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모자를 눌러 쓰고 긴급 투입된 772명의 학도병. 그들의 목표는 다음 날 펼쳐질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북한군을 교란하는 것. 불가능에 가까웠던 이 작전은 어린 학도병들의 희생으로 성공했다. 장사상륙작전이 펼쳐졌던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로 떠나보자.
772명의 학도병, 문산호에 탑승하다
1950년 9월 14일, 훈련 기간 2주, 평균 나이 17세의 학생 772명은 북한군의 이목을 돌리는 기밀 작전에 투입된다. 낡은 장총과 부족한 탄약, 최소한의 식량만을 보급받은 이들은 바로 부산 지역의 학도병들. 전쟁 시에 학업을 중단하고 적과 싸우는 학도병은 비정규군 소속의 어린 학생들이다. 제대로 된 군사 교육도 받지 못한 소년들은 어떻게 문산호에 탑승하게 된 걸까.
학도병 772명을 비롯한 유격대원 841명은 13일 부산 육군본부 연병장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부산항 제4 부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문산호가 장사리 해안 50m까지 접근할 즈음 태풍 ‘케지아’를 만나게 된다. 높은 파도와 짙은 안개로 목표 지점까지 갈 수 없었던 상황에서 오전 4시, 상륙 명령이 이어졌고 학도병들은 바닷물에 뛰어들어 장사리로 돌진한다. 해안에 있던 북한군의 기관총과 거센 파도에 맞서며 1950년 9월 15일 정오, 작전 34시간 만에 고지를 점령하고 포항과 이어지는 7번 국도를 장악하며 북한군 보급로를 차단한다.
인천상륙작전을 대비한 양동작전
“낙동강 방어선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북한군의 거점인 동해안 영덕 지구로 상륙하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한국군의 작전을 유리하게 하라.” - 육군본부 작전 제174호-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한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은 이른바 양동작전을 전개한다. 양동작전이란 적을 속이고 교란하기 위한 작전으로, 미군이 들키지 않고 인천까지 북상해 상륙작전을 벌이기 위해서는 북한 지도부의 관심을 분산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장사상륙작전 제1유격대는 장사리를 점령했고 그 사이,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장사리의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장사상륙작전 타임 라인
13일, 제1유격대 부산항 출발
15일,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고지 점령 및 7번 국도 차단
17일, 탱크와 2개 연대를 동원한 북한군의 반격, 식량 부족과 통신 두절로 고립되는 학도병들
18일, 유엔군 수송기의 소량의 탄약과 의료품을 지원. 턱없이 부족한 양으로 배고픔과 외로움 속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처절히 이겨낸 유격대원들
19일, 고립된 학도병들을 구출하기 위한 조치원호의 등장 및 철수작전 전개. 북한군의 총공세로 구조작전 포기, 해변에 30여 명의 학도병을 남기고 부산으로 철수
6일간 펼쳤던 장사상륙작전으로 인해 139명이 전사했고 92명 부상자가 발생한다. 사망한 학도병들을 제외한 이들은 대부분 행방불명 상태이다.
1997년, 문산호가 발견되다
극비 작전으로 역사 속으로 잊힐 뻔한 과거의 작전은 1997년 3월 6일, 다시 세상에 알려진다. 장사리해변에서 해병대원들에 의해 문산호와 유골이 함께 발견된 것. 2015년엔 침몰했던 문산호를 65년 만에 복원하기도 했다. 이후 4년이 지난 현재 문산호 내부에는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조성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올해 말 개관 예정인 기념관에는 문산호 실물모형과 장사상륙작전 스토리가 전시된다.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은 현재 장사해수욕장으로 탈바꿈했다. 해수욕객들이 드나드는 넓은 해변 일대에는 장사상륙작전의 승리를 기념하고 학도병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2012년 지어진 이곳에는 위령탑, 위패봉안소, 전시교육관 등의 현충시설과 서바이벌 체험장, 전망대 등 편의시설이 조성돼 있다. 매년 9월에는 위령제와 추모 음악제도 진행된다.
해변추모광장과 학도병 동상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에 들어서면 해변추모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학도병 동상들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학도병들은 군번도 없이 임시 계급장을 달고 있었기에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와 보상을 받지 못했다. 당시 군대를 이끌었던 이명흠 대위는 이후 평생을 이들의 군번과 이름을 찾는 데 힘썼다고 한다. 침몰 직전의 문산호에서 뛰어내려 상륙작전을 펼친 긴밀한 현장을 재현한 추모 광장의 동상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제1유격대대가 인천상륙작전을 지원하여 수행한 작전은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하며
대원들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적인 행동은 한국 젊은이들의 귀감이 될 것입니다.”
-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이끌었던 맥아더 장군이 직접 쓴 친서 내용 중
광장에 우뚝 선 기념비와 메모리얼 벽 앞에 다가가니 저절로 숙연해진다. 청춘과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며 희생한 호국영령을 향해 묵념을 올려본다. 장사해변 한편에 조성된 솔숲에는 학도병 추모등불광장이 있다. 학도병들의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이곳에서 밤에 켜지는 등불이 그들의 영혼을 달래준다. 사상과 진영의 분열이 초래한, 있어서는 안될 젊은이들의 희생.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분단의 상황과 이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 시사하는바 또한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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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리의 잊혀간 영웅들과 더불어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중 두 편을 소개한다. 장사상륙작전이 펼쳐진 이유이기도 했던 <인천상륙작전>과 전쟁이 끝날 즈음을 배경으로 한 <고지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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