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그림 산책

가을 정원, 색(色)과 향(香)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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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화초
가을 정원의 화초를 주제로 한 조선시대 한시와 옛 그림이 적지 않다. 서늘해진 기온을 견디어 피우는 가을 화초의 빛깔이 말쑥하고 또 산뜻해서였을까. 조선시대 19세기 문인 화가로 다양한 화초를 채색으로 표현했던 화가 애춘(靄春) 신명연(申命衍, 1809~1886)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가을꽃의 색조를 그 시절의 감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신명연의 꽃 그림을 응용한 디자인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신명연의 작품이 전해주는 색조 배합은 현란한 색채에 익숙해져 버린 현대인들에게 색의 정서를 차분하게 일깨워주고 화사함의 만족감을 안겨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신명연의 꽃 그림을 대표하는 작품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산수 화훼화도첩(山水花卉畵圖帖)》이다. 이 화첩에 그려진 가을꽃은 <목부용>, <추해 당>, <추구와 안래홍> 그리고 <국화>이다.

신명연, 《山水花卉圖》 중 <목부용>, 비단에 채색, 33.1 x 20cm, 국립중앙박물관

목부용(木芙蓉)
가을바람 속에 화사한 분홍색으로 탐스럽게 흔들거리는 꽃이 ‘부용(芙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꽃을 ‘부용’이라 칭하는 전통이 매우 굳어서, 이 꽃은 특별히 ‘목부용’ 혹은 ‘목련(木蓮)’이라 불렸다. 또 다른 이름은 거상화(拒霜花, 서리를 물리치는 꽃)였다. 조선후기 학자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를 보면 목부용, 목련, 거상화가 모두 같은 꽃이며 음력 8월에 핀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칭하는 봄날의 목련이란 일본어 목련의 유래이다. 가을날 주변을 살피면 목부용을 찾을 수 있는데, 대개는 홑꽃잎으로 핀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 속 꽃잎 무성한 품종의 목부용은 많은 이에게 모란으로 오해받는다. 이 그림 속 꽃이 모란이 아니라 목부용인 이유를 들자면, 꽃 위로 층층으로 맺혀 올라간 꽃봉오리와 그 모양, 넓적한 잎사귀, 미세한 주름이 있는 꽃잎 등이다. 조선 초기 성삼문이 안평대군의 정원 비해당(匪懈堂)을 장식한 멋진 꽃들 가운데 거상화를 들어 최고로 사랑하노라고 읊었을 만큼, 목부용은 가을 정원의 으뜸이었다. 신명연이 목부용을 이 화첩에 이렇듯 정성스레 그려 넣은 이유이다.
추해당(秋海棠)
오늘날 베고니아(Begonia)로 알려진 꽃의 한 종으로, 추해당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가을꽃이다. 연보라색 동그란 꽃잎이 방울같이 앙증맞지만, 자칫 햇빛을 오래 받으면 꽃이 힘을 잃고 수그러져 그 모양이 눈물방울 같아진다. 조선 후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이 꽃의 가녀린 아름다움에 조선의 문인들은 따뜻한 관심을 표현했다. 신위(申緯, 신명연의 아버지)는 홍색 노을에 물든 추해당을 바라보며, 눈물로 시를 쓴 중국 여인과 문사를 떠올렸고, “인간 중에 나 또한 정이 많은 사람이라 흰 이슬 내린 정원에서 슬퍼 읊조리네”라고 노래했다. 추해당은 일명 ‘단장화(斷腸花, 애간장이 끊어지는 꽃)’라고도 한다. 그 사연을 들어보면, 옛날에 한 부인이 님을 사모하며 늘 북쪽 담장 아래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훗날 그곳에서 풀이 자랐고, 그 꽃이 아름다워 단장화라 불렀으니 이가 곧 추해당이라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원나라 도종의(陶宗儀, 1329-1410)가 엮은 『채란잡지(採蘭雜志)』에 전한다.

신명연, 《山水花卉圖》 중 <추해당>, 비단에 채색, 33.1 x 20cm, 국립중앙박물관

신명연, 《山水花卉圖》중 <황촉규와 안래홍 /> <국화 /> / 비단에 채색, 33.1 x 20cm, 국립중앙박물관

신명연, 《山水花卉圖》중 좌 <황촉규와 안래홍> / 우 <국화> / 비단에 채색, 33.1 x 20cm, 국립중앙박물관

황촉규(黃蜀葵)와 안래홍(雁來紅)
‘촉규’는 백, 분홍, 홍색으로 여름에 피는 접시꽃이며, ‘황촉규’는 노란색으로 가을에 피는 닥꽃의 일종이다. 황촉규는 해를 바라보는 꽃이라고 하여 ‘향일화(向日花)’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으며, ‘향일’은 충성을 상징했다. 그러니 옛 문헌에 기록된 향일화를 해바라기로 번역하여 공연한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될 것이다. 이 그림 속 황촉규는 꽃잎이 활짝 피어 벌어진 모습이지만, 이렇게 벌어지기 전에는 오목한 술잔모양이라 옛 황실과 왕실에서 황금과 은으로 혹은 청자로 빚어 황촉규를 만들어 술잔으로 사용하며 ‘충심(忠心)’의 덕목을 노래했다. 규화는 종류가 많지만 황금술잔에 비유되던 황촉규가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가을 규화라고 ‘추규(秋葵)’라 불렀다. 옛 글에 종종 나오는 ‘규심(葵心)’이란 성실하고 충성스런 가을 추규 즉 황촉규의 향일심을 뜻했다. 화조화의 역사 속에서 중국 명나라 초기와 조선시대 초기에 유난스레 유행했던 그림이 맨드라미 홍색과 황촉규의 황색이 어울린 그림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맨드라미와 황촉규의 화면은 그러한 유풍의 반영이었다. 이 그림의 황촉규 뒤에 나란히 선 한 포기의 홍색 풀이 안래홍(雁來紅)이다. 기러기가 날라 올 때 붉게 물든다고 ‘안래홍(기러기 안, 올 래, 붉을 홍)’이 되었다. 신위는 안래홍을 아끼어 백자 화분에 심고 감상하며, 「안래홍」이란 시를 남겼다. 가을에 붉어지는 이 홍색 풀의 다른 이름은 ‘추홍(秋紅)’이었다.
국화(菊花)
그림 속 백색 국화가 몹시 탐스럽고 그 위로 청색 국화가 이색적으로 올라 있다. 옛 문인들에게 국화라 하면, 은일시인(隱逸詩人) 도연명의 이야기와 어울린 황색 국화(黃菊)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시문에서도 가장 많이 읊어졌건만, 이 그림에는 황색 국화가 그려져 있지 않고 백색과 청색의 국화가 그려져 있다. 우선 백색 국화의 사연은 조선 후기 문인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최고의 위치로 부상한 멋진 국화는 ‘백학령(白鶴翎)’이었다. 학의 하얀 깃털을 떠오르게 하는 백색 국화를 말한다. 신위도 백색 국화를 바라보며 겨울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꽃이라 읊었다. 또한 오행(五行)의 법칙으로 말하자면, 가을은 금(金)의 때요, 금의 색은 백색이다. 차고 엄숙한 가을의 덕목이 백색으로 어울린다. 그리하여 가을의 백색 꽃은 가을의 덕을 온전히 말해줄 수 있다. 이 그림 속 커다란 백색 국화는 백학령의 인기를 반영하면서 가을의 색으로도 의미화되었다. 그 위의 청색 국화는 신위가 실로 아낀 ‘남국(藍菊)’이 분명하다. 신위는 쪽빛 자그마한 국화가 어여쁜데 이름이 없다고 하며, ‘남국’이란 이름으로 거듭해서 읊었다. 신명연은 부친이 사랑한 남국을 그의 국화 그림에 종종 그려 넣었다. 남국은 남보라색 옅은 들국화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우리가 감상한 화첩 외에도 신명연이 그린 화사한 채색의 화초도 병풍들이 전해진다. 그중에 가을 색으로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주홍색 단풍잎을 그린 화폭이다. 이 글에서는 이 그림을 소개하지 못하지만 짙은 주홍을 베풀어 그린 단풍잎 즉 홍엽(紅葉)의 표현은 신명연의 이 병풍 그림이 아니라면 조선시대 그림에서 만나보기 어렵다. 신위의 격려와 신명연의 실천으로 이루어진 채색의 실현은 주목할 만한 문예현상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색채 감각은 단언하건대, 조선시대 19세기의 화단에 색의 흥분을 퍼뜨렸다. 실로 많은 양의 채색병풍들이 제작되었고 사대부의 실내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렇게 화려하게 전개된 19세기 채색의 세계에 대하여 한국회화사의 연구와 평가는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19세기를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歲寒圖)>의 시대로만 기억하는 것 같다.
글, 사진 / 고연희

1965년생,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저서
『정선 : 눈앞에 보이는 듯한 풍경』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
『꽃과 새, 선비의 마음』
『화상찬으로 읽는 사대부의 초상화』
『조선시대 산수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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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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