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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효명세자의 장례

미술이 술술 그림으로 보는 효명세자의 장례 미술이 술술 그림으로 보는 효명세자의 장례

왕실 행사의 주요 장면을 그린 그림을 ‘반차도(班次圖)’라고 하는데,
효명세자의 발인 당일 사용된 <효명세자발인반차도>가
경매에 출품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 그림은 중요한 기록 수단이었죠.
그림의 주인공이 효명세자이기에 역사적 자료로 더욱 의미있는
<효명세자발인반차도> 속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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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미술이 술술 : 그림으로 보는 효명세자의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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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소개

  • 1. 문예 군주를 꿈꾸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한 효명세자

    1809년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원자로 창덕궁 대조전에서 탄생한 효명세자. 효명(孝明)은 효성이 지극하고 영민하다는 의미로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정조와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1812년 왕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세자는 이마가 솟은 귀한 상이었고 용의 눈동자로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 궁내 모든 이들이 정조(장효왕)와 흡사하다고 입을 모았다”고 <순조실록>에 실려 있습니다.

    문예 군주를 꿈꾸는 효명세자는 아버지 순조의 큰 관심과 기대 속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1827년 19세가 된 효명세자는 건강이 악화된 순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시작했으며 문예를 숭상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행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효명세자는 정조에 버금갈 정도로 문학, 예술 분야의 성취를 이루지만 안타깝게도 대리청정 3년만인 1830년 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아들 헌종이 임금이 되면서 효명세자의 뜻을 기려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이후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오르면서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다시 한번 추존되는데, 특이한 점은 효명세자가 추존왕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27대 임금 중 죽은 뒤에 공덕을 칭송하는 ‘시호(諡號)’가 119자로 가장 길다는 것입니다.

  • 2. 도감의 명칭에 담긴 의미

    왕실 행사의 기록화인 반차도는 행사 참여 인원, 의장기의 모습, 가마 배치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의궤에 수록된 반차도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행사 당일 준비과정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독립반차도도 있는데, 이는 참여 인원을 미리 파악하고 물품을 배치해 봄으로써 행사 당일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제작된 것입니다. 경매에 출품된 작품은 독립반차도로서, 규장각에 소장된 <효명세자장례도감의궤>에 실린 반차도와의 비교를 통해 <효명세자발인반차도>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본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반차도에 나타난 도감의 명칭입니다. 본래 왕과 왕비가 사망하면 도감의 명칭은 ‘국장도감(國葬都監)’이며 왕세자가 사망했을 경우 ‘예장도감(禮葬都監)’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작품에 등장하는 도감의 명칭이 ‘국장도감’이 아닌 것을 볼 때 반차도의 주인공은 왕이나 왕비가 아닌 왕세자로 파악됩니다. 주목할 사항은 본 작품에는 ‘예장도감’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장례도감(葬禮都監)’을 사용했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작품의 주인공이 효명세자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세자나 세자빈 후궁의 예장에서 장례도감이라고 한 이는 수빈(綏嬪, 정조의 후궁)과 효명세자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효명세자의 장례도감은 수빈과 달리 제조 3원, 도청 2원, 낭청 6원으로 국장도감과 동일하게 구성되어 효명세자의 장례도감은 다른 세자의 예장도감보다 격을 높이기 위해 명칭을 변경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효명세자의 도감에 특별한 칭호를 한 것은 아버지 순조가 재위에 있는 동안 그의 예장을 치렀기에 부정(父情)의 반영이라 볼 수도 있으며, 당시 신하들 또한 이에 대한 반발이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다른 세자의 예장과 비교해 특별한 의미를 두었다고 생각됩니다. 순조는 효명세자 제문(祭文)에 "아! 하늘에서 너를 빼앗아감이 어찌 그렇게도 빠른가. (중략) 장차 우리나라를 두드려서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인가"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20여년 남짓의 짧은 생애였지만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괄목할 만한 자취와 업적을 남긴 효명세자, 작품을 보며 문예 군주를 꿈꾸었던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합니다.

미술이 술술 그림으로 보는 효명세자의 장례

# 비하인드

효명세자의 이름은 ‘이영’입니다.
일(日)자에 대(大)자를 붙인
‘햇빛대’자로 정했는데
‘영’이라고 발음하라고 해서
‘이영’이 되었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된 <구르미 그린 달빛>은
효명세자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입니다.
극 중 조선시대 꽃미남 왕세자는 배우 박보검이었죠.
살제 효명세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오늘 미술이술술은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에 만나요.

손이천

손이천 경매사

고미술품에 대한 소개와 함께 경매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는 미술품 경매사
  • 케이 옥션 홍보실장
  • MBC <무한도전> 무도드림 경매 진행
  • OtvN <어쩌다어른> 출연
  • MBC <나혼자산다> 헨리편, 헨리 바이올린 자선 경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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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12-2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