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스턴트 라면의 진화와 발전은
인스턴트 라면의 종주국 일본을 무색하게 할 정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라면을 자유자재로 응용하여 먹을 만큼
생활에 라면이 밀착되어 있다.
한국 영화 속에선, 라면도 연기를 한다.
세계 영화계가 한국영화를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지 20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올해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평단과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미국영화 위주로 운영되는 아카데미상을 제외하고는 세계 유명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영화들이 막상 흥행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예술성 작품성을 고려하다 보니 요즘 관객들의 취향에서 거리가 먼 작품들이 선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대로 좋다고 본다. 유서 깊은 유명 영화제가 영화라는 매체를 예술의 한 장르로 보며 그 전통과 의지를 지키려는 마지막 보루 같아서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이런 징크스를 깨고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대단히 기쁜 일이다.
<기생충>은 미국에서도 10월에 개봉되어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데 내년 1월에 개봉하는 일본에서도 기대가 크다는 소문이다. 김칫국 같아서 미리 예단하기에 조금 조심스럽지만 내년도 아카데미상 여러 부문에서도 하마평에 오르는 것 같다. 이런 경사스러운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건 봉준호 감독 개인의 뛰어난 재능도 있지만 그 뒤에 버티고 있는 튼튼한 영화계의 인프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장준환, 김태용, 홍상수, 김기덕, 이명세, 강제규, 강우석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감독이 짧은 세월 동안 한국영화의 수준을 엄청나게 높여 놓으며 임권택, 배창호, 이장호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김수용, 이만희, 유현목, 신상옥의 전통과 맥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흔히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한 작품 한 작품 뒤에는 촬영, 조명, 미술, 의상, 분장, 특수효과, 시각효과, 액션, 편집, 음향, 음악, 믹싱 등 각 분야에 걸쳐 뛰어난 이들의 재능과 노력이 숨어 있다. 한국영화의 눈부신 발전은 이렇듯 제반 분야에서 꾸준한 진보와 도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업자로서 기쁜 마음에 쓰다 보니 영화계 얘기로 글을 시작했는데, 이번 호의 주제는 한국영화 속에 나오는 라면 이야기다. 지난 회 치킨 이야기를 하며 ‘청출어람’이란 성어를 가져다 썼는데, 사실 이 표현이 더욱 어울리는 건 라면인 것 같다. 한국 인스턴트 라면의 진화와 발전은 인스턴트 라면이 생겨난 종주국 일본을 무색하게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기생충>에서 ‘짜파구리’가 등장해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영화에는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과 그들을 고용한 부자가족, 이렇게 두 가족이 나오는데 부자가족이 캠핑을 갔다가 폭우에 일찍 돌아와 한밤중에 짜파구리를 만들어 먹는 장면이 나온다. ‘짜파구리’란 별개 라면상품인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서 끓여 더 맛을 내는 일종의 민간 하이브리드 메뉴인데 몇 년 전 TV예능에서 선보인 뒤에 인기를 끌었다. <기생충>에서 이 부자 식구들은 이미 혼성메뉴인 짜파구리에 고급 한우까지 넣어 만들어 먹는다. 원재료보다 고명이 열 배 이상 비싼 셈이다. 관객들은 ‘저렇게 먹으니 맛있지’, ‘한우가 아깝다’, ‘역시 부자는 달라’, ‘저런 게 졸부의 한계’ 등 각자 나름대로 그 장면의 의미를 해석하며 즐긴다.
‘짜파구리에 한우’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요즈음 대세인 ‘백종원의…’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각종 메뉴에도 변형 라면 레시피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라면을 이용한 각종 응용 레시피만 모아 놓은 창작메뉴집도 여러 권 발매되었다. 몇 년 전에는 TV 프로그램에서 주최한 라면만들기 대회인가에서 연예인 이경규가 만든 흰 국물 라면이 인기를 끌어서 실제 ‘꼬꼬면’이라는 상품으로 발매되기도 하였다.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라면을 자유자재로 응용하여 먹기도 하는 건 그만큼 라면이 생활에 밀착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오래전부터 김치찌개 식당이나 부대찌개 식당에서는 의례 사리를 넣어 먹는 걸로 알아서 스프를 뺀 ‘사리면’이라는 상품이 등장하였다. 여기서 미리 하나 밝히고 가자면 나는 일본에서 꽤 오래 생활하였다. 그리고 중화권에서도 살며 라면의 원조라는 각종 중국 면류도 많이 먹어보았다. 그래서 자신 있게 얘기하는데 인스턴트 라면은 단연 한국제품의 맛이 최고다. 그럼, 한국 라면의 세계를 하나씩 더듬어 가보기로 하자.
"라면 먹을래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보다도 더 유명한 장면으로 남은 대사이다. 주인공 은수(이영애)가 상우(유지태)에게 자고 가라는 말을 돌려 라면 먹고 가겠냐고 표현한 대목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공감하는 건, 일본 중국 그 어느 문화권보다도 심야에 라면을 끓여 먹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재미로 다른 나라 얘기를 하자면 미국에서도 남녀가 데이트하고 헤어질 때 대개는 남자가 여자네 집 앞까지 데려다준다. 그럴 때 들어와서 "커피 한잔할래요?"라고 묻는 게 한국의 "라면 먹고 갈래요?"와 통하는 표현이다. 물론 남자가 먼저 "커피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나요?"라고 묻는 경우도 많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 고양이가 깰까 봐 등등의 표현은 당연히 거절의 표시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날 한국에서 보이는 라면의 세계는 어떻게 구축된 것일까.
영화 <내부자들>에서 안상구(이병헌)가 집안에서 그리고 옥상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장면이 나온다. 기막힌 사연으로 오른손을 잃은 정치 건달 안상구 역의 이병헌은 왼손으로 라면을 먹는데 뜨거운 라면 발을 젓가락에 잔뜩 감아서 박력 있게 후후 불며 입에 넣는 명장면을 연기한다. 돈을 펑펑 써가며 화려한 향락의 세계에서 놀다가 몰락하여 밑바닥 생활을 해야 하는 주인공을 묘사하는데 거의 매끼 라면을 먹는다는 설정만큼 어울리는 대목은 없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며 연민과 함께 라면 하나는 참 맛있게 먹는구나 느낀다. 밑바닥이지만 라면은 맛있는 현실. 그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라면은 한국인에게 친근한 음식이기도 하다.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삼류건달 동철(박중훈)과 옆집에 사는 성실한 취업준비생 세진(정유미)은 아무리 봐도 서로가 어울리지 않는 부류이다. 그래서 부딪힐 때마다 티격태격하는데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공통의 매개가 있으니 바로 라면이다. 일 안 하는 건달과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취업준비생 둘의 공통점은 주머니사정이 팍팍하다는 현실이다. 그래서 동네 분식집에서 끼니를 자주 때우는 두 사람에게 라면은 서로의 공간을 열어주고 소통을 해주는 매개로 작용한다. 물론 박중훈 역시 이 영화에서 라면 먹는 장면을 참 매력 있게 연기한다. 라면이라는 음식은 신분과 성별을 넘어서 모두에게 따스하다. 박중훈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도 피의자와 함께 라면을 맛있게 먹는 명장면을 아주 코믹하게 잘 묘사한 바 있다.
올해 나온 <기생충>, 십 년 전에 나온 <내 깡패 같은 애인>,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 <봄날은 간다>에서 라면은 변함없이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이 이십 년 사이에 나온 숱한 영화 속에 라면이 등장하는 장면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그냥 아예 라면을 제목으로 한 <파송송계란탁>이라는 영화가 있었다는 것만 짚고 넘어가고 한국인의 라면사랑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해보자.
요즘 세계의 모든 항공사는 비즈니스 클래스 이용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기내식 서비스에 온갖 정성을 쏟고 있다. 아시아발 장거리 노선인 유럽행이나 미주행 노선에서 이코노미 클래스는 어느 항공사든 피크 시즌이 아니면 100만 원대나 그 이하로 판매되는데 비즈니스 클래스는 한화로 5, 6백만 원 정도 한다. 항공사 입장에서 수익성이 매우 높은 이 클래스의 고객층은 대기업 임원이거나 고위직 공무원,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등으로 개인적인 여행이 아닌 이름 그대로 비즈니스 용무로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항공사는 이들 승객을 잡기 위하여 매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많은 돈을 들여 쾌적한 좌석시스템을 구비하고 또 기내식에도 대단히 신경을 쓰고 있다. 고급호텔 레스토랑과 제휴를 맺기도 하고 유명 셰프를 초빙하여 콜라보 메뉴를 개발하여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적 항공사 두 군데에서 보이는 특이한 메뉴가 있으니 바로 라면이다.
항공사 비즈니스 클래스 이야기를 꺼낸 건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라면을 좋아하는가를 1인당 소비량이 세계 최고라는 통계수치 말고도 다른 데서도 엿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제법 된 이야기이고, 또 그 뒤에 있었던 땅콩회항 소동으로 좀 가려지기는 했지만 아직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라면상무’ 이야기다. 라면은 기내식의 정규 식사 메뉴가 아니라 승객이 요구하면 대접하는 특별 메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대부분의 노선에 라면을 탑재한다. 비행시간이 너무 짧아 승객에게 매뉴얼대로 제공하는 음료 및 기내식 서빙, 면세품 판매만도 바쁜 단거리 노선을 제외하면 다 실린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의 조리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므로 제대로 끓여야 하는 봉지면이 아니라 용기면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걸 예쁜 자기그릇에 옮겨 담은 뒤 따로 준비한 고명을 얹어 내는데 항공사에 따라 얇게 썬 붉은 고추와 초록 고추가 올라오기도 하고 버섯과 파가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데 재료가 컵라면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봉지면으로 끓이는 3천 원짜리 분식집의 그것에도 못 미치는 이 라면이 비행기 안에서는 엄청난 위세를 발휘한다. 비행기를 타고 라면을 요구해서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신분상승과 연결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출장 때마다 뒤쪽 이코노미에 앉아 앞쪽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기 앉아 라면을 시켜 먹어야지 하고 별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드디어 중역으로 승진을 하여 대망의 비즈니스를 타고 가는 첫 출장에 마음껏 유세하다 보니 덜 익었다, 너무 익었다 타박을 하다가 폭력까지 행사하게 되고 그 대가로 자신이 수십 년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야 했던 사람이 있었다. 언론이란 게 과장도 있고 하니 본인은 자신의 행동이 악성 갑질의 표본 인양 떠벌려진 게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결국 해고무효소송을 냈는데 패소로 끝난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사람에게는 인스턴트 라면이 하늘 위에서는 스테이크, 랍스터를 넘어서 신분상승을 증명해주는 아이템이 된다는 사실을 외국사람들은 도저히 이해를 못 할 것이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이나 유명 셰프의 메뉴로 상위클래스 고객을 끄는 항공사들이지만 아시아계의 경우 대개 간식으로 소박한 특별 메뉴도 구비해 놓는다. 우동, 소바, 에그누들, 해물탕면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인스턴트 라면, 그것도 컵라면을 끓여서 인기를 끄는 경우는 한국이 유일한데 이런 현상은 공항 라운지에서도 보인다. 뷔페로 차려 놓은 여러 훌륭한 메뉴가 있지만,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컵라면은 여전히 인기가 높다. 요즈음은 기내에서 상위급 좌석 승객에게는 "신라면과 삼양라면이 있는데 어느 쪽으로 드시겠어요?" 하고 승객이 선택하도록 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렇듯 한국의 라면문화는 하늘 위에서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아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생겨나고 그랬다. 하지만 법 앞에서보다 만인이 평등한 경우가 있다. 바로 라면 앞에서 그렇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라면 앞에서는 평등하다. 매일 먹는 계란만 해도 그렇고 야채도 비싼 것과 싼 것의 차이가 크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라고 하겠다. 우리가 주식인 밥을 해 먹기 위해 반드시 사야 하는 쌀도 등급과 품종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크게 난다. 유기농이냐 산지가 어디냐 품종은 뭐냐에 따라 값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런데 라면은 그렇지 않다. 부자용 라면이 따로 있고 서민용 라면이 따로 있지 않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어디서나 같은 상품을 판다. 삼양라면에서 나온 ‘맛있는라면’이나 농심 ‘신라면블랙’이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게 아마도 소비자들에게 오랜 세월 잠재적으로 각인된 이런 ‘평등성’에서 벗어났기에 그렇지 않았나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라면을 대단히 좋아했던 모양이다. 비서관이 그분을 기리며 라면에 관한 일화를 어디엔가 소개했던 글을 본 적이 있다. 만찬 전에 라면을 드셨다, 해외 순방 때 라면을 잔뜩 가지고 나갔다, 기차여행 때 특별식으로 라면을 부탁했다 등등. 재밌게는 읽었는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 이게 그의 서민적인 취향을 강조하려고 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히 서민적이어서 라면을 좋아한 게 아니라 그냥 맛있어서 좋아했던 거라 생각한다. 1940년대 이후에 출생한 한국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라면이 있던 시절 청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라면이 입에 맞아 좋아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내가 아는 한 많은 재벌 회장들도 라면을 좋아한다. 그래서 라면을 좋아하는 것으로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어낸 일본을 제치고 독자적인 발전을 하였는지 살펴보기 위해 옆 나라 일본이야기를 간단히 해보자. 일본에 있는 숱한 '라멘'가게는 모두가 생면을 조리하여 만드는 업소이고, 우리나라에서 라면을 파는 업소는 전부 인스턴트 라면을 조리해주는 곳이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밖에서 사 먹는 것은 모두 생면으로 조리해주는 '라멘'이고, 집에서 사다가 끓여 먹는 것이 '인스탄토 라멘'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 머릿속에는 집에서 해 먹는 라면이나 밖의 식당에서 파는 라면이나 다 같은 거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원형이 없으니 그것을 '인스턴트'화했다는 말이 필요 없이 그냥 '라면'그 자체가 독립적인 존재인 것이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간단하게 인스턴트 라면에 대해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리나라 라면의 역사는 1963년 삼양식품이 일본의 묘조(明星)식품과 제휴하여 기술을 들여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일본에서 닛신(日淸)식품을 설립한 대만계 화교 안도모모후쿠(安藤百福:중국명吳百福)가 발명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일본에서 1900년대 초반 문물교류가 빈번하던 항구를 중심으로, 중국에 있는 수십 가지 면 가운데 밀가루 반죽에 수산화나트륨을 첨가하여 특유의 노란 색깔과 맛을 내는 국수로 만든 음식이 일본에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이름은 중국의 별칭이었던 지나(支那)를 붙여 '시나소바'라고도 했는데, 뽑아 만든 면이라는 중국말의 '라미엔(拉麵)'이라는 말을 음역한 라멘이 대세가 되었다. 이 라멘의 재료가 되는 면을 지금은 쥬카멘(中華麵)이라고 불러, 우동 소면 등 다른 밀가루 면과 구별을 한다.
라멘이라는 음식이 있고, 이 라멘을 간편하게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인스탄토 라멘'이었고, 이는 나중에 다시 봉지면과 용기면으로 분화한다. 이 새로운 식품은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금은 연간 1,500억 개가 생산되는 세계인의 일상음식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연간 약 40억 개가 생산되어, 인구 1인당 소비량은 연간 80개로 세계 최고다. 일본은 50억 개로 인구 1인당 연간 약 40개를 소비한다. 일본에서는 원형의 음식인 라멘이 있기에, 소비자와 생산자에게는 끊임없이 그 맛을 찾아가려고 하는 의식이 있고 노력이 뒤따랐다. 우리가 '용기면'이라고 분류하는 컵라면에서도 면을 진공포장한 '생면'타입이 크게 유행을 하고, 레토르트면, 냉동면 등 각종 상품이 나왔는데 그러다 보니 간편함을 내세운 컵라면 쪽이 발전하고, 맛으로는 라멘을 파는 식당이 르네상스를 맞아, 봉지면이 일본에서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어서 50억 개 생산량 가운데 용기면이 30억, 봉지면은 20억이라는 게 요즘 통계다.
찾아가야 할 원형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응용과 변형에 자유롭다는 이야기다. 마치 크게 성공한 아버지를 둔 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를 못 따라간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어렵듯이 ‘라멘’이라는 원형을 늘 의식하고 사는 일본사람보다는 한국사람들이 인스턴트 라면을 가지고 더 자유로운 발상으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한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현상이다. 네모난 용기로 러시아의 라면시장을 제패한 팔도식품의 ‘도시락’이 그렇고 매운맛 유행을 일으킨 ‘신라면’ 신드롬은 중국에서도 로컬 상품과의 가격 차이를 크게 벌렸고, 요새는 ‘불닭볶음면’이 세계적으로 또 한 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청출어람의 좋은 예가 된 한국의 라면처럼 한국의 영화계에도 희소식이 속속 들려오기를 바라면서 나 자신도 분발을 다짐해 보는 요즘이다.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