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국내 최초로 종로 3가에서 퇴계로 3가까지 남북으로 무려 1km가량 이어진 거대한 상가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가 그 시작을 알렸다. 연면적 205,536㎡ 규모의 세운, 현대, 청계, 대림, 삼풍, 풍전, 신성 상가를 비롯해 17층 고급 아파트까지 모여있는 주상복합상가 건물 세운상가(世運商街)는 1972년까지 총 5년에 걸쳐 차례로 건립되었다. 세운이라는 이름은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으로 당시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던 김현옥에 의해 지어졌다. 과연 세운상가는 어떤 계기로 이곳에 지어진 것일까?
전국에서 나비들이 모여드는 ‘종삼'은 어떤 곳일까?
세운상가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미군의 폭격 시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비워둔 공터 자리에 세워졌다. 한국전쟁 종전 이후 1960년대까지 이 공터엔 무질서한 판자촌이 형성됐다. 전쟁의 여파로 궁핍하고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던 여성들은 생계수단을 위해 판자촌으로 몰려들었다. 6-70년대 ‘종삼’이라 불리던 사창가의 시작이 바로 그것이다. 세운상가의 건립에 큰 역할을 한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은 깨끗한 서울을 만들기 위해 사창가 ‘종삼' 소탕 프로젝트인 ‘나비 작전'을 펼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그가 이 나비 작전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세운상가와 얽힌 한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1966년 착공을 시작한 세운상가. 1968년 김 시장은 점검차 건설 현장에 들렀는데 한 여성이 그에게 다가가 “아저씨 놀다가요"라고 호객행위를 한 것이다. 김 시장은 명단을 공개하고 갖은 협박을 가해 체면을 짓밟는 방식으로 사창가의 나비라고 불리는 남성들을 먼저 소탕하기 시작했고, 나비가 사라진 종삼에서 꽃들은 자연스럽게 시들고 말았다. 나비 작전은 시행을 시작한 지 30여 년간 지속되었고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전자 업종의 메카에 세워진 초대형 주상복합상가, 세운상가
종삼이라 불리던 사창가와 더불어 청계천변이라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키워드는 바로 ‘전자’. 60년대 청계천 일대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기계, 공구, 부품들을 판매하는 고물상 지대였다. 광도 백화점, 아세아 백화점을 중심으로 장사동과 청계천 일대는 전자 업종 특화 지역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성업을 이뤘다. 때맞춰 완공된 세운상가는 전자기기산업의 발전에 불을 지폈다.
60년대 부품 판매, 라디오 조립 판매 수준이던 세운상가 일대 전자 산업은 70년대에 완제품을 만드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1976년 12월엔 최초의 국산 라디오 ‘수퍼라디오'가 출시되기도 한다. 80년대엔 우리나라에 개인용 컴퓨터가 확산 보급되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컴퓨터 주변장치의 국산화 그리고 국산 개인용 컴퓨터 개발까지, 컴퓨터 관련 IT계의 혁신이 그 시작을 알렸다. 이후 TG삼보 컴퓨터, 한글과 컴퓨터, 코맥스 등 컴퓨터 관련 기업들이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기반을 다졌다.
상업 기능과 주거 기능을 모두 잃은 세운상가
80년대 후반부터 용산 전자상가, 강변 테크노마트 등 대규모 전자상가들이 뒤를 이어 등장했다. 상권의 쇠퇴와 더불어 세운상가의 주거기능도 점차 제 기능을 못하기 시작했다. 처음 세운상가가 지어졌던 당시만 해도 아파트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세운상가군은 최고의 주상복합단지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최신식 시설까지 더해져 유명 인사들이 사랑하는 거주지로 손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며 강남의 개발이 가속화되자 주거공간으로서 세운상가의 메리트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세운상가 프로젝트의 원래 계획은 지상은 차도 겸 주차장, 3층은 공중 복도를 만들어 인도와 차도를 분리해 종로부터 충무로까지 한 길로 잇는 것이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리 상가별로 서로 다른 건설사들이 건축을 하게 되어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상가와 상가 사이 연결통로가 없으니 지상의 차도는 자연스레 시민들의 동선이 되었고, 유리 지붕과 옥상정원 계획마저 무산되자 일대는 조금씩 번잡해지기 시작한다. 전자상가로서의 기능, 주거공간으로서의 메리트 모두 사라지자 세운상가는 조금씩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상가들이 용산과 강변으로 흩어졌고 이에 따라 시민들의 발길도 줄어들었다.
90년대에는 쇠퇴한 세운상가를 재개발하고자 하는 서울 자치구, 그리고 그에 반대하는 서울시 그리고 문화재청의 대립이 이어졌다. 2006년, 오세훈 전 시장은 세운상가의 모든 건물을 철거한 뒤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수많은 상인들의 반대, 그리고 보상 비용 문제로 조용히 사라졌다. 박원순 시장은 오 전 시장과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건물을 모두 없애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과 상가를 재생하는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발의한 것이다.
세운상가 다시 세워지다
과거의 영광에는 비할 수 없지만 세운상가엔 여전히 전기, 전자 부품은 물론이고 금속, 아크릴, 조명 등의 생산 업체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곳의 잠재 가능성을 기반으로 세운상가의 재생사업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세운상가를 도심 제조업의 전진기지로 조성한다는 계획 아래 2014년 3월 세운상가의 존치가 결정되었고, 2016년엔 ‘다시. 세운 프로젝트’가 발표됐다. 기존의 정책이었던 철거 대신 리모델링을 진행되었으며, 상가 활성화를 위해 청년 벤처기업들과 오래도록 상가에서 활동한 기술 장인들과의 협업을 주선했다.
세운상가를 찾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세운상가 곳곳의 쉼터들을 소개한다. 세운상가의 역사를 알아보고 각종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다.
(출처 : 다시세운프로젝트 공식 사이트)
세운상가의 옥상이 새 단장을 마치고 시민에게 돌아왔다. 세운상가 입주민들은 물론,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서울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만끽할 수 있는 야경 명당으로 알려져 있고 공연 등의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출처 : 다시세운프로젝트 공식 사이트)
세운상가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세운전자박물관. 세운상가의 역사, 기술사, 문화사, 그리고 장인들의 재미있는 비하인드를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상설전시 <청계천 메이커 三代記>가 진행 중이다.
(출처 : 다시세운프로젝트 공식 사이트)
최신 기술의 트렌드를 접할 수 있는 기술 서적들을 소장하고 있는 작은 서점이다. 상가의 상인들이 주민 해설사로 나서 책을 추천하는 북 큐리에이션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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