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그 미술관 한 쪽 벽에는 2개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군중과 병사가 전투를 벌이는 왼쪽 작품에는 ‘1808년 5월 2일’,
병사들이 시민들을 처형하는 오른쪽 작품에는 ‘1808년 5월 3일’이라고 적혀 있는데…
1808년 5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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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스페인 사라고사 출신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궁정화가를 꿈꾸며 17살에 마드리드에 오지만 미술아카데미에 연이어 낙방하고, 궁정화가 모집에도 탈락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뒤늦게 귀족들에게 초상화가로 인정 받으면서, 40살이 되어서 비로소 국왕 직속 화가로 임명된다. 고야는 왕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성공적인 시기를 보낸다.
1808년 3월, 잦은 전쟁과 내분으로 쇠약해진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에 점령 당하게 된다. 당시 스페인은 부패한 왕정에 불만이 가득했기에, 프랑스군을 해방군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인 조세프를 스페인 왕으로 내세우자 마드리드 시민들은 크게 반발하며 왕궁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날이 바로 1808년 5월 2일이다.
1808년 5월 2일, 왕궁 앞으로 모여든 시민들과 프랑스군 사이에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된다. 프랑스군은 수백 명의 시민들을 체포해 다음 날 새벽에 113명을 공개 처형하는데, 이로 인해 스페인 전역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전국 곳곳에서 소규모 비정규군이 프랑스군에 대항하는 전투가 벌어지고, 이 때 스페인어로 작은 전쟁이라는 뜻의 ‘게릴라’라는 말의 유래가 시작된다. 이후 6년 동안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프랑스군은 스페인에서 철수한다.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난 스페인에서 프랑스 왕을 따른 자들에 대한 숙청이 시작된다. 당시 궁정화가로 있던 고야 역시 위기에 처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변호 덕분에 처형을 면하게 된다. 고야는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독립전쟁의 계기가 된 1808년 5월 2일과 3일을 화폭에 담는다. 용감하게 맞서 싸운 시민의 모습과 군인들의 비인간성이 생생하게 표현된 고야의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고, 오늘날 고야는 초상화로 유명한 궁정화가가 아닌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내면을 그린 위대한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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