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국에 와서 머무는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삼겹살이 수백 년 동안 한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음식이라고 하면
아무런 의심없이 믿을 것이다.
전국 식당가에 한 집 건너 삼겹살 가게인 오늘날,
옛날에는 한반도에 너비아니나 맥적이라는 소고기 요리는 있었지만
돼지고기를 요새처럼 먹지는 않았다는 걸 설명하기가 도리어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음식의 상징이 된 김치가 오늘날의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은 길어야 일이백 년 전이고 전국민이 먹게 된 것은 더 짧은 세월이라는 사실, 삼겹살을 먹기 시작한건 불과 40년이 될까 말까 하다는 사실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비가 오는 날 파전을 부쳐먹는 습관도 한국전쟁 이후의 일이다. 밀이 드물던시절에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귀한 음식에 속했다. 지금은 흔한 국수도 그렇고. 오삼, 뚝불, 불낙 등 희한한 이름의 메뉴는 아주 최근 숱하게 나왔다 사라져간많은 실험적 메뉴에서 살아 남은 것들이다. 요새 젊은 세대에 대중음식으로 자리잡은 스팸 같은 런천미트나 탕수육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소엔 언감생심 넘보지못할 높은 존재였었다.
일본을 방문한 여행객들이 생선초밥, 그러니까 ‘스시’를 맛있게 먹고 오는데 이 일본의 상징 같은 스시가 오늘날의 모습과 내용을 갖춘건 아주 최근이라는 걸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일일이 그 내력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니 이게 문제라고 지적하는게 아니다. 그만큼 세계 2차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어디서나 음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고, 이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은 것 뿐이다. 중국을 여행하면 엄청나게 다양한 메뉴에서 압도되곤하는데,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나이 든 세대들은 문화혁명 이야기를 하면서 얼마나 식생활이 단촐하였나 되새기곤 한다. 문화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는것이, 80년대 들어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소득이 늘어나면서 대도시의 외식문화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한가지 요리가 전국에 보급된 것만 이야기하려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마라샹궈’, ‘마라탕’ 아니면 ‘훠궈’ 같은 매운 음식이 쓰촨 지역을 벗어나 전국에 퍼진 건 불과 20년이될까 말까다. 대륙의 젊은이들이 웬만한 도시라면 저녁에 쓰촨 훠궈, 광둥 딤섬, 베이징 오리구이, 상하이 소룡포, 선양 만두, 란저우 우육면 등을 골라먹거나미국 햄버거, 이태리 파스타를 골라먹을 수 있게 된 오늘날 옛날의 흔적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다.
얼마 전 미국에서 친구가 SNS로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50년대의 식생활’이라는 제목의 글인데 검색해보니 ‘60년대의 식생활’이라는 제목으로도인터넷에 떠다니는 내용이었다. 내용이 대단히 재미가 있었고 또 역지사지로 느끼는 바도 있어서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파스타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그저 마카로니와 스파게티가 있었을 뿐.
커리(Curry)는 사람 이름이었다.
테이크 어웨이(포장해 가기)는 수학용어(뺄셈)일 뿐이었다.
피자? 어디에선가 기울어져 간다는 탑 얘기?
오렌지나 바나나는 크리스마스 때나 보는 것.
오일은 윤활유를 의미하고 요리엔 유지(fat)를 썼다.
티는 티팟(찻주전자)에서 우려냈고, 초록색 찻잎이란건 존재하지 않았다.
각설탕은 품격있는 고급품이었다.
치킨은 손가락이 없었다.
요구르트가 뭔지 들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건강한 음식이란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해초는 음식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케밥’은 음식은 커녕 단어도 아니었다.
설탕은 하얀 금이라고 불렸고 좋은 이미지였다.
건곡류는 있었다. 가축 사료로.
파인애플은 잘라져 깡통에 들어있었고 원래 생긴 모습은 그림으로나 보았다.
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왔고, 그걸 병에 담아서 휘발유보다 비싸게 판다고 하면 큰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식탁 위에 절대로 올려놓아서 안될 것 세가지는… 모자, 팔꿈치 그리고 휴대폰이었다.
따로 설명이 없어도 읽으면 충분히 상상이 가는 내용이다. 제일 잘산다는 나라가 60년 전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점도 여러군데 있는게 재미있다. 그만큼서구에 있는 국가도 식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홍차만 알던 문화에 녹차가 소개되고 김,미역을 먹기 시작하고, 두부라는 희한한 것이 유행한 것은동아시아의 영향이다. 아시안들이 닭발을 찾기 시작하면서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커리를 보통사람들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인도, 파키스탄으로부터 이민이유입되면서고, 케밥은 터키를 비롯한 중동으로부터의 이민이 크게 유행을 시켰다. 파인애플, 바나나는 처음엔 하와이에 재배를 하며 자급을 하다가 지금은 전세계를공급처로 삼아 수입을 하면서 값이 싸졌다. 그러면 오늘은 미국 가정의 60년대 중반의 식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1995년에 제작되었는데 영화 속 이야기는 1965년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9백만부 이상 팔린 동명의 소설을 스티븐 스필버그가 출판도 되기 전에 2만5천불이라는 헐값에영화화 판권을 매입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나온 시나리오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하였다. 그는 남자 주인공도 맡았고 여자 주인공은 메릴 스트립이열연하였다. 결과는 세계적으로 대단한 흥행성적을 기록하였고 많은 영화제에서 상도 많이 수상한 수작으로 남았다.
영화는 아이오와의 농장에 홀로 남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도시에 사는 남매 마이클과 캐롤라인이 유언 집행을 맡은 변호사의 입회 아래 어머니의 유서와유품을 정리하는데에서 시작한다. 둘은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 곁에 매장을 하지 말고 화장을 하여 재를 인근 로즈만 다리에 뿌려달라는 유언에 깜짝놀란다. 그러나 유품을 하나하나 살피다가 일기장을 발견하고는 어머니가 평생 가슴에 묻어둔 비밀을 알게 되면서 수십 년 전 운명의 나흘간으로 빠져들어간다. 어머니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가 식구들이 옆 도시 축제에 간 나흘 동안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프란체스카는매디슨 카운티 마을에 있는 지붕 덮인 오래된 다리를 취재하러 온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가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가족을 버리고 사진작가와 함께 떠날까 심각한 고민도 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고 이별을 택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정리해버리면 그냥 단순한 짧았던 사랑의 불장난, 심하게 얘기하면 무료했던 주부의 나흘간의 불륜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 영화가 숱한관객의 심금을 울린 명작으로 남았을 리가 없다. 모두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에 공감하고 이별을 애처러워 할 만큼 섬세하게 잘 만들었다. 그리고영화에 나오는 음식 역시 그냥 지나가는 소품이 아니라 단단히 제 몫을 한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식사장면은 남편과 아들 마이클, 딸 캐롤라인이 나흘 동안 집을 비우기 전에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다. 식탁에는 흰 빵과 햄 같은 고기 접시가올라 있다. 그리고 케첩병이 놓여있다. 사실 요새같이 먹는다면 식탁에 케첩을 병째로 올려 놓지는 않는게 타당하다. 우리나라 가정에서도 식사를 하는데 식탁 위에간장병이나 식초병을 올려놓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리 요리에 간을 맞추어 내거나 혹시 찍어 먹을 음식이 있다면 조그만 종지에 덜어 내는게 일반적일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중식당에 가면 지금도 간장용기나 식초용기가 놓여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서민적인 대중식당인 다이너에 가면 테이블마다 케첩,머스타드 병이 커다란 설탕통과 함께 놓여있다. 이 장면에서 이들은 그냥 미국의 농촌 가정의 간단하고 투박한 식생활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벌써 수십 년이지나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놀라겠지만 우리나라도 한때 식탁용 미원 용기가 있었다. MSG를 식탁 위에 놓고 여기저기에 뿌려먹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다. 지금모든 식당에서 감칠 맛을 상당부분 MSG에 의존하는 것을 생각하면 부실한 재료로 만든 국이나 찌개에 ‘마법의 조미료’를 넣어 맛을 증진시키는게 현명한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해도 간다.
프란체스카네 저녁식사로 되돌아 간다. 여기에 몇가지 암시가 들어있다. 프란체스카가 저녁 준비를 하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 선율을 듣고 있는데캐롤라인이 주방으로 들어오며 이내 음악을 팝송으로 바꾼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프란체스카는 케첩을 체념한 듯 식탁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본인은 음식에손을 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묵묵히 가족들의 식성에 맞추어 때가 되면 식사를 만들어 내는 주부, 그리고 당신은? 엄마는? 하고 물어주는 사람 없이 각자자신의 식사에 바쁜 남편과 자식들. 이러한 일상은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의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을까?
다음날 식구들이 떠난 뒤 오랜만에 홀가분하지만 한편으로 일상에 치여 느끼지 못했던 마음속의 외로움이 솟구쳐 오르는 프란체스카 앞에 뜻밖의 방문객이 나타난다.매디슨 카운티 다리를 취재하러 왔다는 사진가가 길을 묻는다. 이리 쭉 가면, 저리 쭉 가면…이라고 여기기만 했던 아이오와의 길었던 시골생활, 프란체스카는자신이 길을 설명하기 쉽지 않다는걸 새삼 느끼고 직접 안내를 자청한다. 그리고 다음날 로버트를 저녁에 초대한다. 둘은 맛있게 먹고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디저트로 브랜디까지 마신다. 메뉴는 파스타와 이태리 음식이다. 프란체스카는 이태리 나폴리 출신 처녀였는데 2차대전 때 진주한 미군과 만나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건너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로버트와의 대화에서 관객들도 알게 된다. 꿈 많던 처녀시절 전후 궁핍한 고향 나폴리를 떠나 영화에서 보아오던 뉴욕 헐리우드의 생활을동경하며 미군병사와 결혼한 숱한 전쟁 신부(war bride)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미국의 깡촌 중에 깡촌, 아이오와의 자그마한마을이었다. 무슨 결함이 있거나 하면 또 모르겠지만 그저 순진하고 성실한 농부였던 남편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아들 딸 낳고 20년 가까이 살아온 터였다.
나와 친하게 지낸지 30년이 된 미국친구가 있는데 그의 부인이 오하이오의 농촌 출신이다. 미인대회 출신답게 여전히 미모를 자랑할 만한데 처음엔 입이 짧아놀랐다. 예를 들어 이태리 음식은 피자 외에는 잘 안먹을 정도라서 그녀가 끼면 한국식당이나 중국식당은 선택지에서 벗어난다. 언젠가 그녀가 먹고 자란식단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어려서 자랄 때 일주일에 닷새는 소고기만 먹었다고 했다. 주말에 어쩌다 치킨을 먹었고 아주 가끔 돼지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그때 사람들은 채소라고 하면 당근하고 콩 밖에 몰랐다는 말에 놀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보았는데 푸른 잎 채소, 샐러드 이런게 별로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오죽하면 뽀빠이 만화영화를 통해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세진다는 홍보를 했겠냐는 말도 했다. 다시 매디슨 카운티로 돌아간다.
둘은 숙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고, 프란체스카는 다음날 아침식사가 끝나갈 무렵 로버트에게 ‘강짜’를 놓는다. 나도 당신이 거쳐간 숱한 여자 가운데 하나일테니당신을 잊어야 할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로버트는 그런게 아니고 자신은 진심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때 아침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스크램블 에그와구운 토스트 그리고 넉넉하게 내린 커피다. 옛날에 우스개소리인지 진짜인지 아시아에서 여자에게 결혼을 하고 싶다고 표현하는 문구에 ‘아침에 당신이 만들어준된장찌개(아니면 미소시루)를 먹고 싶다’는게 있다고 들었다. 요즈음같이 부부간에 공평하게 역할분담이 된 세상에선 욕먹을 소리겠지만, 여자는 주부로 살림을 하고남자는 부인이 차려준 아침식사를 먹고 기운을 내어 일터로 향하는 시대에는 통하는 이야기라 하겠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신으로 살다가 사랑에 빠진여인이 정성껏 차려준 아침을 얻어먹은 로버트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성의를 다해 아침을 준비한 프란체스카의 모습이 화면에 잘 드러난다. 식구들이 먹을 때는 늘굽지 않은 흰빵이 식탁에 올라있다. 그런데 로버트의 식탁에는 바싹 구운 토스트가 올려져 있다. 식구들에게 맞추는게 아니라, 본인의 의사대로 맛있게 만들고 또그걸 알아주는 상대. 잘 맞는다는게 이런 것 아니겠는가.
결국 헤어져야 하는 전날 마지막 저녁은 제대로 정찬을 만들어 먹는다. 평소 일상에 식사를 하는 주방에 놓여진 간이 식탁이 아니라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특별한 날에만 사용하는 다이닝룸에 제일 좋은 식기를 꺼내어 차려놓고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한다. 이른바 ‘캔들 라이트 디너’인 것이다. 뉴욕이나 보스턴 같이밀집한 대도시의 주거환경이 아니라 널찍한 대지 위에 단독 주택을 지어 사는 미국의 가정에선 공간에 대한 집착이 없다. 한국사람들이 보면 낭비에 가까울 정도로널널하게 공간을 쓰고 산다. 평소에 식사를 하는 테이블을 주방에 두고 어쩌다 정찬을 하는 다이닝룸을 따로 만드는 것도 그렇다. 영화에서 프란체스카는 한껏솜씨를 부린 요리를 차리고 둘은 슬픈 이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다음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둘은 이별을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가정의 식사장면이 들어온다. 식탁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넉넉하게 올려놓은 굽지않은 흰 빵 그리고 버터 덩어리, 케첩병이 눈에 들어온다. 말없이 묵묵하게 각자 양껏 알아서 먹는 농촌의 식사.
세월이 흘러 시간은 현재로 되돌아 온다. 30년이 흐른 뒤에 같은 장소에서 마이클과 캐롤라인, 두 자식은 이제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변화를 영화는 이런저런 미술과 소품으로 보여준다. 오븐과 냉장고가 바뀌고 다이닝룸의 의자가 바뀌어 있다. 벽지도 바뀌었는데 제일 눈에 들어오는 변화는 주방벽에 설치된 스파이스 랙, 그러니까 각종 허브와 스파이스를 얹어놓은 선반이다. 지금 미국 가정에 가보면 어느 집이나 수십 종류의 스파이스를 구비하고 있다.그게 그러니까 최소한 60년대 중반엔 보편화하지 않았다는 걸 나도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알게 되었다. 60년대 말 유행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보로의추억’이라는 명곡이 있는데 가사에 ‘스카보로의 장에 가거든…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앤 타임’이라는 후렴구절이 있다. 그저 라임을 맞추는 의미없는 가사라고여겼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각종 허브와 스파이스를 요리에 사용하는게 그때 즈음해서 유행하기 시작한게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작품 중 숱한 관객을 울린 명작으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가 있다. 1979년 영화로 앞의 영화보다 15년 이상 먼저 제작되었지만 영화속 배경은 현재이므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보다 15년 뒤의 이야기다. 내용은 직장의 일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하는 남편 테드(더스틴 호프만)와헤어지기로 한 조애나(메릴 스트립)가 여섯살배기 아들 빌리(저스틴 헨리 : 그는 이 영화로 최연소 아카데미상 후보, 최연소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올랐다)의 양육권을 놓고 싸우는 이야기다. 부모의 갈등에 끼여 고생하는 어린아이, 편모 편부의 어려운 점, 직장과 가정의 양립 등을 다룬내용이라 이혼이 엄청 늘어난 당시 미국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 테드가 처음으로 어린 아들에게 아침을 차려주는데 프렌치 토스트를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계란에 우유를 넣는 것도 잊고, 프라이팬에서 빵이 타는 것도놓치고, 뜨거운 팬에 손을 데이고 하는 장면이 초반부에 나온다. 그리고 요리를 포기하고 도넛에 우유를 먹이고 저녁은 오븐에 데우는 이른바 냉동 TV디너를사다가 주곤 한다. 빌리는 반항으로 저녁을 안먹고 대신 아이스크림을 퍼먹기도 하고 그런다. 마지막에 헤어져야 하는 전날 밤에 마지막 식사는 부자가 척척 손발이맞아서 능숙하게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더욱 관객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미국영화에서 보면 바쁜 아침에 시리얼로 식사를 대신하거나 냉동식품을데우거나 싸구려 테이크 아웃 중국음식을 사다가 먹는 장면이 숱하게 나온다. 나는 바빠요, 나는 식생활이 엉망이에요를 너무 노골적으로 안이하게 묘사하는 클리셰같아서 전혀 감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꼼꼼하고 성실하게 디테일을 묘사하여 주인공의 삶을 잘 나타내 스토리 외적으로 또 매력으로 다가온다. 미국의 옛날식생활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골라본 영화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시대의 변천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가 많이 나오리라 믿어본다.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