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그림 산책

추운 날의 벗

옛그림 산책 추운 날의 벗 옛그림 산책 추운 날의 벗
세한삼우(歲寒三友)란? 이라는 퀴즈가 나오면, ‘송죽매(松竹梅)!’를 외쳐야 딩~동~댕~ 맞는 답이다. ‘세한삼우’가 무슨 뜻인데. 그것은 ‘세한(歲寒)의 삼우(三友)’, 즉 ‘세월이 추워졌을 때의 세 벗’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소나무와 대나무와 매화일까. 추워져도 푸른 잎을 유지하는 소나무와 대나무, 추위가 깊어졌을 때 고운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가 겨울날의 친구가 될 만하다고 보았던 것이겠지만, 추위를 잘 버티는 든든한 식물이 오직 ‘송죽매’만은 아니지 않는가.
김정희(1768~1856),세한도

김정희(1768~1856), <세한도>

김정희 <세한도>의 송백
여기서,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저 유명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이다.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작품이며, 구구절절 사제지간의 사연이 아름답게 전해지는 그림이다. 이 화면에는 추운 계절을 꿋꿋하게 버티는 나무들이 벗으로 어울려 있다. 그들이 두 종류의 나무로, 이름은 ‘송백(松柏)’이다. ‘松柏’이란 두 가지 나무가 ‘소나무와 잣나무’인지 ‘소나무와 측백나무’인지 따지는 분들도 있다. 잣나무와 측백나무는 다른 나무인데 모두 柏자로 표기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세한도>에는 늙어 웅크렸지만 솔잎 성성한 가지가 뻗어 나온 소나무, 쭉쭉 뻗어 오른 측백나무가 그려져 있다. 아무튼 송백이란 두 종류는 겨울에도 푸른 상록수이다. 겨울이 들어 세상 초목이 누렇게 변하여 잎이 떨어질 때 송백의 푸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공자(孔子)가 이들의 변치 않는 지조를 칭찬했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의 명구이다.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송백이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공자는 기원전 인물이요, 백대의 스승이다. 공자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세한의 나무를 송백이라 규정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김정희는 이를 그렸다. 제주도에 유배 중인 자신에게 책을 보내준 제자를 일컬어 공자가 말한 송백과 같은 인격이라고 높이 칭찬하고 그림 제목을 ‘歲寒圖’라고 그의 추사체(秋史體)로 정성스럽게 적어 넣었다. 세한의 송백은 가장 유명한 세한의 겨울나무들이다.
권돈인(1783~1859),세한도

권돈인(1783~1859), <세한도>

'송죽국, 송백죽, 매죽석'
이제 만약, ‘세한삼우는?’이라고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송백’을 내세워 ‘송백매’ 혹은 ‘송백죽’이라고 답해보라. 만약 틀렸다고 하면 ‘송백’이야 말로 가장 전통적인 세한의 벗이었다고, 공자 가로되 “세한연후지송백”이요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에 그린 것이 ‘송백’이라 예시(例示)하여 논증(論證)하면 된다. 사실 역사를 거슬러 찾아보면 이미 송나라 학자 왕십붕(王十朋)이 「시월 이십일 국화(菊) 한 포기를 샀는데 아주 아름답다. 군재의 송(松)과 죽(竹) 사이에 두었더니 절로 세한삼우가 되었구나[十月二十日買菊一株頗佳, 置于郡齋松竹之間, 目爲歲寒三友]」라는 글을 지었다. 그의 문집 『매계후집(梅溪後集)』에서 전한다. 이 글에서 세한삼우는 ‘송죽국’이다. 왕십붕은 추워지는 계절 송죽국을 그의 겨울 벗이라 하였다. 원나라 학자 오징(吳澄)은 「소나무의 벗 이야기[松友說]」에서 소나무의 사계절 푸른 ‘곧고 굳셈[貞堅]’에 벗이 되는 나무로 백(柏)과 죽(竹)의 전통을 먼저 거론하였다. 오징의 문집 『오문정집(吳文正集)』에 전한다. 그뿐이 아니다. 조선시대 김정희의 벗 권돈인(權敦仁, 1783~1859)이 그린 <세한도>에는 ‘송백’ 뒤로 대나무가 가득하다. 권돈인은 ‘송백죽’의 세한삼우를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에게 최고의 문장가로 사랑받았던 대문호는 송나라 소동파(蘇東坡, 1037~1101)였다. 그는 추울 때의 ‘매죽석’을 자신의 세 벗이라 했다. 소동파의 벗 문동(文同)이 ‘매죽석’을 그림으로 그리자, 소동파가 이 그림에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동조하였다.
매화는 추울수록 빼어나고, 대나무는 마를수록 장수하고 梅寒而秀, 竹瘦而壽,
돌은 추할수록 아름다우니, 이들은 유익한 세 벗이다 石醜而文, 是爲三益之友
날은 춥고 모습은 마르고 또 추하다면 빈한(貧寒)의 극치라 처량한 꼴이건만, 그것이 빼어나고 수(壽)를 누리며 또한 아름답다는 역설(逆說)의 칭송으로 문득 내면의 깊숙한 아름다움을 모색해낸 뒤 그리하여 이들이 좋은 벗이 된다고 하는, 소동파의 이 글은 실로 시인의 마음도 홀릴 만하다. 이 문장이 후대 문인들에게 꽂혔던 이유이다.
이인상(1710~1860),수석도

이인상(1710~1860), <수석도>

이인상 수석도의 '수죽석'
조선후기 문인화가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이 소동파의 멋진 문장을 패러디했다. 그림을 그리고 소동파의 글을 그림 위에 옮겼다. 조금 다르게 옮겼지만 뜻이 비슷하다. 아니, 간결하게 바꾸고 또 살짝 뒤틀어 결과는 소동파의 원문에 못지않다.
나무는 추울수록 빼어나고, 돌은 아름다울수록 추하다 樹寒而秀, 石文而醜
이인상의 젊은 시절 그림이라, 겨울을 견디는 패기를 표현한 듯하다. 그림에는 세 그루 나무 뒤로 각진 큰 바위가 섰다. 키가 제일 큰 소나무가 적지 않은 화면의 중앙을 비스듬히 비켜섰다. 그 아래로 마치 김정희의 측백 같은 침엽수 그리고 잡목이다. 말하자면 이인상은 그림 중심에 송백을 그리고 이를 ‘나무[樹]’라 칭한 것이다. 매화와 대나무는 그리지 않았고 글에도 넣지 않았다. ‘매죽’ 대신 ‘송백’을 넣고, 소동파의 글도 바꾸었던 것이다. 이 그림은 이인상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인상은 김정희가 존경했던 문인화가이다. 김정희의 ‘추사체(秋史體)’ 이전에 이인상의 ‘원령체(元靈體)’가 있었다.
조선의 ‘매죽(梅竹)’
그럼, 세한삼우가 무엇인가의 정답은 없다는 말인가? 세한삼우가 송죽매로 된 사연은 최근의 연구를 빌려 밝히자면, 송나라 사람들이 새해를 축복하는 예쁜 장식물에 송죽매를 사용하며 이를 세한삼우라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문인들은 세한삼우를 문인 스타일로 뜻에 맞추어 다시 만들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중국 명나라에 들면 <세한삼우도>란 제목의 송죽매 수묵화를 그리고 도자기에 시문하면서 ‘송죽매’를 충절의 강인한 벗들로 노래했다. 한편 고려와 조선에서는 세한삼우라는 장식문양이 유행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회화작품으로 송죽매를 그린 세한삼우도란 것도 거의 없고, 조선시대 문인들이 세한삼우란 말로 송죽매을 지목하여 읊은 경우가 별로 없다. 송죽매보다는 매죽(梅竹)의 문양과 회화작품 등이 조선 초기에 갑자기 인기를 누렸는데 이것은 명나라 초기의 세한삼우로서의 송죽매의 부상과 관련이 있어 보일 뿐이다. 조선 초기의 매죽은 강력한 지조의 상징이었다. 조선 초기 선비들은 수묵으로 그린 매죽을 그들의 프로필에 사용했다. 매죽과 같이 깨끗하고 믿을 만한 인격이란 뜻이었다. 이제, 우리도 이 겨울을 꿋꿋하게, 우리들 마음과 각오를 든든하게 의지할 만한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 푸른 나무를 벗으로 삼고 인격의 모델로 삼았던 옛날의 방식보다 좀 더 멋진 나의 세한삼우를 찾아보면 어떨까.
글, 사진 / 고연희

1965년생,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저서
『정선 : 눈앞에 보이는 듯한 풍경』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
『꽃과 새, 선비의 마음』
『화상찬으로 읽는 사대부의 초상화』
『조선시대 산수화』 등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20-01-23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