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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231년, 성난 표정의 몽골군이 고려의 구주성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구주성 안에 살아남은 자가 한 명도 없도록 싹 쓸어버리거라!"
몽골군은 포차를 사용해 큼직한 돌들을 날리기 시작했고, 성벽은 조금씩 허물어졌다. 이때, 몽골군으로부터 날아온 바위가 고려군 전방에서 지휘하고 있던 한 장군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장군, 위험합니다. 후방으로 몸을 피하십시오!"
"아니다. 내가 움직이면 너희들의 마음도 움직일 것이다."
날아오는 바위에도 꿈쩍하지 않고 병사들을 지휘했던 장군이 바로 고려의 용장, 김경손이었다.
일주일 전, 몽골군은 고려를 점령하기 위해 북쪽 요충지인 구주성을 향해 진격했고, 당시 서북면 병마사였던 박서가 구주성을 지휘하고 있었다.
"구주성을 빼앗기면 우리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
별초군은 물론 백성들도 모두 끌어모아 구주성으로 집결하라!"
하지만 잔인한 몽골군의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성을 떠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 나주군을 지휘하고 있던 김경손도 결사대원 12명과 함께 구주성에 합류했다.
이윽고 구주에 도착한 몽골군은 구주성 인근에 진을 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몽골군을 살피던 김경손은 기습을 제안했지만, 몽골군에게 잔뜩 겁을 먹었기에 선뜻 나서는 자가 없었다. 결국 김경손은 12명의 부하만을 데리고 적군의 진영으로 다가갔다.
"몽골군은 우리가 기습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선두에서 활을 쏘면, 너희들도 사방에서 활을 쏘거라."
김경손의 지시대로 사방에서 활을 쏘아대자, 방심하고 있던 몽골군 수십 명이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적의 규모를 알 수 없었던 몽골군은 결국 후퇴했고, 김경손과 12명의 병사는 무사히 구주성으로 복귀했다. 망루에서 기습을 지켜보던 고려군은 김경손의 활약에 비로소 자신감을 얻었다.
다음 날, 고려군에게 치욕을 당한 몽골군은 다시 구주성 앞으로 진격했다. 몽골군은 맹렬히 공격했지만 고려군은 그에 맞서 침착하게 대응했다.
몽골군의 공격으로 성벽이 무너지자, 준비한 목책으로 무너진 곳을 메웠다. 이에 몽골군이 목책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자, 흙을 개어 불을 진화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구주성은 여전히 버티고 있었고, 금방 함락할 거라고 생각했던 몽골군은 점차 조바심이 났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고려를 점령할 수 없다. 모든 포차를 동원하여 성문을 집중 공격하라!"
몽골군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고려군은 쇠사슬로 성문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공격이 실패할수록 몽골군의 사기는 떨어졌고 고려군의 사기가 올랐다.
"지금이다. 이제 우리가 공격할 차례다!"
자신감을 얻은 고려군은 성 밖으로 나와 몽골군을 습격했고, 기세에 밀린 몽골군은 결국 후퇴하고 말았다. 5개월 동안 이어진 긴 전투가 고려군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당시 전 세계에 용맹함을 떨친 몽골군을 상대로 구주성을 지켜낸 김경손과 고려군. 이는 소수의 병사만으로 적진을 기습하는 용기와 용맹, 그리고 위기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군사들을 독려했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