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은 유독 뉴욕의 브루클린에 비교가 많이 된다.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의 천국이라는 점이 그 공통점인 것은 알겠지만, 그 시작점과 방향까지 비슷하다고. 과연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성수동 지하철 2호선처럼 브루클린 역시 하늘로 기차가 다니는 곳이다. 두 곳 모두 임대료가 싼 옛날 공장 건물에 젊은 아티스트들이 입 주하며 예술적인 공간이 형성된 것. 옛 것을 보존하며 새로움을 창출하는 도시재생의 아이콘으로 부쩍 성장했다는 점에서 성수동은 특 히나 브루클린과 많이 닮아 있다. 폐공장을 재활용한 카페와 문화예술공간으로 가득 찬 성수동의 과거와 오늘날을 살펴보자.?
뉴트로의 성지, 성수동은 어떤 길을 걸었나
지금은 젊은이들의 메카이자 예술가들의 놀이터인 이곳 성수동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제는 힙한 컨테이너형 카페로 변신해버린 옛 폐공장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본 다면 이곳의 과거에 대해 어렴풋이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성수동은 1960년대 경공업을 주도하던 공장지대였다. 수제화를 비롯한 각종 제조공장이 밀집해 크게 성행하였다고. 하지만 다른 공장지대와 마찬가지로 이내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큰 타격을 입고 쇠락을 겪게 되었다. 공장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거리는 한산해질 무렵 2005년 서울숲 조성과 더불어 예술가들의 유입으로 거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들은 낡고 지저분한 공장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대신 이를 활용하는 독특한 방향을 추구하였고 카페와 옷집, 스튜디오 등 힙한 공간이 만들 어지게 되었다.
과거의 경마장, 지금은 서울의 대표 숲으로
서울의 센트럴파크라는 멋진 별명을 얻게 된 서울숲은 바쁜 도심 속 시민들에게 아름답고 한적한 휴식처를 제공해 준다. 그런데 이곳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들이 뛰 어다니는 경마장이었다고. 쇠락했던 성수동 일대가 지금의 위치를 얻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한 서울숲은 그 역사가 꽤 길다.
서울숲이 있던 자리는 풀과 버들이 무성해 조선시대에 나라의 말을 먹이는 목마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것뿐만 아니라 임금과 왕실 사람들의 사냥터로도 쓰였다고 하니 없 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장소였음이라 짐작이 간다. 1908년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수원지가 설치되었고 1954년부터 경마장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서울시는 시 민들에게 휴식터를 제공해 주고 녹색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고, 서울그린트러스트라는 운동 하에 여러 시민과 기업의 후원을 받아 2005년 ‘서울숲’을 개원하였다.
평화로운 서울숲을 걷다 보면 과거의 흔적을 여러 군데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옛 경마장과 체육공원의 콘크리트 골격이 일부 남아있는 것. 성수동의 폐공장이 멋진 카페와 스 튜디오로 변신한 것처럼 서울숲 역시 기존의 시설들이 완전히 철거되지 않고 일부 남겨져 공원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성수동의 힙한 컨셉과 어울리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4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전통의 거리
1970년대 이후부터 성수동에 수제화 산업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했던 이곳에 수제화 업체들이 하나 둘 모여들며 국내 최대 수제화 산업 지역이 된 것. 제품을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생산 과정뿐만 아니라 출고, 판매에 이르는 완결된 시스템의 구축이 이 지역의 수제화 산업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1990년대 에는 약 1천개의 구두 공장이 들어서며 수제화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지금은 그 수가 줄어 5백여 구두 제조업체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2011년 서울성 동 수제화협회는 공동판매장인 성수수제화타운(SSST)을 오픈하여 제품의 판매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SSST는 행정안전부 우수 마을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하 며 수제화 돌풍을 일으켰다. 현재는 또 다른 프로젝트인 슈스팟 구두테마역 프로젝트를 통해 수제화 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성수동을 찾는 힙스터들에게 성수역부터 뚝섬역까지 길게 이어진 수제화 거리는 꼭 한번 구경하기에 재미난 거리. 경력 수십 년의 명장들부터 신진 디자이너들의 트렌디한 가게까지 합리적인 가격에 각자 구두를 제작해 판매하는 이곳 수제화 거리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장소일 터. 골목을 걷다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신발 을 만든 유홍식 수제화 명장 1호의 가게도 마주칠 수 있다. 쇼핑보다는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2017년에 개관된 ‘성수 수제화 희망 플랫폼’을 방문하는 것 또한 옵션이다.
보존과 개발 사이, 성수동의 복합예술 문화공간
보존과 개발, 그 사이를 오고 가는 성수동의 복합예술 문화공간 몇 군데를 살펴보자. 사실상 오늘날 성수동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된 이 장소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과거 공간들의 특징을 살려 예술과 문화를 삶에 곁들이는 것. 맛있는 커피를 팔며 여러 전시와 포럼을 개최하는 문화공간의 수는 성수동에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가장 상징적인 대림창고와 자그마치를 살펴보자.
1970년대 정미소와 창고로 20년 넘게 쓰이다가 2011년 몇몇 젊은 예술가들에게 인수된 대림창고 갤러리 컬럼은 지금의 성수동을 있게 한 주인공이다. 투박한 옛 간판에 쓰 인 대림창고라는 글자와 붉은 벽돌의 외관이 눈에 띈다.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음악과 은은한 커피향이 없다면 공장이라고 충분히 오해하고 지나칠 수 있겠다. 하지만 거대 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드로잉과 설치미술을 비롯한 여러 예술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대림창고는 현재 레스토랑 겸 카페로 운영되지만 특별한 행사 장 소로 쓰이기도 한다.
자그마치 또한 100평짜리 인쇄 공장을 개조한 카페로 여러 강연과 팝업 스토어, 작가들의 전시와 포럼들이 열린다. 새것을 만들기 위해 과거의 것을 허물지 않고 그 특징을 살리는 성수동의 문화예술공간은 어느새 재미있고 궁금한 곳으로 알려져 조용할 틈이 없게 되었다.
성수동만의 붉은 벽돌, 도시재생사업으로 특유의 포토스팟이 되다
서울숲 북쪽과 맞닿은 길인 아틀리에 길을 걷다 보면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수제화도 공장형 카페도 아닌 바로 붉은 벽돌. 최근 블루보틀이 문을 열며 더욱 활 성화되고 있는 이 길은 유독 붉은 벽돌 건물로 가득하다.
1970년대부터 벽돌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아틀리에 길은 아기자기한 공방과 카페들이 들어오며 그 이름을 얻었다. 이제는 포토 스팟이 되어버린 붉은 벽돌이라는 상징성 이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특유의 벽돌 건물들이 유지되는 이면에는 바로 성동구청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는 ‘붉은벽돌 마을 사업’이 존재한다. 이 사업은 벽돌 건축기법으로 건물을 리모델링할 경우 구청에서 일부 지원해 주는 사업. 브랜드의 상징색인 파란색을 버리고 붉은 벽돌을 택한 블루보틀 성수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식료품 편집숍부터 와인바까지
성수동의 수제화 거리와 창고형 카페들이 있는 골목에서 살짝 벗어나 성수일로에 위치한 ‘새촌마을’에 젊은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 새로 지은 마을을 뜻하는 이 동네는 조용한 주택가 골목으로 젊은 창업자들이 모여 기존의 성수동과는 또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고. 성수동 골목골목을 다니며 허기진 배 를 이곳에 위치한 독특한 가게에서 달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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