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이나 청어람(靑於藍)이라."
뒤의 청어람을 승어람(勝於藍)이라고도 하는데,
널리 알려진 성어인 만큼 일상에서 잘 활용해 쓰기도 한다.
‘푸른빛은 쪽빛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
후배나 제자가 선배나 스승을 넘어서는 것을 칭찬하는 말로 쓰인다.
미국 대도시에서도 인기 있는 한국 치킨을 말할 때,
딱 이 말이 어울린다.
우리나라의 치킨집은 몇 년 전에 전 세계 맥도날드 점포 수를 넘어서서 지금은 그 수가 4만 개를 넘는다.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프랜차이즈의 성공으로 대박을 꿈꾸는 젊은이들부터 퇴직금을 쏟아 넣는 부부창업형까지 많은 사람이 들어와 울고 나가는 경우도 당연히 많다. ‘여차하면 치킨집이나’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사실은 인생의 큰 수업료를 치러야 하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걸 체험으로 깨달은 사람이 이미 숱하게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개업과 폐업이 반복되는 엄청난 사회적 매몰비용 속에서 한국사회가 얻어낸 소득이 분명히 있으니, 바로 치킨의 맛이다.
나는 감히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한국의 치킨 맛은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이쯤에서 눈치챈 분도 있겠지만, 여기서 치킨이란 닭요리 전반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프라이드치킨을 말한다. 프라이드치킨은 미국이 원조이다. 그런데 한국의 프라이드치킨은 미국으로도 진출하여 대도시에서 미국인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청출어람’이라는 말을 딱 가져다 붙이고 싶은 것이 한국의 치킨이다. 나는 이 붐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고 본다. 한국발 치킨의 앞날이 기대된다. 한국에서 닭은 사위 같은 귀한 손님이나 와야 잡는 소중한 존재였다. 어쩌다 쌀을 넣고 푹 고아낸 백숙을 여러 식구가 나눠 먹는 음식이었다. 양계산업이 발달하면서 뒤늦게 삼계탕이 등장하였고 비슷하게 등장한 니크롬 열선 앞에서 빙빙 돌아가는 전기구이 통닭은 가장의 월급날에나 맛보는 귀물이었다. 모두 70년대 들어선 이후의 이야기다. 닭값이 내려가면서 시장에서 닭을 잡아 털을 뽑고 손질을 하여 파는 집에서 가마솥을 걸고 닭을 아예 튀겨서 팔기 시작한 게 80년대 들어서였다. 그리고 미국에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 들어왔는데, 어느새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이 더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식 치킨이 사랑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양념치킨’의 등장이라고 생각한다. 프라이드치킨만 먹기에는 텁텁할 때 다시 입맛을 살려주는 매콤한 고추장 양념의 역할은 대단하다. ‘반반 무 많이’라는 말이 배달주문의 멘트처럼 유행하였고, 지금은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로 별의별 레시피가 등장했다. 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 두 가지 메뉴에서 진화해 프랜차이즈 본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여 보급한다. 그 가운데 자메이카치킨, 빠리치킨, 치하오치킨, 맛초킹, 커리퀸 등이 중남미, 중국, 타이, 인도 등의 맛을 도입하여 토착화시킨 메뉴들이다. 요새 매운맛 붐에 올라탄 뱀파이어치킨, 마라붐을 놓치지 않은 마라칸 등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가 등장한다.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면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아이템들은 소리 없이 사라져 갈 것이다.
이제 오늘의 영화이야기를 <극한직업>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이 영화는 마약범죄단을 잡으려는 형사들이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 위장으로 차린 치킨집이 뜻밖에 성공하게 되어 일이 꼬이게 된다는 코미디인데, 입장관객 1,600만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매출액은 1,377억 원을 넘겨 한국영화사상 역대 최고 매출액을 경신하였다. 이 영화는 류승룡,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 5인조의 코믹연기가 절묘하게 어울렸고 김의성, 신하균, 오정세 등 조역들의 연기도 웃음을 보태는데 크게 한몫하였다. 그러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원 왕갈비 통닭’의 존재감이다. 감시 아지트를 확보하기 위해 얼떨결에 인수하게 된 망해가는 통닭집. 그리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얼떨결에 생각해낸 메뉴, 수원 왕갈비 통닭. 이것이 영화적 설정인데, 그 왕갈비 통닭이 맛없어 보이면 영화는 처음부터 설득력을 잃게 된다.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특히 코미디는 관객이 초반에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숨겨져 있는 코믹코드나 웃음이 터지도록 설정해 놓은 곳곳에서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 그냥 유치하고 억지스러운 장면으로 지나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한직업>은 달랐다. 영화 속에서 주방에서는 아마추어인 형사들이 손을 베고 팔을 데어가며 양파를 까고, 파를 썰고, 닭을 자르고 튀겨내 만든 ‘왕갈비 통닭’은 관객에게도 정말 먹음직스럽게 다가온다. '그래 왕초보들이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참 잘했구나,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네' 이런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되니 영화는 빵빵 터지며 사소한 실수나 다소 억지스러운 장면에서도 다 너그러이 넘어가게 된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예에~ 수원왕갈비 통닭입니다!’ 근엄하게 후배들을 훈계하다가 배달주문 전화가 오자 능청스럽게 톤을 바꿔 전화를 받는 류승룡의 이 대사는 뒤이어 많은 패러디 유행어를 낳기도 하였다. 수원왕갈비라는 게 사실은 간장 대신에 소금으로 양념을 하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그 조리방법이 실제로 치킨양념으로 적합한지는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 마늘, 파, 참기름에 간장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일반 소갈비 양념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영화가 흥행몰이에 들어가며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서는 모두 수원왕갈비 메뉴를 내기 시작하였는데, 찾아보니 여전히 메뉴에 들어 있는 곳들이 있다. 나는 아직 먹어본 적이 없지만 이 영화적 발상에서 생겨난 맛은 현실세계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남은 모양이다.
한국음식은 원래 기름에 튀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름을 쓰는 음식으로는 기껏해야 기름을 두르고 지지는 음식, 그래서 지진다는 전(煎)정도였다. 이제는 한국여성들이 명절에 혹사당하는 원망스러운 아이템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바로 그 전이다. 그러나 중국에는 센 화력에 볶고 튀기는 요리가 발달하여 종류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 중국에 한류의 바람으로 한국의 치킨이 상륙하여 크게 유행을 하였다. 전지현과 김수현이 나온 <별에서 온 그대> 덕이었다. ‘치맥’이라는 말이 그대로 번역되어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행위가 유행하였고, 한국에서 간 치킨집들은 한두 시간 줄을 서야 겨우 사 먹을 수 있는 때도 있었다. 문화상품의 파급력이 크기도 크지만, 한국식 양념치킨의 맛이 없었다면 튀김요리에 한국인보다 훨씬 익숙한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 토착화한 중국요리 중에 닭을 튀긴 요리로는 라조기와 깐풍기가 유명하다. 그런데 요새 한국의 치킨브랜드 홈페이지를 보면 이것과 비슷한 맛의 메뉴가 다 들어 있다. 오리지널 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을 바탕으로 깔고, 어디 맛있는 닭요리가 있으면 하나씩 잡아다 자기진영에 집어넣는 공격적인 형세인 것 같다. 가히 치킨왕국의 전성시대라 하겠다.
이 프라이드치킨의 발상지는 미국이다. 미국에서도 남부에서 발달한 요리다. 소고기를 먹기 힘들었던 가난한 흑인들이 즐겨 먹으며 발전시킨 음식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옛날에 미국에서는 흑인을 비하하며 자주 치킨을 들먹였고, 그러다 보니 이젠 미국에서 흑인과 프라이드치킨을 연결하는 표현이나 발언은 금기시 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격하다. 타이거 우즈가 골프에서 두각을 발휘할 때 상대선수가 그를 초청하여 프라이드치킨을 대접하겠다고 말하여 물의를 빚었고, 그는 이내 사과를 해야 했다.
2011년 <헬프>라는 영화가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1960년대 초 흑백갈등이 심각하고 공민권 운동이 한창 일어날 때 남부 미시시피주에서 백인여성과 흑인여성 사이의 갈등과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여기서 흑인여성은 ‘헬프’(우리 말로는 가정부쯤이 되겠다. 지금은 사어가 된 말인데, 어감상 한국에서 역시 지금은 사어가 되어버린 ‘식모’가 더 적합한 단어일 수 있겠다)다. 이 영화에서 고용주인 백인과 가정부 흑인이 서로를 이해하며 친해지는 매개가 프라이드치킨이다. 가정부가 닭을 튀기며 보여주는 기름이 한국에서도 한때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나오던 쇼트닝 ‘크리스코’다. 지금은 트랜스지방의 정체가 밝혀지며 마가린과 함께 건강의 주적이 되어버린 경화유인데 옛날엔 다 이걸로 튀겨먹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 튀김용으로 사용하는 식물성기름도 몸에 안 좋다는 포화지방산으로 이루어진 게 대부분이지만.
2019년 오스카상 작품상은 <그린북>이 받았다. 각본상도 수상했다. 비고 모튼센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보헤미안 랩소디에 석패하였고, 대신 마허샬라 알리가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유명한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의 남부 연주여행에 동행한 백인 운전기사 토니 립(비고 모튼센)과의 우정을 그렸다. 주먹깨나 쓰는 이태리계 미국인 토니는 싸움질로 일하던 나이트클럽에서 해고되어 실업 중인데, 우연히 알게 된 피아니스트 돈 셜리로부터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로 여행을 가는데 운전사 겸 보디가드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그 자신도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수가 좋아서 수락을 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여러 번 투닥거리며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뿌리 깊은 편견에서 오는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둘이 마음을 열며 친해지는 계기가 켄터키주에서 사 먹은 프라이드치킨에서 마련된다. 비위생적으로 손으로 집어 먹고 뼈를 아무 데나 버리는 프라이드치킨을 먹어본 적이 없는 흑인과 그걸 꼴 같지 않게 보는 백인이 결국 치킨의 맛으로 마음속 화해를 하게 되는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제 미국사람들은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나 치킨을 즐긴다. 한국에서 월드컵 축구경기가 있는 날 치킨집에 불이 나듯이 미국에서도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날에는 날개 튀김인 버펄로 윙이 불티나게 팔린다. 이 경기를 경기장에서 보는 사람은 6만 명 정도다. 그런데 시청률이 50% 정도이니 약 1억 5천만 미국사람들은 스포츠바에서, 집에서 모여 TV로 본다. 그리고 즐겁게 먹고 마신다. 실제로 많은 사람에게는 그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로스앤젤레스 램스, 아니면 볼티모어 레이번스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즈가 붙었네, 누가 이겼네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에서는 이날을 '수퍼선데이'라고 해서 대단한 명절분위기로 즐긴다. 매년 2월 첫 번째 일요일인데, 이날을 공휴일로 하자는 움직임도 꾸준히 있다. 그럼 미국의 제도에서는 다음날 놀게 되니까 3연휴가 되는데, 실제로 이날은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다음으로 많은 음식이 소비되는 날이라고 한다.
이날의 대표적인 음식이 미국식 프라이드치킨 '버펄로 윙'이고, 엄청난 양의 맥주가 소비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날 하루 미국사람들은 9천만 개의 버펄로 윙과 3억2천5백만 갤런 그러니까 12억 리터 가량의 맥주를 먹고 마시며 경기를 즐긴다고 한다. 참고로 이 맥주의 양은 올림픽 사이즈 수영장을 약 500번 채울 수 있는 양이라고 하니까 '운동경기와 치맥'의 원조는 미국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런 미국에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미국의 프라이드치킨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사진은 미국에서 가장 선진을 달리며 음식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연구소이자 출판사이기도 한 <모더니스트 퀴진>의 뉴스레터를 캡처한 그림이다. 이미 몇 년 전에 슈퍼선데이를 앞두고 미국식 치맥 레시피로 한국 양념치킨의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상징적인 일이라고 여겨 캡처해 두었는데, 그 뒤로 아니나 다를까 한국의 치킨이 미국에서 서서히 뿌리를 내리는 전조가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오래전에 시카고 트리뷴에서 한국 양념치킨을 기사로 다룬 것이 국내 뉴스에도 소개되기도 했는데, 한국 치킨을 본격적으로 처음 다룬 건 내 기억으로는 2007년의 뉴욕 타임즈 기사였다. 이제는 한국의 양념치킨에 대한 기사는 새롭지도 않을 정도로 흔하다. <모더니스트 퀴진>에 소개된 레시피 가운데 '매콤달콤한' 한국의 맛으로 버무려진 양념치킨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양념치킨이 심상치가 않은 것이, 바로 고추장의 맛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에도 핫, 스파이시 등으로 매운맛을 내는 양념은 여러 개 있다. 타바스코소스가 좋은 예이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흘러간 스리라차 소스가 대단히 널리 보급되었다. 그러나 이런 맛은 모두 쏘는 매운맛, 영어로 'pungent'라는 단어로도 표현하는데 한국 고추장의 매운맛은 이것들과는 다르다. 발효한 장의 뭉근한 맛, 아미노산의 감칠 맛, 엿기름에서 나오는 단맛이 고추의 매운 맛과 어우러져 다른 나라의 어떤 소스에서도 맛볼 수 없는 매력 있는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 수퍼에 가보면' Gochoojang'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산 고추장도 여러가지 브랜드를 볼 수 있다. 실제로 고추장을 사용한 레시피가 유튜브에도 많이 올라온다. 한국인들이 아닌 셰프들이 고추장을 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할 이가 있을 수도 있는데, 나는 고추장은 앞으로도 계속 퍼져나갈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여기서 안타까운 사실 한가지를 쓰고 마무리한다. 고추장 양념으로 차별화하여 프라이드치킨의 원산국으로 나간 미국의 한국 브랜드 치킨은 사실 한국의 같은 브랜드의 같은 메뉴보다 더 맛이 좋다. 왜냐하면 더 맛있는 닭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도를 통해서 그런대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가 유독 일찍 닭을 출하한다. 덜 키운 채로 출하를 한다는 말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육계 출하 평균 체중은 1.5kg이다. 중국(2.6kg), 브라질(2.2kg)의 평균 체중에 크게 못 미친다. 미국(2.4kg)의 60% 정도인 것이다. 평균 생육일수도 크게 차이 난다. 우리나라 육계는 평균 35일간 사육한다. 중국(55일), 미국(46일), 브라질(45일)보다 10~20일 일찍 잡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마리를 통째로 선호하다 보니 작은 닭을 출하하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그 반면에는 폐사율이 높아지기 전에 잡는 가성비 우선주의도 작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닭이 완전히 성장하기 전에는 닭고기 고유의 좋은 맛이 덜 난다. 소금과 스파이스로 염지를 하여 기름에 튀겨내는 프라이드치킨이나 거기에 매콤하고 달콤한 맛까지 더한 양념치킨의 맛은 겉의 튀김옷이나 양념에 기대는 정도가 커서 그런대로 잘 넘어가는데, 담백한 백숙이나 삼계탕 같은 경우에는 닭고기 고유의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언젠가 한국에 살았던 프랑스인과 닭고기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는 삼계탕을 제일 맛있게 먹은 게 서울 교외 어디였다고 했다. 그때는 토종닭이 맛있어서 그런가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닭 종류가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몇 달 더 키운 닭으로 요리해 닭고기의 맛이 제대로 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빨리 키워서 싼값에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닭고기라는 게 기본은 별맛이 없는 단백질 덩어리라서 튀겨서나 먹고, 양념 발라 먹고, 매운 양념에 넣고 볶거나 끓여서 먹는 육류라고 인식한다면 이건 한국 소비자들도 피해를 보는 것이고 닭의 입장에서도 억울한 노릇일 것이다. 닭이라는 게 원래는 더 맛있는 육류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되고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는 시장구도가 형성되었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치킨왕국 대한민국에서 좀 더 맛있게 키운 닭을 재료로 쓴다면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다.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