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제로, 보티첼리 등
천재적인 예술가들을 배출한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이 도시 한 가운데에는 독특한 회백색의 아름다운 외관을 지닌 '두오모',
즉 '피렌체 대성당(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피렌체의 랜드마크가 된 이 곳에 숨은
두 예술가의 치열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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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401년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인해 피렌체에서도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이것이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신을 위해 세례당 문을 만들기로 하고 공모전을 여는데…
피렌체의 많은 예술가들이 공모전에 참가했고, 그 결과 유력한 후보가 2명으로 좁혀졌다. 바로 ‘기베르티’라는 젊은 금세공사와 비슷한 또래의 ‘브루넬레스키’였다.
긴 논의 끝에 작품성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은 기베르티가 최종 선택되었고,
경쟁자였던 브루넬레스키의 실력을 아까워 한 기베르티는 그에게 조수 역할을 맡아줄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자존심 강하고 고집 센 브루넬레스키는 단번에 거절하고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한다.
상실감에 빠져 한동안 방황하던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의 고대 건축물들을 보며 영감을 얻고, 건축 공부에 매진하며 안목과 기량을 키워갔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피렌체로 돌아와 또다른 기회를 맞이한다. 피렌체 시의회에서 122년째 완성하지 못하고 있던 두오모의 거대한 돔을 제작할 사람을 공개모집했던 것이다.
공모에 참여한 브루넬레스키는 여기서 또 한번 청동문을 제작하고 있던 기베르티와 맞붙고, 이번에는 로마 판테온에서 착안한 공법으로 승리를 쟁취한다. 2년 후 돔의 공사가 시작되었고, 돔이 건설되는 동안 기베르티의 청동문도 점차 완성되어 갔다.
1436년, 16년만에 두오모의 돔이 완성되었다. 내부 직경이 45미터, 외부 직경이 54미터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이 꿈꾸던 조각가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창시자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또 16년이 지난 1452년, 기베르티가 평생을 걸쳐 제작한 청동문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미켈란젤로가 훗날 이 청동문을 보고 '천국의 문'이라 찬양하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두 예술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탄생한 이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