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4월 5일.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에서 갑자기 대포 소리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의 정체는 바로 섬 북쪽에 위치한 탐보라 화산의 폭발!
하지만 이 폭발은 대재앙의 예고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5일 뒤, 탐보라 산에서 지난 1,000년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화산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용암과 화산재로 섬 원주민들 대부분이 사망했고, 인도네시아에서 총 7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산 폭발은 곧 잦아들었지만 재앙은 멈추지 않았다. 막대한 양의 화산재가 적도 상공으로 올라가 햇빛을 가렸고, 이로 인해 기온이 낮아지면서 지구는 “여름이 없는”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상 기후는 가뭄과 홍수 등의 재해를 불러왔고, 곡물 생산량이 급격하게 줄어 사람은 물론 소와 말 같은 가축도 굶어 죽는 일이 속출했다.
자연재해로 전 인류가 위기를 맞이했지만, 독일 바덴의 산림청에서 근무하던 카를 폰 드라이스는 이를 자신의 발명품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의 발명품은 사람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고,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발명품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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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817년 6월 12일. 독일 남부의 도시 만하임의 가장 넓고 좋은 도로에서 옷을 잘 차려 입은 한 신사가 낯선 기계에 올라탔다.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교통수단은 말이나 말이 끄는 마차였다. 하지만 그는 말이나 마차 대신 두 개의 바퀴가 앞뒤로 연결된 기계에 올라 타 힘차게 발을 구르고, 핸들을 조정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날 그가 달린 거리는 총 12.8킬로미터! 기존의 우편 마차로는 4시간이나 걸리던 코스를 1시간 만에 주파했다.
탐보라 화산 폭발로 기근이 심각해지고 말도 귀해진 시기에, 마차보다 더 빨리 달리는 기계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기계는 곧 독일 전역에 빠르게 보급되었고, 사람들은 이를 ‘달리는 기계’라는 뜻의 ‘드라이지네(Draisine)’라 불렀다. 인류 역사에 드디어 ‘자전거’가 등장한 것이다.
자전거의 성장은 다른 상품이나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바로 말과 관련된 산업이었다. 1896년에 발표된 <뉴욕 상업 저널(New York Journal of Commerce)>에 따르면 미국 7대 도시에서 키우는 말의 숫자가 전년에 비해 24만 마리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에 따라 마차의 가격은 곤두박질 쳤고, 말을 보살피던 하인들은 새 직업을 찾아야 했다.
다음 희생자는 귀금속과 가구 시장이었다. 자녀들 선물로 시계나 목걸이를 사던 부모들이 이제 자전거를 사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신혼부부들 역시 부모에게 받고 싶은 선물 1순위로 가구 대신 자전거를 선택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자연스레 불편한 양복 보다는 스포츠 복장을 즐겨 입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양복점과 양장점이 25퍼센트 줄었으며, 뉴욕의 재단사 2만 명 중 8,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렇게 산업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자전거였지만 모터사이클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의 등장으로 잠시 그 인기가 주춤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1955년 심장병으로 고통 받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주치의가 자전거 타기를 추천했을 정도로 자전거는 교통수단이 아닌 운동기구로서 다시 떠올랐고, 1973년 오일쇼크 발생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환경 문제 이슈가 대두되면서 기름 없이도 탈 수 있는 자전거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월 1회 이상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은 1,340만 명에 달하지만, 실제 통근이나 통학용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38만 7천여 명으로, 전체 교통수단 중 분담률이 1.4%에 불과하다. 하지만 월 1회 이상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은 1,340만 명으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참고도서]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 한스 에르하스, 아날로그(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