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콜마르.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되었을 정도로
동화 같은 풍경을 지니고 있는 이 도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바닥 곳곳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프랑스의 작은 동화 마을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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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855년, 프랑스 콜마르 출신의 조각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는 이집트에서 고대 건축물과 조각을 보며 거대한 동상을 제작하겠다는 꿈을 키운다. 바르톨디는 수에즈 운하 건설 책임자를 찾아가 운하 입구에 거대한 여신상을 세우자고 제안하지만 거절당하고, 그 자리에는 평범한 등대가 세워지게 된다.
대형 작품들을 제작하며 명성을 얻은 바르톨디는 프랑스의 정치가 “라부라이에”에게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미국의 독립전쟁 승리 100주년을 맞이하여 자유를 상징하는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 수에즈 운하 입구에 세우려고 했었던 동상을 떠올린 바르톨디는 자유의 여신 리버티와 들라쿠르아의 <국민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참고하여 새로운 여신상을 디자인한다.
“세계를 밝히는 자유”라는 수십 미터의 동상을 기획한 바르톨디는, 훗날 파리의 에펠탑을 건축한 “귀스타프 에펠”의 도움을 받아 철골을 제작하고, 그 위에 구리판을 덧대 동상을 제작한다. 그리고 파리박람회에 동상의 머리 부분만 전시하여 부족한 제작비를 모금하는 데 성공한다.
1884년, 비로소 동상이 완성되지만 이를 다시 해체하여 210개의 나무 상자에 담아 미국 뉴욕의 리버티섬으로 옮겨 재조립하게 된다. 1886년 동상이 모습을 드러내자 뉴욕 시민들은 큰 환호로 거대한 여신을 맞이했다. 오른손의 횃불은 자유의 빛을, 왼손의 책은 독립선언서를, 바닥에 밟고 있는 쇠사슬은 노예제도 폐지를, 왕관에 달린 뿔은 자유가 퍼져 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이 작품은 ‘자유의 여신상’이라 불리며, 현재까지 미국의 상징이자 자유의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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