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도시에서 도시로 하루에 수만번씩 오가던 항공편이 일제히 멈춰선지 반년이 넘었다.
버티지 못한 항공사들이 이 나라 저 나라에서 하나 둘씩 파산하고 있다.
사람들이 여행을 못하게 되니 당연히 여행업계, 숙박업계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래저래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심리에서인지, 옆나라 일본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기는 커녕 도리어 확진자가 늘어만 가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여행을 가라고 장려금을 주는 제도를 강행하고 있다. 대중이 모이는 것을 금하니까 영화관에도 사람이 없다. 헐리우드를 필두로 세계 영화계는 개봉 예정작을 상영 못하고 기약없이 날짜를 미루어야 했다. 감염을 두려워하여 촬영이 멈춰섰고, 이에 따라 투자도 멈추는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한국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극장에 조금씩 관객이 모이고 있기는 하다.
세상 돌아가는게 참 묘해서 모든 분야에서 상황이 나빠졌을 때 도리어 그걸로 득을 보는 사람이나 기업이 있기도 하다. 그럴 때 표정 관리를 해가며 수익을 챙기는 업계가 있다는 말이다.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그 가운데 하나다. 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출근을 못하게 하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길 정도로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사람들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영화나 TV드라마 등 영상 매체를 보는 시간도 많이 늘어났다. 엄청난 투자를 하여 완성시킨 작품을 영화관에서 개봉을 못하게 되니, 마냥 묵힐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넷플릭스에서 개봉을 하는 신작들도 속속 줄을 이었다.
외식업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여서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사람들간 전파를 두려워해 정부가 식당의 영업을 금지시켰다. 미국에서도 배달용 음식만 판매를 허락하다가 거의 반 년이 지나서야 야외에 앉아 먹는 공간만 허가를 한다든가 하는 식이어서, 정상으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이럴 때 사람들은 어디에서 위안을 받는가. 옛날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 좋았던 식당들을 추억하며 입맛을 달랜다. 그리고 스크린으로 새로운 음식에 대한 정보를 접하며, 이제 사태가 좋아지면 꼭 찾아가서 먹어봐야지 하는 새로운 희망에 의지하면서 답답한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또 넷플릭스는 엄청난 힘을 얻는다. 넷플릭스에는 인기를 모은 음식 다큐멘터리 씨리즈가 수십 개 있는데 지금도 계속 새로운 기획이 올라오고 있다. 넷플릭스와 음식이야기가 빛을 보고 있는 요즈음, 오늘은 넷플릭스에서도 유명해진 한국계 셰프와 한국음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소개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여러 개가 있지만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하여 성공을 거둔 <어글리 딜리셔스 (Ugly Delicious)>를 소개한다. ‘어글리 딜리셔스’란 어글리라는 단어를 반어적으로 사용하여 칭찬의 의미가 담겨있는 표현이다. 크레이지가 미쳤다는 뜻을 넘어 종종 찬사로 사용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나 같은 세대가 사용하기엔 여전히 좀 거부감이 들지만 젊은이들이 맛있는 음식을 표현할 때 ‘개존맛’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아도 되겠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로, 단어 그대로 ‘못생겼지만 맛있다’는 뜻이 들어있다. 이에 관해서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좀 부연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에 한국음식은 대부분이 ‘어글리 딜리셔스’에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양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은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은 음식을 기대한다. 그리고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는 레스토랑은 거의 대부분이 이를 지향하고 실천하는 곳들이다. 그래서 이 기준에서 벗어나지만 맛은 괜찮은 곳을 번외편처럼 ‘빕 그루망’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인정을 하는 고육책(?)을 쓸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맛있는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음식을 소개하는 레시피 책도 그렇고, 시청자들에게 간접 경험을 제공하는 각종 음식 프로그램이 소개하는 맛난 요리들도 대개가 멋진 비주얼을 가진 것들이 많다. 알랭 뒤까스, 조엘 로부숑, 퍼 세이, 프렌치 런더리,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모든 스타 셰프들이 활약하는 유명 레스토랑은 음식 접시 하나 하나가 입에 넣고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아니 포크와 나이프를 대기가 망설여질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테이블에 올려진다. 손님들도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보기에도 예술적인 경지에 오른 요리니까 비싼 돈을 내는 걸 더욱 납득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에는 가이세키 요리라는 것이 있는데, 일본 요리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료테이(料亭;요정)라는 전문 요리점에서 내는 코스 음식인데 열가지 이상의 요리가 순서대로 나온다. 교토가 원조 도시로 인정을 받아서 도쿄나 오사카의 유명한 요정도 교토 본점의 분점 형태로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교토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곳으로 교토 요리를 교요리(京料理)라고 부르고, 교야채(京野菜) 등의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가이세키 요리는 디스플레이에 힘을 쓰다보니 자연히 그릇에도 신경을 써서 고급 집일수록 비싸고 귀한 그릇을 사용한다. 일본 온천 료칸에서 나오는 저녁 식사도 가이세키 요리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고, 좀 그럴듯한 식당에서 내는 마쿠노우치 벤토라는 고급 도시락도 가이세키의 기본 원리가 들어가 있으니 정점에 올라선 가이세키의 영향이 밑으로 내려 퍼진 경우라 하겠다. 형식미를 존중하는 일본 문화가 식문화에 잘 드러난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서양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일본 교토로 가서 이를 배우고 참고하였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은 바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도전이랄까 반작용으로 나온 것이 <어글리 딜리셔스>라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호스트이자 프로듀서가 한국계 셰프 데이비드 장(David Chang)이다. 그는 음식이 보기에는 모양이 없어도 맛이 좋은게 많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에 이민을 간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2세인 그는 어려서는 한 때 장래가 유망한 골프 신동이었다고 하는데, 요식업에서 크게 성공하여 타임지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뉴욕에서 ‘모모푸쿠’라는 국수집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세계 여러 곳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할 뿐 아니라 TV프로그램의 호스트로, 레시피 북의 저자로, 음식잡지의 발행인으로 등등 다양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어글리 딜리셔스>는 2018년에 씨즌 1을 방영하여 대단히 좋은 반응을 얻었고 올해 씨즌 2가 나왔다. 씨즌 1은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피자, 타코, 새우와 가재, 바베큐, 프라이드 치킨, 볶음밥, 라비올리와 만두(교자) 등의 항목을 에피소드 별로 다루며 전세계를 누빈다. 피자도 그렇고 타코스도 그렇고 바베큐나 볶음밥도 보기엔 단순하고, 그렇게 먹기에 우아한 음식도 아니다. 오히려 손에 묻고 자칫 흘려 옷에 얼룩을 만들기 쉬운 것들이다. 그러나 먹으면 즐겁고 행복한 음식들이라는 점에서 보는 이들이 공감을 한다. 위에 예를 들은 에피소드가 7개인데 또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이 프로그램의 기본 철학이자 비밀이 공개된다. 바로 ‘홈 쿠킹’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데이비드 장이 추수감사절 만찬, 즉 일 년 중 미국사람들이 가족들이 모여 먹는 것에 가장 신경을 쓰는 날인 Thanksgiving dinner에 참가하려고 버지니아에 있는 본가에 가는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여 요식업에서 성공한 여러 셰프들의 홈 쿠킹, 그러니까 ‘집밥’을 보여준다. 그가 이 에피소드 안에서 이야기한다. ‘나는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다음에 가능한 한 내가 어려서 집에서 먹고 자란 음식과 최대한 멀어지려고 애썼다. 그런데 돌고 돌아서 결국 집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에피소드에 출연하는 다른 셰프들도 모두가 어려서 먹은 엄마의 음식과 할머니의 음식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혼하여 아이를 갖게 된 후에 요리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고도 한다. 아이가 몸에 좋은 음식을 맛있게 먹게 하려니 재료를 준비하는데서부터 성의가 더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아이가 없는 데이비드 장도 여기에 동의한다. 손님들에게 집밥을 대접하여 즐겁게 먹는 것을 보는 마음으로 식당 영업을 한다고.
이야기는 그가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볶음밥을 만들고 먹다가 남은 갈비탕을 데워서 부인과 둘이 먹는데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어려서 엄마가 집에서 해주던 건데, 요새는 왜 이런걸 내 레스토랑에서 내고 싶지?’ 집밥이란 무엇인가를 풀어나가겠다는 의도가 여기에서부터 풀려나가는 구성이다. 중간에 그는 자신의 식당에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보여주며 ‘어글리’ 음식에 대하여 설명한다. ‘이건 대구 요리인데 누가 뭐냐고 물어도 대답할 말이 없다. 아마도 내가 만들어 본 가운데 가장 어글리한 음식인 것 같다. 당근, 양파 등 각종 야채를 볶는데 파프리카까지 넣었으니 한국과 포르투갈의 중간쯤 되기도 하고, 양념은 중국식으로 하고 스촨고추를 얹었다. 당면을 넣고 대구를 얹어 익혔는데 맛이 좋다. 맛있는 음식이란 정확하게 그게 아닌데도 옛날에 먹었던 음식을, 그리고 옛날의 좋은 추억이 생각나게 하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 요리 학교를 다녔고 일본으로 가서 소바집에서 일을 하며 요리를 배우기도 하였다. 서양 요리를 내는 레스토랑을 여러군데 전전하며 일을 하며 배우고 차린 것이 자신의 첫번째 레스토랑 ‘모모푸쿠’였다. 이 식당이 크게 대박이 나게 된 이야기 자체가 그야말로 대박이다. 뉴욕에서 조그맣게 차려서 계속 적자에 시달리다 결국 문을 닫기로 하였는데, 어차피 문을 닫기로 했으니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해보자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레시피 책을 집어던지고 마음가는 대로 메뉴를 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맛있어 하는가 했는데, 그때 피터 미한이라는 뉴욕타임즈의 푸드 칼럼니스트가 찾아와 먹고는 호평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폭발적인 성공이 뒤따랐다. 그와는 이후에 요리사와 평론가의 사이를 넘어 친구가 되었고, 둘은 책도 함께 내고 잡지도 함께 운영하였다. 지금 소개하는 프로그램 <어글리 딜리셔스>도 그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이다. 그리고 이 ‘홈쿠킹’ 에피소드에서 데이비드는 피터 미한과 동행하여 버지니아 자신의 본가로 간다.
그는 엄마와 함께 한국 슈퍼마켓에서 장을 잔뜩 보아서 무려 이틀 동안 추수감사절 디너를 준비한다. 자신이 독립하여 바빠진 이후 몇 년 동안 본가를 못갔는데 어려서부터 추수감사절에는 늘 이렇게 음식을 잔뜩 장만하였다고 했다. 나도 미국에서 생활을 하며 추수감사절 때 백인 가정과 한국교포 가정 양쪽에 여러 번 초대 받은 경험이 있는데, 실제 한국교포 가정은 음식 장만을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미국 생활에 적응을 한다는 의미에서 미국 전통 음식인 칠면조 구이와 캐서롤, 단호박파이 등을 준비하는데 이걸 보며 이러한 요리는 미국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기죽지 않고 자라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사람의 명절에 빠지지 않는 음식들이 있지 않은가. 여기에 더해서 갈비찜, 잡채, 빈대떡 등도 산더미 같이 준비하여 여럿이 모여 먹고 마셨다. 물론 전기밥통에는 따스한 밥이 있고 테이블에는 김치, 깍두기가 빠지지 않는다. 계절이 없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사시사철 오이소박이도 식탁에 올리는 가정이 적지 않았다.
에피소드가 끝나갈 무렵 보여주는 데이비드 장의 본가 추수감사절 저녁도 예외가 아니다. 커다란 칠면조 요리를 나누어 접시에 담고 산처럼 쌓아놓은 갈비찜과 잡채 등을 즐겁게 나누어 먹는다. 그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 엄마는 대단한 여성이다. 지난 25년간 암과 네차례나 싸워 이겼는데, 세번째는 뇌종양이었다. 수술을 하고 퇴원한지 이틀만에 머리에 붕대를 싸맨 채 일어나서 부엌에서 뭔가 하길래 보았더니 나 먹으라고 김치찌개를 만들고 계셨다.’ 그가 어려서 집에서 먹었던 어머니의 요리, 외할머니의 요리가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한 근원이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바베큐(BBQ)’ 에피소드에서는 LA의 한국 음식점이 나온다. 사실 미국의 바베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불고기와는 많이 다른 요리이다. 한국의 바베큐가 오래된 역사 사료에 ‘맥적’이라고 기록된 직화구이에 뿌리를 둔 것이라면 미국의 바베큐는 뜨거운 공기와 훈제 연기로 서서히 익힌 요리이다. 하지만 폭넓게 정의를 내리면 홍콩의 차씨우나 말레이반도의 사테나 중동 터키의 케밥이나 한국의 불고기나 모두가 바베큐에 속한다. 그리고 어글리 딜리셔스의 ‘바베큐’에서는 LA에서 번성하고 있는 한국 식당을 찾아가 한국식 불고기, 갈비 식당의 변천과 고객층의 변화, 서양사람들의 한국음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 등을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도 알려진 교포 배우 스티븐 연도 나와서 반갑다. 여기에서 모두가 동의하는게 한국의 반찬 문화다. 열가지나 되는 반찬이 테이블에 올라오면 손님은 왕처럼 대접을 받는 느낌을 받는다고도 한다.
문화와 역사의 아이러니라는게 이런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한국음식의 상차림은 쓸데 없이 반찬이 많아서 낭비가 많다고 지적되어 왔다. 한때는 정부당국의 주도로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반찬마다 돈을 받기로 해서 낭비를 줄이자는 제도가 시행된 적도 있었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쓸데 없이 구색만 맞추는 밑반찬이 줄어들고 반찬 하나하나에 성의를 들이는 곳이 늘어나기는 했으니 좋은 제도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일본에서 영업하는 한국음식점에서는 김치, 깍두기, 나물 심지어는 상추 몇 잎도 다 돈을 따로 내고 시켜야 한다. 일본 문화에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 관광객이 한국에 오면 감격을 하는게 푸짐한 반찬 문화다. 무료로 제공될 뿐만 아니라 다 먹고 요청하면 몇 번이고 리필을 해주니 일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인심이다. 본바닥에서는 한 때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으나 외국에서 성공한 셰프와 음식점 주인이 공통으로 인정하며 자부심을 느끼는게 한국의 반찬 문화이니 문화는 돌고 돈다는게 맞는 말이다.
이 글 초반에 나는 한국음식은 대부분이 ‘어글리 딜리셔스’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이건 비하가 아니라 지금 파인 다이닝의 기준으로 볼 때 그런 것이라는 지적인데, 한국음식이 파인 다이닝의 현재 기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미식의 기준이 한국적인 것으로 옮겨오는, 말하자면 음식 세계에서도 지축 이동이 일어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수 십 년간 외국을 오가면 생활해 온 내 경험상 지금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아서이다. 아까 잠깐 이야기한 평론가 피터 미한이 뉴욕타임즈에 썼던 칼럼 하나를 간단하게 소개해 본다.
“평일 밤 열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고향집’에서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내들이 펄펄 끓는 냄비를 가운데 놓고 먹다가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에 웨이트리스에게 그들이 먹고 있는게 무어냐고 물었다. 그녀가 ‘돼지 목뼈요’라고 대답했다. ‘저 손님들은 고기 이런거 안좋아해요. 뼈다귀를 좋아하지요.’ 나는 퀸즈에서 새로 뜬 이 한국 식당에 ‘흑염소탕’이라는 좀 터프할 것 같은 음식을 경험하러 가자고 동료들을 꼬셔서 왔는데 뜻밖에도 고기는 대단히 부드러웠다. 그런데 저들은 뼈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후략)”
그리고 그는 흑염소탕이 한국 된장을 푼 국물을 베이스로 흑염소 고기와 함께 마늘, 파, 미나리, 들깻잎, 들깨를 듬뿍 넣고 끓인 음식이라는 것을 소개한다. 찍어먹는 양념장도 나온다는 상세한 설명과 함께 하얀 염소보다는 흑염소가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도 덧붙이기를 잊지 않는다. 먼저 나온 돼지목뼈가 들어간 냄비라는 요리는 다름아니라 감자탕이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 대단히 인기를 끌고 있는 메뉴다. 감자탕도 그렇고 흑염소탕도 그렇고 보기에 예쁜 비주얼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찜도 그렇고 김치찌개도 그렇고 다 ‘어글리’한 음식인 것이다. 일본 관광객이 성지순례처럼 찾는다는 동대문의 ‘닭한마리’집도 마찬가지다. 닭을 한마리 통째로 넣고 끓이다가 도중에 가위로 뼈째로 조각을 내어야 하는 과정은 식탁을 무슨 작은 푸줏간처럼 만든다. 거기에 길게 썰은 대파와 통으로 넣은 감자를 해체하여 각자의 접시에 덜어 먹어야 한다.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요리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로 자주 한국을 방문하는 미 국무부 스티브 비건 차관이 이 요리에 반해서 코로나 사태로 가게에 방문을 못하게 되자 요리사를 불러서까지 챙겨 먹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광팬인지 퍼포먼스인지 몰라도 ‘어글리’에서도 도가 높은 어글리 음식인 ‘닭한마리’를 좋아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것을 시사한다. 사실 식탁 위에서 재봉용 가위나 출처가 모호한 집게를 들고 고기를 자르고 뒤집고 하는 것부터가 서양 식사 예절에 대입하자면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식탁에서 불을 벌겋게 달구고 호쾌하고 다이나믹하게 가위와 집게를 쓰는게 한국음식의 매력으로 보이게 되었다. 십수 년 전부터 소녀시대가, 레드 벨벳이, 트와이스가 영상에서 그렇게 먹었고 또 지금 EXO와 BTS가 그렇게 먹고 있고 ‘기생충’과 ‘사랑의 불시착’에서 한국의 선남선녀가 그렇게 먹고 있는걸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숱한 사람들이 보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글리 딜리셔스>의 근원에는 어려서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와 갈비탕을 먹고 자란 데이비드 장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고, 그런 철학을 담고 세계를 다니며 ‘어글리’하지만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을 찾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그의 도전과 공로는 높이 사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잘 만든 프로그램으로 재미가 있다. 한번 시청하실 것을 추천한다.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