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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대 영화

리안 감독의 색/계

『색, 계』와 <색 / 계> ‘ , ’ 와 ‘ / ’ 사이의 거리
문장부호는 무기이다. 강력한 메시지다. 어느 곳에 어떤 부호를 놓을까 작가는 고민한다. 문장부호가 다르고 그것을 놓은 위치가 다르면 의미도 달라진다. 그래서 문장부호는 독자들을 향한 일종의 명령이기도 하다. 내가 찍어놓은 부호에 따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장아이링은 『색, 계』라 했고, 리안 감독은 <색/계>라고 했다(국내에서는 영화도 소설제목과 똑같은 방식으로 표기했다). 같은 이야기의 제목을 놓고 둘은 왜 다른 부호를 선택했을까.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소설과 영화란 장르의 차이가 아니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차이의 선언이다. 그 차이란 문장부호 앞뒤에 놓인 색과 계의 관계와 거리이다.  ‘ , ’는 나열이다. 서로 별개이며 단절이다. 반면 ‘ / ’는 숙명이자 대응이다.  ‘ , ’는 말뚝처럼 굳건하다. 빼어버리고 서로 다가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 / ’는 바로 서지 못한 벽처럼 곧 쓰러질듯하다. 유리막 같기도 하다. 언제 그것이 부서져 둘이 하나가 될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하나가 미끄러져 다른 하나와 합칠 것만 같다.
소설-색계
매국노인 남자주인공 ‘이’와 그를 암살하기 위해 매력적인 미모를 무기로, 맥 부인이란 가명을 쓰면서 접근한 젊은 여인 왕지아즈. 두 사람 사이에, 그들의 욕망(색)과 두려움(계) 사이에 장아이링은 단호하게 ‘ , ’를 놓고는 “절대 건너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계’를 건너지 못하는 육체적 행위는 사랑이 아니기에 직접 묘사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감정의 육체적 행위(섹스)를 반복할 때마다, 초조와 불안에 휩싸이면서도 그것을 넘어가려는 욕망을 가진 자신, 부정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설마 이 선생을 사랑하게 된 것일까. 그녀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확실하게 그게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이미 여자는 사랑에 빠졌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려는, 아내가 있는, 늘 경계하는 중년 남자의 조금은 서글퍼 보이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서 여자는 부드러움과 왠지 모를 연민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여자는 ‘ , ’를 뽑아버리고 욕망과 경계의 벽을 무너뜨린다. 사랑의 힘은 죽음의 공포를 초월한다. “어서 가요”란 속삭임으로 암살해야 할 남자를 위험에서 구해준다.
그러나 남자는 결코 ‘ , ’를  넘지 않는다. 여자가 사랑으로 뽑아버린 ‘ , ’와 경계를 끝내 건너지 않는다. 여자의 죽음을 놓고 남자는 이렇게 자신을 설득한다. ‘독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 자신이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면 그 역시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라고. 마지막 순간 자신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얼마나 강렬했었는지도 상관이 없다. 그냥 감정이 있었다는 것으로 남자는 족했다. 그는 처음 여자를 몰래 불러낼 때처럼 아내와 그녀의 친구들이 마작을 하며 벌이는 수다 속에 앉아 있다. 장아이링은 이것이 남자라고 한다. 결국 여자의 사랑은 환상일 뿐이다. 그것에 의해 여자만 무너질 뿐, 남자가 가진 경계와 ‘ , ’가 여자의 사랑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할 수 없다. 그게 <색, 계>이니까.
영화 색,계의 한장면
리안 감독은 왜 하고 많은 장아이링의 소설 중에 『색, 계』를 영화로 선택했을까. 어느 작품보다 ‘아름답고, 잔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리안 감독은 여자 주인공 왕지아즈가 홍콩에서 처음 연극을 공연한 직후의 감정, 전차를 타고서도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폭풍과도 같은 격렬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했다. 왕지아즈(탕웨이)의 그 충만한 에너지를 그는 이(양조위)와의 ‘색과 계’ 로 이어가고자 했다. ‘색’과 ‘계’ 사이에 ‘ , ’가 아닌 ‘ / ’를 선택한 것은 때문에 운명적일 수밖에 없다. 열정은 비극을 몰고 오더라도 ‘경계’를 뛰어넘고야 만다는 사실을 감독은 알고 있었다.
영화 색,계 포스터
영화가 소설에는 없는 두 주인공의 정사장면을 중국에서는 30분가량 가위질을 당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정사는 결코 감미롭지 않다. 적나라하지만 그렇다고 포르노적이라고도 말할 수도 없다. 영화가 보여준 3번의 정사장면은 장아이링 소설이 설명한 그들의 관계처럼 처음에는 원시시대 사냥꾼과 먹잇감처럼 보였고, 마지막에는 서로가 서로를 점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남자는 야수처럼 여자를 공격했고, 금지와 위험은 욕망을 더욱 절박하고, 강렬하게 만든다. 남자의 가학적일 만큼 거친 몸놀림과 그것을 점차 단순히 신념과 의지가 아닌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왕지아즈의 복잡한 얼굴 표정이야말로 리안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이유이다. 조금씩 달라지는 그 정사의 느낌을 통해 영화는 ‘색’ 과 ‘계’의 경계가 불안하게 흔들림을, 남자의 자기파괴적 욕망과 여자의 자기기만적 연극이 사랑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그는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사랑은 운명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다. ‘색’ 과 ‘계’ 사이에 놓인 ‘ / ’를 치워버릴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여자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그 공격을 받아들인다. 당연하다. 두 사람 사이에, 각각의 욕망의 몸짓 사이에 ‘계’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안 감독은 그렇다고 그 사랑이 거짓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여자가 불안해 할 때 “내가 지켜주겠소”라고 한 남자의 말은 진심이다. 남자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비록 자신은 ‘ / ’를 뛰어넘지 못해, 살기 위해서 자신을 구해준 여자를 죽게 했지만 남자 역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잠깐 동안의 욕망이나 환상으로 끝나고 말았을지라도. 리안 감독이 소설과 달리 ‘색’과 ‘계’ 사이에 ‘ / ’를 넣고 싶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소설과 달리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텅 빈 여자의 침대에 회환의 표정으로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을 담는 것으로 바꾸지는 않았을까.
장아이링의 소설이나 리안의 영화는 ‘스파이를 사랑한 여자의 비극’ ‘사랑을 갈구하다 비운을 맞은 여자’ 의 이야기란 점에서 지극히 통속적이다. 장아이링 스스로 인정한다. ‘통속이 갖고 있는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에 뭐라 형용하기 힘든 애정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것이 너무 천박하여 깊이가 없다면 부조(浮彫) 역시 예술이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솔직히 장아이링의 『색, 계』도, 리안의 <색/계>도 모두 통속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통속적 감정과 행동이야말로 세월과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의 깊고 솔직한 모습일 것이다. 처음 남자는 욕정으로, 여자는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시작한 육체적 관계가 사랑으로 나아가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계’와 현실적 욕망에 의해 비극으로 끝나고……
어디 1940년대 중국의 한 미녀 스파이와 그녀가 죽여야 할 한 매국노에게만 찾아있는 ‘통속’인가. 시대와 장소를 떠나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그런 ‘통속’에 빠져들고픈 욕망이 이따금 고개를 내민다. 통속은 왕지아즈의 죽음 후, 소설과 영화에서 보여준 남자의 태도 중 어느 하나가 더 진실이고, 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결코 넘을 수 없는 ‘ , ’와  쉽게 깨질 것 같았지만, 결국 대립의 관계로 끝난 ‘ /  ’와의 차이가 아득할지라도 장아이링과 리안의 <색과 계>의 관계 모두에 공감하는 이유이다.
장아이링(張愛玲)이란 이름 석자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게 불과 10년 전이다. 1999년 2월에 개봉한 안휘 감독의 <반생연>이란 영화를 통해서였다. 원작자가 바로 그녀였다. 영어 제목이 왜 인지도 한참 후에야 알았다(원래 ‘십팔춘’이란 제목을 작가가 나중에 ‘반생연’으로 개작했기 때문). 그래 놓고 소설깨나 읽는다고 큰소리를 치고, 20년 넘게 문화담당 기자 행세를 하고 다녔다니. 부끄러웠다.
다행히 2005년 말 대산세계문학총서가 두 권의 소설집을 내서 청나라 말기 그 유명한 리홍장의 외증손녀라는 장아이링을 제대로 만났다. 섬세한 감성과 심리묘사, 작은 여자들의 삶을 통해 세상의 아픔을 드러내는 재주. 거기에 매혹돼 그녀의 대표작들이 담긴 『경성지련』과 『첫번째 향로』를 단숨에 읽었다. 영화와 소설 <색, 계>가 국내 소개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의 일이다. 프랑스 문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천재란 소리를 듣는 37세 중국 여류작가인 『바둑을 두는 여자』 『측천무후』의 샨사가 어느날 갑자기, 그냥 탄생한 것은 아니었구나!
이대현(영화평론가)『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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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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