. 결국, 아우구스투스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의붓아들 티베리우스가 그의 뒤를 잇게 된다.
MBTI는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한 자기 보고식 성격유형지표로, 다음과 같이 4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4가지 지표를 조합하여 총 16개의 성격 유형을 구분한다.
‘세상의 소금형’이라 불리는 ISTJ 유형은 대체로 빈틈이 없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끝까지 완수하고자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에 대한 충실한 수행력이 발달한 유형이다. 반면, 모든 일을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실행하기 때문에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한 시도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주변 사람들이 본인의 감정을 느끼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표현 방식보다 더 크고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또한, 나의 경험이 가장 좋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고, 지속적으로 경험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