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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만의 고기음식, 삼겹살

디쉬인사이드 인생과 함께 지글거리는 삼겹살의 힘! in 기생충, 내부자들, 위대한 유산, 아수라, 응답하라, 배가본드, 동백꽃 필 무렵
디쉬인사이드 인생과 함께 지글거리는 삼겹살의 힘! in 기생충, 내부자들, 위대한 유산, 아수라, 응답하라, 배가본드, 동백꽃 필 무렵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김치처럼 한국인의 국민음식이 되어버린 삼겹살은
어찌 보면 참으로 평등한 음식이다. 한국에서 만큼은 말이다.
영화에서도 삼겹살 먹는 장면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숱하게 등장한다.
새삼스럽게, '삼겹살 장면'들을 훑어보았다.

한국인이 가장 자주, 많이 먹는 고기

영화 <기생충>이 다가오는 2020년 1월에 열리는 골든글로브상 여러 부문에 후보로 그 이름을 올렸고, 그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상의 여러 부문에서도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동안 올린 성적만으로도 한국 영화계가 함께 기뻐해야 할 쾌거인데 앞으로 이어질 낭보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기생충>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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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이 강하여 '봉테일'이라고도 불린다는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정형편이 나아지는 걸 음식으로 표현한다. 반지하에 사는 네 식구가 처음엔 집에서 제일 싼 발포주 ‘필라이트’를 마시는데 안주는 간단한 과자 부스러기다. 그리고 한 사람이 취직이 된 다음엔 함께 기사식당에서 뷔페 스타일의 식사를 한다. 가장(송강호)은 아들에게 자신이 식판에 담아온 제육볶음을 덜어준다. 듬뿍 담아온 쌈채를 보면 제육볶음 위주로 가성비를 높이는 식사방법을 택했음을 알 수가 있다. 네 식구가 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 맥주는 수입맥주 ‘삿포로’이고 고기는 LA갈비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봉감독의 연출에 무릎을 쳤다.

그렇다. 삼겹살이 아니고 소갈비인 것이다. 전 가족 취업을 자축하는 자리라면 아직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한 형편에 뼈에 길게 붙은 고급 한우갈비까지는 넘보지 못할 지라도 평소에 조금만 마음먹으면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은 뛰어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수입 맥주로 기분을 내며 먹기에 딱 어울리는 메뉴로 수입산 LA갈비를 택한 봉감독의 디테일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내게는 삼겹살이 안 나와서 도리어 삼겹살을 의식하게 된 장면이기도 했다.

오늘은 언제부터인가 김치처럼 한국인의 국민음식이 되어버린 삼겹살 이야기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주식인 쌀밥을 제외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김치와 된장, 고추장일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올라가는 메뉴가 삼겹살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사이엔가 삼겹살은 한국인이 가장 자주, 가장 많이 먹는 고기가 되었다. 참고로 쌀밥 빼고 김치, 라면, 삼겹살, 치킨, 커피믹스가 세계에서 한국인이 소비량 랭킹 1위를 차지하는 음식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도 삼겹살 장면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숱하게 등장한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가족이 단란하게 둘러앉아 상추에 깻잎에 고기를 싸고 마늘 부추 등속도 함께 싸서 먹는다. '단란하게'라는 표현은 취소한다. 삼겹살을 먹는 광경은 단란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늘 부산하고 바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이 모여서 삼겹살을 먹는 풍경은 여기에 더하여 소주병, 맥주병이 즐비하게 쌓여간다. 시끌벅적한 삼겹살 식당에서 이별의 슬픔을 주정 삼아 토해내고 취기를 빌어 직장생활의 애환을 한탄하고 못된 상사를 성토하는 장면은 한국영화, TV 드라마에서 숱하게 나온다.

삼겹살, 참으로 평등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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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에서 주인공 정치건달 안상구(이병헌)와 독불장군 검사 우장훈(조승우)이 만나 각자의 복수와 출세를 위해 협력하기로 한다. 이때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소주를 마신다. 검사와 정치건달이 교집합으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세계가 삼겹살인 것이다. 삼겹살은 한국사람들에게 참으로 묘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인의 평균 소득에 비교하여 가격대도 만만하여 비싸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해서 아주 싸지도 않은 위치에 있다. 직장 상사가 삼겹살 회식을 데려간다고 해서 무시당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고기를 굽는 회식이니까. 그러면서도 삼겹살은 돈을 계산하는 사람이 주머니 사정에 벌벌 떨며 대접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서민적인 가격이기도 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오늘은 내가 낼 테니까 마음껏 먹으라고 호기를 부릴 수도 있는 곳이 삼겹살집이다.

삼겹살 문화는 젊은 세대의 식생활에도 깊게 파고들어서 한국에서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할 때까지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 삼겹살이라고 한다. 전국의 모든 대학 앞에는 저렴한 삼겹살집이 많다. 어느 정도 고기의 질이 떨어지는 걸 사입해서 영업을 하지 않고서는 성립될 것 같지 않은 가격대의 식당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 생삼겹, 냉동삼겹, 대패삼겹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신분을 가르고 계급 차이를 느낄 만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삼겹살은 한국에서 참으로 평등한 음식이다. 정치건달(이병헌)과 검사(조승우)가 서로의 동질감을 느끼며 연대를 도모하는 자리에 등장한 삼겹살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적합한 소재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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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하여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구타유발자>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엔 동네 양아치들에 걸려 봉변당하는 대학교수가 나온다. 성악과 교수인 박영선(이병준)은 제자(차예린)를 성추행하려고 야외에 데려갔다가 양아치들을 만난다. 야외에 나가 돌판에 삼겹살을 구워 먹던 불량배들은 대학교수에게 회식에 동참하라고 ‘정중한 강요’를 한 뒤에 잘 굽지 않아 생고기에 가까운 삼겹살을 먹인다. 일종의 고문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한국 관객들은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내용인지 너무나 잘 안다. 소고기였으면 피가 뚝뚝 흐르는 레어로도 먹는 서양사람들은 뭐가 어때서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달리 다가온다. 삼겹살은 바싹 구워 먹어야 하는 게 불문율로 이어져 내려온 문화이기 더욱 그렇다. 돼지고기는 촌충 등 기생충이 있어서 잘 익혀먹어야 한다는 상식에서 나온 습관인데 현실은 진작에 바뀌었다. 기생충 운운은 구정물이라고 불리던 잔반으로 돼지를 키우던 시절의 이야기지 전국의 사육농가가 배합사료로 돼지를 키우는 요즈음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실제로 스페인에서 수입하여 인기를 끄는 이베리코 돼지 취급점에서는 ‘살짝 덜 구워서 미디엄으로 드시는 게 더 맛있습니다’라는 문구를 홍보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여전히 바싹 굽는 걸 선호한다. 이는 오랜 세월 먹어오면서 바싹 익힌 삼겹살의 맛에 익숙해진 탓도 있다. 비계라고 불리는 지방성분이 많은 삼겹살을 구우면서 녹아내린 기름에 튀겨지듯 익은 돼지고기의 바삭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의 매력에 중독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타유발자>의 ‘생고기 폭력’이 뒤이어 벌어질 잔인한 폭력을 암시하며 한국 관객에게 더욱 끔찍하게 다가오는 건 이러한 배경이 있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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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수라>는 개봉한 지 몇 년이 지나도 해마다 상영회를 갖는 열혈팬들이 있을 정도로 한국 영화계에서는 드물게 컬트로 남은 작품이다. 부패한 시장, 부패한 검사, 부패한 경찰들이 모여서 서로의 이해관계로 물고 뜯는, 음모와 폭력이 난무하는 작품이다. 화면 가득 선혈이 낭자한 폭력성도 그렇지만 황정민, 정우성, 곽도원 등 명배우들의 열연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케미스트리, 현실 사회를 반영한 듯한 시사성 등이 어우러져 이 영화만의 매력이 차고 넘친다. 이 영화에서도 삼겹살 회식 장면이 나오는데, 경찰과 검사가 함께 삼겹살을 먹으며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대화가 오가는 장면이다. 공소권을 가진 검찰과 수사지휘를 받아야 하는 경찰의 상하관계에 불만을 품은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검사 김차인(곽도원)에게 가진 불만을 토로하다가 막말까지 하게 된다. 상사인 도창학 계장(정만식)은 검찰의 역린을 건드리기 전에 사태를 수습하고자 미리 폭력으로 나서려고 하지만 결국 한도경이 머리에 동료의 맥주병을 맞고서야 간신히 사태가 진정된다. 겉으로는 협력과 공조를 가장하지만 그야말로 오월동주와도 같은 상황이 긴장감 팽팽하게 전개되는 무대가 삼겹살 회식이라는 게 재미있었다. 쉽지 않은 상대와 회식을 하면서 지나치게 배려하는 것도 아니고 또 지나치게 무시하는 것도 아닌 중립적인 메뉴로 삼겹살 말고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참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고 웃는 인생과 함께 지글지글

개봉한 지 꽤 된 영화인데 임창정, 김선아 주연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코미디가 있다. 여기서 주인공 창식(임창정)은 눈칫밥을 먹으며 형 집에 얹혀사는 백수로 나오는데 늘 허기져 있다. 아마도 놀고먹는 실업자로서 정신적인 공복이 더 클 것이다. 그가 친한 여자사람 친구, 엄밀하게는 선배인 만화가 장미(사현진)의 집에 쳐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장미는 오랜만에 영양보충을 하겠다고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는데, 이미 불청객의 방해를 예상하고 문을 걸어 잠근 뒤 구워 먹으려 한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창식은 전광석화와 같이 냄새를 맡고 나타나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거의 다 뺏어 먹는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을 상추에 큼직하게 싸서 입에 넣고 연신 쌔왈거리며 먹어대는 임창정의 연기는 역대 먹방 씬의 하나로 추천해도 아쉽지 않을 정도다. 형 집에 얹혀사는 백수와 프리랜서 만화가 지망생 둘 다 돈이 넉넉할 리 없다. 삼겹살 하나도 마음 놓고 못 먹어서 어쩌다 숨어서 먹어야 하고, 그걸 급습하여 빼앗아먹지 않으면 고기 맛을 못 보는 두 사람이 한국 청년세대의 팍팍한 삶을 나타내는 명장면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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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가운데 삼겹살이 제일 인상 깊게 다가온 작품 가운데 하나는 <고령화가족>이다. 천명관의 소설을 바탕으로 송해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인데, 정확하게 세어보진 않았지만 기억하기에 이 영화에선 삼겹살을 먹는 장면이 적어도 대여섯 번 이상 나온다. 건달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집에서 피둥피둥 백수로 지내는 첫째 아들 한모(윤제문)에 더해서, 영화도 말아먹고 오갈 데가 없어 집으로 들어온 삼류감독 둘째 아들 인모(박해일)와 이혼하고 딸까지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온 셋째 딸 미연(공효진)이 좁은 집에 모여 동거를 하게 되면서 엎치락뒤치락 각종 사건이 벌어진다는 내용이다.

혈연이란 무엇이고 또 가족이란 무엇인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코미디 속에서 적절하게 잘 다룬 송해성 감독의 수작으로 꼽고 싶다. 이 영화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건 자식 앞에선 뭐든 양보하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두렵지 않은 엄마(윤여정)의 존재다. 나이 사십이 넘은 백수라도, 중학생 딸을 둔 싱글맘이라도 엄마 눈에는 다 귀엽고 애처로운 아이들일 뿐이다. 그래서 엄마(윤여정)는 형편 닿을 때마다 삼겹살을 먹인다. 그래서 영화 속 가족들 밥상에는 늘 삼겹살이 빠지지 않는다. 비구니같이 살겠다고 선언한 딸(공효진)도 삼겹살은 맛있게 먹어서 딸의 빈축을 사며 웃음을 유발한다. 엄마는 마흔이 넘은 아들에게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고 입에 고기를 넣어주기도 한다. 현재의 모습을 볼 때 젊은 시절을 어렵게 살아 넘겼으리라 짐작케 하는 엄마가 자식에게 베풀 수 있는 모성은 아마도 끼니마다 밥상에 고기반찬을 올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서로 대립하고 상처주며 아웅다웅하는 형제들은 삼겹살이 올라온 밥상머리에서는 잠시나마 화목함을 되찾곤 한다. 삼겹살의 힘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생략하는데 이 영화에서 윤여정이 고기반찬을 끊이지 않고 대는 데에는 사연이 있고 또 반전도 있다. 안 보신 분들께 한번 찾아보실 것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고령화가족>에서 삼겹살 반찬 해서 밥을 먹다 말고 첫째 한모가 ‘고기는 역시 자리를 깔고 먹어야 제 맛’이라며 어려서 야외로 나가 고기 구워 먹던 추억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때 즐거웠던 과거를 기억해낸 가족들은 모처럼 합의하에 다 함께 야외로 나간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 먹으러 들린 식당이 또 삼겹살집이다. 바닷가에서 가까운 집이라 회도 파는데 역시 가운데 불판이 있어 삼겹살이 빠지지 않는 식당이다. 요즈음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준말이다. 삼겹살이야말로 한국인의 이런저런 소확행의 품목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는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서민의 주머니 사정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이기에, ‘언제 밥 한번 먹자’와 ‘언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가 등가로 치환되는 문화가 정착된 게 아닌가 한다.

그런데 한국인의 페티쉬에 가까운 삼겹살 사랑은 정육시장에 기형적인 가격 형성을 초래하였다. 원래 삼겹살이란 부위가 기름기가 많아서 외국에선 대단히 싸게 팔리는 부위다. 베이컨을 만드는 것 말고는 별로 요리하기에도 마땅치 않다고 여겨져 인기가 없다. 돼지고기의 고급 부위는 안심이고 그다음이 등심 그리고 뒷다리살, 목살 등의 순으로 가격이 매겨진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삼겹살만 찾으니까 마트에 가보면 등심 안심 값이 삼겹살의 절반이 안 된다. 어떤 때에는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가끔씩 집에서 안심으로 돈카츠도 만들어 먹고, 등심으로 포크찹도 해 먹고 기타 이런저런 요리를 해 먹는 나로서는 이렇게 싸도 되나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삼겹살이 워낙 기름이 많다 보니 지나친 섭취에 대한 건강상 우려를 나타내는 의학계 의견도 보인다. 나는 돼지기름인 라드에 대한 신뢰가 굳은 사람이라 건강상으로 그다지 걱정은 하지 않는데, 좀 더 다양한 부위를 즐기는 돼지고기 섭취문화가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요즈음 도토리 먹이고 키웠다는 문구를 달고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들어오는데 사실 ‘이베리코 베요타’가 아니면 그냥 이베리코 지역에서 사료 먹여 키운 돼지다. 거기서 뒷다리로 햄을 만들고 나머지는 또 뭐를 만들고 정육으로 팔고 하는데, 제일 처치 곤란한 삼겹살 부위를 한국에서 비싼 값에 사가니 그들로서는 한국의 소비자가 고마울 따름일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부수입이 늘어난 그쪽 사육업자들, 유통업자들의 웃는 모습을 생각하면 은근히 배가 아프기도 하다. 한국사람들의 삼겹살 사랑이 엉뚱한 곳 사람들의 지갑을 채워준다고 생각하니 좀 더 현명한 소비생활을 할 수 없었을까 생각이 들어서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영화 속에서 한국사람들이 모여서 삼겹살을 먹는 장면은 일일이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게, 김치를 먹는 게 리얼한 일상의 반영이듯이 삼겹살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다. 영화뿐이 아니다. TV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굳이 의도한 설정이 아니라 워낙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갈 만큼 삼겹살을 먹는 게 한국인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얼핏 찾아보았더니 <응답하라 1988>부터 <응답하라 1997>에 이르는 여러 시리즈에 삼겹살 먹는 장면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올해 화제를 모았던 <배가본드>와 <동백꽃 필 무렵>에도 삼겹살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1970년 한국인의 연간 고기 소비량은 일인당 5킬로그램 정도였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은 한 사람당 연간 50킬로그램을 먹는다. 중국은 물론 일본보다도 많이 먹는다. 그리고 그 절반 이상이 돼지고기다. 소와 닭을 합해도 돼지고기 소비량에 못 미친다. 그리고 이 돼지고기 소비에서 삼겹살이 부위별로 단연 일등을 차지하고 있다. 수입 돼지고기의 절반 이상은 삼겹살이다. 가히 삼겹살 왕국이라 하겠다. 한국인의 육류 섭취에 있어 서민의 든든한 원군이 되어준 삼겹살. 그러나 지나친 편향으로 부위별 소비패턴과 가격 형성에서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삼겹살이 조금은 달라진 위치에서 소비자들과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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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12-30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