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랜드마크이자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물, 에펠탑.
지금은 에펠탑이 없는 파리를 상상할 수 없지만
놀랍게도 건설 당시에는 유명 화가, 음악가, 작가들이
에펠탑의 건설을 비난하고 반대했는데…
파리의 지식인들이 에펠탑을 반대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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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철의 매력에 빠진 구스타프 에펠은 건축가 샤를 네뵈의 비서로 들어가 건축 업무를 익히게 된다. 에펠을 눈여겨본 네뵈는 보르도 가론강 철교의 설계에 투입하는데, 네뵈가 갑자기 은퇴를 하게 되어 에펠이 공사의 책임자가 된다. 에펠은 철강은 목재나 석재와는 달리 건설 도중에 고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철저한 계산을 통해 부품을 정확히 만들고, 이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건축 방법으로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철강 전문가로 명성을 얻게 된 에펠은 전 세계의 다리와 건물들을 짓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특히, 조각가 바르톨디는 거대한 여신상을 지지할 철골을 에펠에게 부탁해 동상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 동상이 바로 뉴욕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다.
자신의 조수와 건축가가 함께 설계한 독특한 모양의 철탑의 가치를 알아보고 특허권을 사들인 에펠은 산업부 장관을 만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을 설계하는 공모전을 제안한다. 준비 중인 만국박람회에 놀랄만한 볼거리를 고민하던 정부는 에펠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모전이 개최된다. 수많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참여한 결과 응모작 중 화강암을 사용한 석탑과 에펠의 철탑이 유력한 후보로 좁혀지고, 최종적으로 에펠의 설계가 당선작으로 선정된다.
정부의 지원금이 전체 예산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지만, 에펠은 20년 동안의 수익을 갖는 조건으로 비용을 부담한다. 유명 지식인들의 반대도 심했다. 예술을 모르는 기술자가 만든 쓸모없는 탑은 파리의 흉물이 될 것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에펠은 기한 내 건축을 마무리 짓고, 박람회 기간 동안 200만명이 탑을 방문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1909년 철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군용 송신탑으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아 철거를 피한 에펠탑은 1930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고, 현재까지 파리의 상징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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