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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대 영화

영화가 말해주지 못한 것들 -『밀레니엄』

밀레니엄, 영화가 말해 주지 못한 것들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를 모두 읽은 독자라면, 탄식할 것이다. 스티그 라르손의 죽음을. “엄청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됐으니 말이다. 『밀레니엄』은 스웨덴 언론인으로 잡지 《엑스포》의 편집장이었던 그가 10부작으로 구상했다. 규모도 규모지만, 생애 첫 장편소설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1세기 걸작으로 꼽힐 수 있는 이 소설은 3편으로 끝났다. 3부까지 원고를 출고한 그는 책이 나오기 6개월 전인 2004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심장마비.
밀레니엄 1권, 밀레니엄 2권, 밀레니엄 3권,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srieg larsson
그로서는 『밀레니엄』이 쓰다만 소설, 하다만 이야기가 됐다. 속단하지 말라. 더구나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겨우 영화 한 편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30%에 불과한 『밀레니엄』이지만 결코 미완성이 아니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1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2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3부)란 부제가 말해주듯 각자 8백 쪽에 달할 만큼 길고 완결된 소설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면서 그것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같은 주인공들이 계속 나와서가 아니다. 폭력에 대한 고발과 저항, 응징이란 커다란 흐름이 신경과 의식을 곤두서게 만들고, 중간 중간 심장을 멎게 하는 사건 속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3부작으로 도중하차해 버린 것이 더욱 아쉽고, 여기저기서 영화로 탐을 내는 것 역시 필연일지 모른다. 더구나 형사나 경찰이나 탐정이 아니면서 사건을 파헤쳐가는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남녀 주인공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 소재인가. 그런데 어쩐다. 결론부터 말하자. 영화에서는 스티그 라르손만한 감독이 유럽에도, 미국에도 없다는 것이 불행이다. 겨우 1부(『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한 편만 보고 섣부르게 판단한 것이라고? 천만에, 결코 속단이 아니다. 영화란 그런 것이다. 한 번 틀을 세우고 나면 다시는 쉽사리 그것을 허물거나 새롭게 바꾸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소셜 네트워크>로 골든글로브 감독상까지 받아 아직도 명장임을 과시한 데이비드 핀처라고 할지라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동시에 2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나는 덴마크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 감독의 작품이고, 또 하나는 데이비드 핀처의 작품이다. 둘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분위기, 서술의 스타일만 조금 다를 뿐, 어차피 원작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원작을 영화적 장치로 크게 변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로 나온 데이비드 핀처의 것이 조금 더 요란하고 대중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요란하고 대중적이란 평가도 원작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아무런 차이나 매력이 아니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정도의 영화를 굳이 두 편이나 보고 비교할 이유가 없으니까.
솔직히 영화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소설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성의 없고,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하다. 우선 소설과 달리 영화는 작품 전체를 이끌고 가는 두 남녀주인공인 잡지 《밀레니엄》의 발행인인 마흔 세 살의 중년의 마이클 블롬크비스트와 20대 여자 천재 해커 리스베르 살란테르의 존재를 각인시켜주지 못한다. 미카엘의 정의감과 진실을 파헤치는 집요함의 원천이 무엇인지, 작고 강마르고 몸에 문신을 한 리스베르의 대인 기피증과 타인에 대한 불신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인물에 대한 이해는 상상의 영역이 아니다. 충분한 근거를 필요로 한다. 소설에는 경제전문기자로서 미카엘의 역사와 어릴 때 정신병원에 감금되었으며, 지금도 법정후견인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보안전문업체의 파트타임 직원인 리스베트의 과거와 어머니가 있다. 영화에는 그것이 없다. 그냥 “지금부터 마이클과 리스베트는 이런 사람이라고 전제합시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따라오십시오”라고 말한다. 영화라고 그 불성실과 불친절까지 관객들의 추리대상으로 삼아서는 아니다. 인물과 영화의 공감과 설득력을 위해서라도 설명이 필요하다. 설록 홈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그는 백년도 더 된 명탐정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고, 마이클과 리스베트는 바로 7년 전에 태어났으며 우리가 처음 만났다.
밀레니엄 포스터
스티그 라르손은 『밀레니엄』을 통해 21세기형 명탐정 콤비의 탄생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단지 명석한 두뇌로 추리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사태를 파악하는 과거 탐정이 아니다. 미카엘은 그야말로 철저한 자료와 정보를 바탕으로 진실을 찾는 기자이고, 리스베트는 바로 어떤 보안장치도 무용지물로 만들고 그 정보를 컴퓨터에서 빼오는 해커이다. 둘은 친구도 연인도 아니다. 그러면서 친구고 연인이다. 우연히 임시 고용주와 조사보조원으로 만난 둘은 몇 차례 육체적 관계를 나누긴 하지만 친구도 연인도 아니다. 그러면서 운명처럼 다시 만나고, 서로의 생명을 구해주는 숙명의 관계가 된다.

1부에서는 둘이서 스웨덴 거대 재벌인 방예르 그룹 집안의 사라진 상속녀에 대한 진실을 찾는다. 3부작까지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차라리 1부는 버리고 2, 3부를 영화로 만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리라. 소설이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주제의식도 뛰어나고, 더구나 주인공 리스베르 자신과 가족에 대한 사건이어서 극적인 긴장과 흥미를 더해 주며, 구성도 치밀하다. 더구나 2부와 3부가 독립적이면서 서로 이어지는 형식이어서 단순히 주인공이 같다는 이유가 아닌 이야기의 연속성에 의한 시리즈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1부부터 시작했다. 그것이 소설에 대한 예의이든, 2부와 3부는 얼마든지 나중에라도 만들 수 있다는 방심이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든, 결과를 놓고 보면 잘못된 선택임은 분명하다.
오플레브와 핀처의 영화가 기대 이하이어서 만은 아니다. 사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소설 자체로도 설득력이 약하다. 물론 나치의 숭배자들인 방에르 가문의 남자들이 과거에 저지른 살인은 충격적이고 끔찍하다. 그것이 하나의 고발로는 의미를 가질지 모르나 40년 전 실종된 상속녀 사건과 필연적 연관성을 갖지 못한다. 소설적인 트릭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고, 단지 인간적인 성향이나 행동의 동기로만 제시하기에는 너무 비중이 크다. 그래서 결국은 설득력이 약한 한 정신병자(마르틴 방예르)의 광기란 에피소드로 끝나버린 느낌이다. 작가가 바라던 21세기 새로운 명탐정 콤비를 각인시키지도 못한 채.
영화 말레니엄의 한장면
그에 비하면 2부와 3부는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모든 인물과 사건이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야기도 훨씬 친밀하고 흥미진진하다. 그것은 아마도 무엇보다 독자들이 가장 먼저 알고 싶은 리스베트의 정체성을 완전히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리스베트를 가슴에 담았지만, 작가의 죽음으로 이제는 더 이상 그녀를 소설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영화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안타깝다. 차라리 2부와 3부를 먼저 영화로 만들고 1부를 나중에 선택하는 역순이었다면.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명할 시간조차 없이 허겁지겁 사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됐다. 인물의 성격조차 관객들의 추리에 맡기지 않아도 됐다. 쓸데없는 곁가지들은 잘라버리고 방예르 가문의 실종사건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데이비드 핀처 감독도 나름대로 전략을 세우기는 했다. 등장인물들과 분위기의 그로테스크. 그것으로 리스베트의 존재와 사건의 당위성을 설명하려 했지만,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분위기의 마카엘과의 충돌하면서 영화의 느낌만 어색하게 만들었다.
언젠가는, 아니 조만간 분명히 『밀레니엄』의 2부와 3부도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다. 솔직히 더 큰 실망을 줄까 불안하고 두렵다. 1부처럼 또 얼마나 리스베트에게 불친절할 것이며, 시간 제약을 핑계로 또 얼마나 건너뛰어 정말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추리를 성기게 할 것인가. 애초 『밀레니엄』을 영화로 만드려는 자체가 욕심인지도 모른다. 형식의 부적합이 아니다.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보듯 한편의 에피소드조차 영화 한 편에 담기는 불가능하다. 차라리 천천히, 그리고 어설픈 기교나 예술적 변형보다는 소설의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 빠뜨리지 않는 우직한 드라마로 재탄생시키면 어떨까. 어쩌면 그것만이 3부작만으로도 21세기 명작추리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밀레니엄』과 스티그 라르손에 대한 예의고 추억이 아닐까.
이대현(영화평론가)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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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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