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예술의 풍경

백화점에서 쇠스랑 닮은 포크로 먹는 ‘난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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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예술의 풍경 2019.03 28 제 22호 근대의 위생 프로젝트, 조선인의 일상을 바꾸다 근대 예술의 풍경 2019.03 28 제 22호 근대의 위생 프로젝트, 조선인의 일상을 바꾸다
근대 예술의 풍경 2019.03 28 제 22호 근대의 위생 프로젝트, 조선인의 일상을 바꾸다-1
영화 <반도의 봄>에 비친 고급 호텔 양식당 장면 (출처 : 한국영상자료원)

“저어 참, 영감님?”
“왜야?”
“우리 저기 미쓰꼬시 가서, 난찌 먹고 가요?”
“난찌?”
“난찌라구, 서양 즘심(점심) 말이예요.”
“서양 즘심?”
“내에, 퍽 맛이 있어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구석구석을 사실주의의 눈으로 포착한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의 한 장면이다. 예순다섯 나이에도 100kg이 넘는 당당한 체구, 서울에서도 부자로 이름난 주인공 ‘윤직원 영감’은 목하 십오 세의 어린 기생 춘심과 연애 중이다. 말이 연애지, 윤 영감은 나이 어린 여성의 옷을 벗겨 보겠다고 정신이 나간 판이고, 춘심은 색욕에 눈 뒤집힌 늙은이를 벗겨먹자고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다. 또는 매소부든 첩이든 없어서 못 댈 리 없는 윤 영감 아닌가. 윤 영감은 돈 주고 사기 불가능한 에로티시즘 및 섹슈얼리티의 한순간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 영감은 사랑방에서는 연인이 먹고 싶다는 탕수육을 배달시킨다. 갖고 싶다는 반지를 사주겠다며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전신, 1929년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에 들어선 미쓰코시(三越)백화점에도 함께 간다. 오늘날 ‘데이트 세리머니’의 원형이 여실하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유혹하자면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충분히 써야 한다. 자본제 아래서는 ‘쓰는 게’ 세리머니이다. 당시 청요리라 불린 중국요리도 동원해야 하고, 서양요리도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음식의 감각에는 꽤 까다로운 구석이 있는 법이다. 춘심은 원하던 난찌, 곧 런치(lunch)를 얻어먹는 데는 실패한다. 늙은 연인은 쇠스랑 모양의 식기인 포크를 견딜 수 없었다.

“아서라! 그놈의 서양밥, 말두 내지 마라!”
“왜요?”
“내가 그년의 것이 좋다구 히여서, 그놈의 디 무어라더냐 허넌 디를 가서,
한번 사먹다가 돈만 내버리구 죽을 뻔히였다!”
“하하하, 어떡허다가?”
“아, 그놈의 것 꼭 소시랑을 피여 논 것치름 생긴 것을 주먼서 밥을 먹으라넌구나! 허 참…….”

난찌의 내용, 세목은 무엇이었을까. 정황으로 보아 1990년대까지 제법 한국에 남아 있었던 경양식에 가까웠을 듯하다. 경양식집에서는 수프, 돈가스 또는 함박(햄버그스테이크)이 있었고, 밥 또는 빵을 곁들인다. 젓가락질은 하지 않고 온통 포크를 쓰도록 한다. 사라다(샐러드)도 주문 가능하다. 마무리로는 커피, 홍차, 청량음료 따위를 주문할 수 있다. 식민지 조선의 난찌 또한 이 언저리에 있었을 것이다. 여기 잇대 읽으니 식민지 시기의 인기 대중잡지 『별건곤』 1930년 제31호의 한 꼭지가 재미나다.

“‘토마토-하이칼라’ 토마토-란 빨간 일년감으로 서양인은 즐겨 먹지만 동양 사람의 입에는 그리 신통치가 못하다.
그럼에도 불고(불구)하고 양풍(洋風)을 쫏츨여고(쫓으려고) 억지로 먹기 조와하는(좋아하는) 사람을 가르치는(가리키는) 말.
되다 만 하이카라1)를 빈정그릴(빈정거릴) 때 쓴다.”

“‘톤카츠’ 돈(豚)카츠레츠란 말인데 일반으로 하등양식(下等洋食)의 대명사.”

꼭지의 제목은 “신어대사전(新語大辭典).” 오늘로 치면 ‘인터넷 신조어’, ‘야민정음’ 풀이 같은 꼭지이다. 다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연인이 떠오른다. 춘심은 난찌가 정말 입에 맞았을까, 아니면 유행의 첨단 백화점 양식부 음식이니까 맛있다고 스스로를 강박했을까? 윤 영감의 완고함에는 식민지 힙스터, 토마토-하이칼라보다는 정직한 데가 있었단 말인가? 이보다 앞서 연재되고 단행본으로 나온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에도 난찌의 자취는 선명하다. 대도시 출신으로서 윤 영감보다는 젊은 축이라면 양식이 낯설지 않았다. 이태준은 1929년 “주머니가 푸근하면 양식(洋食)집으로 가고 그렇지 못하면 일본집 소바 먹으러 가는 것이 보통”2)이라고도 했다. 신문, 잡지 속 서양 음식 관련 자료는 너무 많아서 이 지면에서 이루 다 거론하기 어렵다.

조선 음식 연구의 선구자 방신영은 1910년대 집필을 시작한 이래, 해방을 지나서까지 개정을 거듭한 조리서 『조선요리제법』3)의 여기저기에 일찌감치 수프와 커틀릿4)(cutlet), 디저트 및 케이크 그리고 커피에서 코코아에 이르는 ‘서양요리’를 소개했다. 방신영과 동시대에 활동한 요리인이자 조리서의 저자인 이용기 또한 자신의 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5)에서 방신영이 다룬 만큼 서양요리를 다루었다. 이용기는 커틀릿을 이렇게 설명했다.

근대 예술의 풍경 우리가 아는 그 ‘가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2
식민지 시기 조선호텔의 주방. 에스코피에식 주방의 모습이 선명하다.
에스코피에식 주방은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에 의해
자리잡은 현대 본격 요식업장 주방이다. 전문 조리 분야에 따라 구획되며,
이에 최적화한 설비와 디자인을 갖추었다. (사진제공 : 고영)

“‘가쓸내쓰’ 우육을 얄게 써러서 깨소곰을 죠금 뿌리고 칼로 잠간 것(겉)만 익여서(이겨서_찧어 다져서) 밀가루를 뭇치고(묻히고) 계란을 씨워서(씌워서) 기름에 지지나니”

이용기나 방신영이나 커틀릿의 재료는 우육, 곧 소고기이다. 이 부분은 『별건곤』의 ‘톤카츠’와 함께 읽어볼 만하다. 그 유래가 영어권의 커틀릿이든 독일어권의 슈니첼(Schnitzel)이든, 우리에게 익숙한 일식 돈가스는 1929년에야 본격적으로 도쿄에 등장한다. 도톰한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넉넉히 입혀 덴푸라(天婦羅) 튀기듯 튀겨 한입거리로 내고, 우스터소스와 양배추채에 미소시루를 곁들어 쌀밥과 함께 먹는 돈가스, 일본어로 ‘톤카츠(豚カツ)’가 확립되기 전과 그 뒤로도 얼마간, 소고기 커틀릿과 돼지고기 커틀릿과 돈가스가 엎치락뒤치락 뒤섞인 음식 풍경이 이어졌다.

일본에서든 조선에서든 그랬을 텐데, 그 풍경이 1910년대 이래 조선인이 쓴 조선어 조리서에 이렇게 남아 있다. 이 주변이 식민지 조선, 해방 이후 20 세기 한국인 서민대중 일상 속 양식의 풍경이 아니었을까. 앞서 보았듯, 당시의 대중매체는 이를 ‘하등양식’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보다 본격적인 우등 또는 고급 양식의 풍경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여기서는 호텔의 역사에 파고들 일이다.

호텔은 구미 현대의 해운, 철도와 함께 자란 새로운 숙박 시설이다. ‘서양식 호텔’이라고 할 것도 없이 호텔은 구미 역사문화의 산물이다. ‘료칸’, 여관 등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공간인 호텔은 본격적인 식당을 전제로 한다. 제대로 된 식당이 없으면 제대로 된 호텔이 아니다. 이때 지역색은 둘째 문제다. 20세 기 중반까지, 호텔의 식당이란 서구 음식 가운데서도 프랑스 음식을 정점으로 하는 양식당을 기본으로 했다.

근대 예술의 풍경 우리가 아는 그 ‘가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2
<디 인디펜던트>에 실린
서울호텔 광고.
다양한 구미 먹을거리뿐 아니라
‘최고의 프랑스 음식’이
나온다는 점을 강조했다.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1880년대에 일본인이 인천에서 개업한 한국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에서도 서양식을 판매했다. 1890년대에 오늘날의 덕수궁 권역에서 영업한 서울호텔(Seoul Hotel)은 프랑스 음식 판매가 자랑이었다. 1901년경 덕수궁 앞에 문을 연 팔레호텔(Hotel du Palais)은 프랑스 요리사가 일한다는 점을 뽐냈다. 독립신문의 영어판인 <디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에는 외국인 여행객, 체류자를 향한 호텔 광고가 이어졌다. 이때 광고의 핵심은 와인에서 버터에 이르는 서양 먹을거리를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프랑스식 식사가 가능한지 여부였다. 이후의 호텔 영업은 일본 통치기구 및 일본 자본이 독차지하게 된다. 대표적인 공간이 오늘날 서울 소공동에 자리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전신인 조선호텔이다.

대한제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낸 공간인 환구단을 엑스테리어로 삼은 조선호텔은 최신식 ‘에스코피에식 주방’을 갖추고 일찌감치 명성을 쌓았다. 이곳의 건축과 프랑스 음식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게다가 꾸준히 일본제국과 해외에 광고를 집행했으니, 최승희 같은 유명인이 해방 전 조선호텔 양식당의 광고 모델이었다. 1941년 이병일이 감독한 영화 <반도의 봄(半島の春)> 속 호텔 데이트 장면의 배경 또한 조선호텔 양식당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시골 출신 육순 늙은이는 하등양식 차림에 나온 포크가 언짢았지만, 최고급 호텔 양식당에서 거리낄 것 없는 세대도 등장했다. <반도의 봄>의 양식당 풍경 속 여성은 연예인 지망생이며 남성은 음반사의 부장,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기획사와 연예 제작 부문에서 힘 좀 쓸 만한 사람이다. 양식은 도시, 데이트 세리머니, 업무, 연예산업, 대중문화, 다중이용시설에 다 걸친 사물이었다. 보통 사람의 행동 이상으로 매체 및 대중문화의 한순간에 특별한 인상을 부여하는 음식의 등장, 그 음식이 빚어내는 만화경. 이야말로 근대의 풍경이다.

1) high colla. 드레스셔츠의 깃으로서 운두가 높은 깃이다. 식민지 조선과 20세기 한국에서, 서양풍 최신
유행만 좇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로도 쓰였다. 오늘날의 ‘힙스터’에 버금가는 말 맛이 있다.
2) 『별건곤』, 1929년 제23호, ‘유령의 종로, 가두만필’
3) 초판 1917년. 이에 앞서 1913년 『요리제법』을 집필했다.
4) 당시 표기는 ‘카쓸래쓰’, ‘가쓸내쓰’ 등이다.
5) 초판 1924년

글 / 고영_음식문헌 연구자

저서 및 역서 :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다모와 검녀』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마폭을 무릅쓰고-심청전』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장화홍련전』
『높은 바위 바람 분들 푸른 나무 눈이 온들-춘향전』 『게 누구요 날 찾는 게 누구요-토끼전』 『반갑다 제비야 박씨를 문 내 제비야-흥부전』
『허생전-공부만 한다고 돈이 나올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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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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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