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생각하는 동화 황금을 훔치는 거인 글, 작성유 생각하는 동화 황금을 훔치는 거인 글, 작성유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내 실수였어. 원래는 아빠 옷을 팔려고 했거든. 이맘때 딱 입기 좋은 파란색 봄가을잠바 말이야. 값이 꽤 나가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중고로 팔았어. 세상 모든 물건을 사고파는 중고세상 사이트에.

사실 이건 내 용돈벌이야. 살다 보면 돈이 필요한 곳이 정말 많거든. 모으고 또 모아도 늘 부족하지. 그러니까 돈을 버는 거야. 집에 있는 안 쓰는 물건들을 중고세상 사이트에 올리는 거지. 팝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 깃털보다 가볍고 빨기도 편해요. 그럼 누군가는 그 물건을 갖고 싶어 하거든. 그 사람한테 싸게 팔아. 돈을 받고 택배 상자에 넣어서, 받는 사람 주소를 쓰고 우체국에 보내면 돼. 벌써 이걸로 꽤 많이 벌었어. 조금만 더 모아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었지. 집이 좁아터져 죽겠거든.

그러니까, 다 집이 좁아서 그런 거야. 실수로 아빠를 팔아버린 거 말이야.

아빠는 늘 쓸모없는 새 물건을 사. 언제는 청바지를 사고, 언제는 전자레인지를 샀어. 집에 청바지와 전자레인지가 있는데도 말이야. 심지어 산 걸 뜯어보지도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지. 그러곤 넘쳐나는 새 물건 사이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덕분에 집에 택배 상자가 넘쳐난다니까. 택배를 피해서 홍학처럼 겅중겅중 걷는 것도 이미 익숙해졌어. 쇼핑 좀 그만하라고 잔소리를 하면 아빠는 늘 동굴 같은 목소리로 대꾸했지.
“다 쓸 데가 있어서 사는 거야.”
한 번도 쓰지 않았으면서. 봄가을잠바도 그런 거였어. 사놓고 한 번도 안 입은 아빠의 옷. 그래서 그걸 중고세상에 올렸고,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당연히 냅다 팔아버렸지. 개나리색 택배 상자에 넣고 우체국에 가져가 부쳤다고. 하필 그날 아빠가 그 옷을 입고 있었을 줄은 몰랐어. 알아도 헷갈릴 법 했지. 누워있는 아빠랑 옷더미를 구분하는 일은 정말 어려우니까.

다행인 건, 내가 무척 책임감 있는 어린이란 사실이야. 나는 잘못한 걸 인정할 줄 알지. 실수를 수습할 줄도 알고. 아빠와는 달라. 그래서 아빠를 찾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야. 어른들은 이런 나더러 “예은이는 다 컸으니 이만 시집보내도 되겠구나!”라고 말하지만, 나는 다 크려면 아직 30cm나 더 자라야 하는 데다가 할머니 될 때까지 아빠랑 둘이 살겠다고 약속했는걸.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아빠는 다 크기도 전에 장가부터 든 모양이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란 말이야. 대충 서로가 필요한 사이라는 뜻이야.



우체국은 집에서 큰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면 있어. 작년에 지은 엘레지아 아파트 단지 사이로 한참 들어가면 보이는 땅딸막한 2층짜리 건물이지. 오래된 유리문을 몸으로 힘껏 밀고 들어가면 남색 리본을 맨 직원 선생님이 반겨줘. 나는 단골이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아. 선생님과 내가 나누는 대화는 늘 똑같거든.

‘무슨 일로 왔어요?’
선생님이 물으면,
‘택배 부치려고요. 현금으로 결제할게요’라고 대답하는 거야. 물론 이번엔 조금 다르게 대답해야 했지만.
“제가 깜빡하고 택배에 아빠를 넣은 것 같아요. 혹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내 이름을 물어보더니, 잠깐 자리를 비우고 우체국 뒤에 있는 문으로 사라졌어. 나는 의자에 앉아 얌전히 기다렸지. 우체국엔 택배를 보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어. 택배를 찾으러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 주변에서 들리는 딩동 소리를 일곱 번쯤 세고, 342번이었던 번호표가 349번이 되었을 때 직원 선생님은 돌아오셨어.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말이야. 선생님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느라 띄엄띄엄 말했지.
“이예은 씨가… 보낸 택배는… 아무리 찾아… 봐도 없네요.”
“이런 일이 흔한가요?”
“그럼요… 물건을 잘못… 보내는 일이야 많죠. 편지… 봉투에 편지 대신… 깻잎을 보낸 사람도 있는걸요.
밥상에 올라간… 깻잎이었죠.”
선생님은 여전히 숨을 헉헉거리면서, 책상에서 메모지를 꺼내더니 마구잡이로 휘갈긴 주소를 적어주었어.

“여기에서 보낸 모든 택배들은 이곳을 거치니까 가서 확인해 보세요.”

남미리우편집중국’은 이름만큼이나 길고 또 거대한 건물이었어. 기찻길처럼 생긴 벨트가 아빠의 코골이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지. 벨트 위엔 콩알만한 상자부터 우리 집만한 상자까지 다양한 택배들이 놓여 있었어.

나는 ‘파손주의’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키 큰 아저씨에게 다가가 물었어.
“아빠를 찾으러 왔는데요.”
“……”
기계 소리가 너무 커서 못 들은 걸까?
“아빠를! 찾으러! 왔는데요!”
아저씨는 쉴 새 없이 ‘파손주의’ 스티커를 상자에 붙이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 먼 데를 가리켰어.
“출고 센터는 저쪽이다.”
아저씨가 말한 ‘저쪽’이 대체 어디까지 가야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걸었어. 거대한 창고를 걷고 또 걸었어. 우리 집에도 상자가 많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상자들을 보고 있으려니까 눈알이 팽팽 돌 지경이었어. 다리도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어. 아빠한테 날 좀 업어달라고 하고 싶었지. 아빠가 그래도 업어달란 말은 잘 들어주거든. 뜨끈하고 축축한 아빠의 등에 뺨을 비비면 세상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끔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기도 해. 아직까지도 침을 흘리는 잠버릇이 있는 건 아빠한테 영원히 비밀이야.

얼마나 걸었을까, 그러다 보게 된 거야. 아빠를 넣은 개나리색 택배 상자 말이야. 상자끼리 모아놓은 창고 구석에 숨어 있었지. 상자는 마치 빛을 내면서 날더러 반갑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어쩌면 아빠가 빛을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두말할 것 없이 택배 상자를 뜯었지. 상자 속엔…

난생처음 보는 어린이집 체육복이 가득 들어 있었어.

하는 수 없이 다시 왔던 먼 길을 걸어서 ‘파손주의’ 아저씨에게 되돌아갔어. 그런데 아까까지 파손주의 아저씨가 있던 곳엔 처음 보는 언니가 있었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언니였어. 그 언니는 파손주의 아저씨가 했던 것처럼 상자에 파손주의 스티커를 잽싸게 붙이고 있었지. 다른 점이 있다면, 언니는 키가 아주 작아서 날 금방 발견했다는 거야. 그리고 먼저 나한테 말을 걸어주었어.
“뭘 찾고 있지?”
나는 아빠를 중고로 잘못 팔아버린 얘기를 언니한테 해 주었어. 얘기가 끝나자, 언니는 언제 택배를 보냈는지 물어봤어. 가만있자, 오늘 아침에 짜장 라면을 먹다가 알았으니까, 딱 삼일 됐지. 그 말을 들은 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어.
“그렇다면 벌써 택배가 도착했겠는걸.”
“택배가 도착했다고요?”
“그래, 아빠를 엉겁결에 사버린 사람한테. 그 사람 집으로 가는 편이 좋겠다.”
언니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파손주의 스티커를 상자에 빠르게 붙이기 시작했어.



아빠를 어쩌다 사버린 사람은 내 옆옆옆동네에 있는 볕내주택 504호에 살고 있었어. 덕분에 버스를 네 번이나 타봤어. 볕내주택은 주공아파트 옆에 딸려있는 작은 주택이었어. 갈색 벽돌로 된 벽이 꽤 예쁘다고 생각했지. 한낮에도 그늘져서 추운 것만 빼면, 아빠랑 여기서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어.

504호 벨을 누르자 내 또래 남자애가 나왔어. 나보다 조금 어릴걸. 내가 걔보다 한 뼘 더 크니까. 그 애는 손도 발도 나보다 조금 더 작았어. 눈 하나는 왕방울만 하게 컸지만 말이야. 나는 조금 자신만만해져서 그 애한테 당당하게 얘기했어.
“아빠를 찾으러 왔어.”
“어떤 아빠 말이야?”
남자애가 고개를 갸웃거렸어. 그러자 그 애의 뒤로 수많은 아빠들이 보였어. 짜장 라면을 끓이는 아빠, 책을 읽는 아빠, 기타를 연주하는 아빠, 장난감을 늘어놓는 아빠와 춤을 추고 있는 아빠……그리고 저 구석에 내 아빠가 있었어. 파란색 봄가을잠바를 입은 내 아빠. 아빠는 바닥에 누워 늘어져라 자고 있었어. 아빠의 코골이가 다른 아빠의 기타 소리랑 근사한 합주를 이루고, 집에선 따뜻한 곰팡이 냄새가 났어.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완벽한 모습이었어.

나는 주저하면서 내 아빠를 가리켰어. 그러자 남자애가 품에서 계산기를 꺼내 빠르게 두드렸어.
“중고 아빠는 조금 더 비싸. 중고 아빠들은 아빠 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거든. 새로 가르칠 필요가 없는 대신 편리하지.
27만6천580원이야.”
기가 막힌 소리라서 잘 못 들었어. 내가 그 남자애를 쳐다보니까, 그 애가 내 앞에 계산기를 흔들었어.
“중고 아빠가 아니라, 내 아빠야.”
“응, 27만6천580원이야.”
“그게 아니라, 원래 내 아빠라니까?”
남자애가 커다란 눈을 두 번 깜박였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였어.
“하지만 네가 나한테 팔았잖아.”
“그건 실수였어!”
얘는 욕심이 엄청 많은가 봐. 절대 호락호락하게 아빠를 돌려줄 눈치가 아니었어. 나는 아빠를 쳐다봤어. 어느 순간부터 아빠의 코골이가 잦아들었다 싶더니, 아빠가 깨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어. 아빠가 두툼한 입술을 우물거리며 내게 무어라고 말을 했어. 그리고 손으로 입술을 톡톡 건드렸어. 나는 입술을 손등으로 문질러보았어. 까만 짜장 라면 소스가 묻어 나왔어.
“아빠는……”
나는 최대한 목을 당겨 배꼽 밑에서 목소리를 끌어올렸어. 입을 열자 아주 음산한 동굴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어.

아빠는 청소를 할 줄 몰라. 집에는 상자와 옷과 바퀴벌레가 가득하지. 매일 새 물건을 사고, 뜯지도 않고 잠을 자. 일주일만 같이 살아도 상자 때문에 집이 미로가 될 걸. 심지어 코 고는 소리도 엄청 나. 귀 옆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같아. 코딱지를 아무렇게나 버려두고 약속을 지키지도 않는다고. 발에선 트림 냄새도 난다니까.

생각하는 동화 황금을 훔치는 거인
사실 마지막 말은 과장을 조금 섞었지만, 이 정도는 물건을 사고팔 때 다들 하는 거니까. 남자애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어. 그 애는 내 아빠를 한 번 쳐다봤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어. 눈을 길쭉하게 뜨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되물었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조용히 바지 뒷주머니에서 돈을 꺼냈어. 그동안 아빠의 물건을 팔면서 알뜰하게 모아 온 돈이었어. 그리고 남자애에게 다가가 귓가에 입술을 대고 빠르게 속삭였어.
“조금만 깎아달라는 거야.”
파란색 봄가을잠바를 두 번 잡아당기면 중고로 산 우리 아빠가 몸을 굽혀 나를 업어줘. 중고 아빠의 등은 방금 구운 군고구마처럼 뜨끈뜨끈했어. 축축하고 시큼한 냄새도 났어. 나는 손을 뻗어서 아빠의 입가에 굳은 침을 닦아주었어. 상자로 가득한 우리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조용히 아빠한테 속삭였어.
“아빠, 나도 다 쓸 데가 있어서 팔았던 거야.”
아빠의 넓은 등에 뺨을 비볐어. 천천히 세상이 주황색으로 물들었어.
글 / 장은서_동화작가, 제17회 대산대학문학상 동화부문 수상자, 1997년생
동화 『타조 관찰일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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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6-2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