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그림 산책

파도 그림, 여름에 즐기는 한기(寒氣)

파도 그림, 여름에 즐기는 한기 파도 그림, 여름에 즐기는 한기
물(水)이 담은 ‘복(福)’과 ‘덕(德)’
그림 속 물이라 하면, 복이나 덕을 상징하는 경우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적어도 고려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십장생(十長生)은 한국의 고유 주제로 지속되었다. 고려의 이색(李穡)은 십장생을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이라 기록했고, 조선의 성현(成俔)은 해, 달, 산, 천, 소나무, 대나무, 거북, 학, 사슴, 영지라 했으니, ‘물’은 십장생의 하나였다. 십장생은 장수(長壽)의 축복을 담아 고려와 조선의 혼인식에 펼쳐졌고, 옷이며 각종 공예품에 새겨졌다. 조선의 왕좌에 펼쳐졌던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그려진 것이 하단에 둥글둥글 일률적인 문양을 이루는 물결이었다. 물은 영원(永遠)의 축복을 전달하는 주술(呪術)의 코드였다.

그림1_마원(馬遠), 《수도(水圖)》 12폭 중 <황하역류(黃河逆流)>, <운서랑권(雲舒浪卷)>
각 26.8 x 41.6 cm, 북경고궁박물원

한편,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최선(最善)의 덕(德)을 말하고자 물을 지목했다. 다투지 않고 만물을 끌어안고 아래로 유유하게 흐르는 속성을 말하노라면 물은 선량한 덕의 메타포로 손색이 없다. 유가에서도 물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성찰의 시간을 가지라고 요구했다. 공자(孔子)는 흐르는 물을 보라 하였고, 맹자(孟子)는 물을 보는 방법을 설명했다. 도산서원(陶山書院) 가운데 학생들의 학습공간인 농운정사 좌우로 있는 작은 방의 이름이 각각 시습재(時習齋)와 관란헌(觀瀾軒)이다. 시도 때도 없이 배우라 요구하는 ‘시습재’, 여울의 물을 보며 성찰하라 가르치는 ‘관란헌’. 그리하여 물을 보고 앉은 이미지는 학습하고 성찰하는 모습이 될 수 있었다. 옛 그림에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는 학자상이 종종 그려진 이유이다.
파도(波濤) 그림에 부는 찬바람
그래서일까. 복과 덕의 상징이 아니라 출렁이는 파도의 오싹한 추위를 느끼고자 했던 파도 그림의 역사가 있었노라 이야기하면 다소 낯설게 듣는 것 같다. 그러나, 파도를 커다란 화면에 가득 그려 실내를 장식하고 오로지 촉각(觸覺)의 감각으로 파도를 향유했던 그림의 역사가 면면했다.
물결이 일렁이는 화면을 감상한 문인들의 시문은 당나라로부터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송나라의 한림원(翰林院) 한쪽 벽에 낡도록 두었다는 동우(董羽)의 파도 그림이 거듭 칭송되었다. 동우가 그린 “파도는 마치 움직이는 것 같아 보는 이는 놀라게 된다(波濤若動, 見者駭目)”는 특성이 지목되었다. 출렁이는 물결을 주제로 하는 송나라 그림은 커다란 사찰의 벽에도 안치되었다. 동우의 파도 그림은 이미 금릉[남경]의 청량사에 그려졌고, 그 외 화가의 그림으로 각원사(覺苑寺) 벽의 물 그림이 세차게 솟아[濤瀾洶湧] 놀랄 만했으며, 태평사(太平寺)의 물 그림 벽화는 원나라까지 이름이 높았다. 고우사(高郵寺) 벽의 파도 그림도 북송대 시인들이 거듭 시를 남겼다. 또한 매요신(梅堯臣, 1002-1060)은 《물 그림 낮은 병풍》에 대하여 “앞 물결은 눈 같은 꽃잎이 말리고, 뒤 물결은 백마가 뛰어오른다(前浪雪花卷, 後浪白馬跳)”고 묘사했다. 이는 송나라 개인의 저택에 펼쳐졌던 파도 그림의 정황을 알려준다. 파도 그림을 기록한 시문들 가운데 대문장가 소식(蘇軾, 1037-1101)의 글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대자사(大慈寺)의 수영원(壽寧院) 네 벽의 거대한 파도 그림을 다시 그린 화가 포영승(蒲永昇)의 필치를 좋아했다. 소식은 포영승이야말로 ‘활수(活水)’를 그렸다고 칭찬하느라, 동우를 포함한 다른 화가들의 물 그림은 모두 ‘사수(死水)’라는 험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매년 여름 높은 당의 빈 벽에 이를 걸면 음산한 바람이 사람을 덮쳐 모발이 곤두선다”고 하며, 소식은 포영승의 파도 그림이 주는 한기의 즐거움을 감탄했다.
소식의 모발을 곤두세운 그림의 실상은 어떠했을까. 매우 궁금하지만, 그 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굳이 송나라 파도벽화의 흔적을 찾자면,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의 성모전(聖母展) 벽의 거대한 물 그림이 있다. 구글을 검색하면 쉽게 그 장관을 만날 수 있는데, 현전하는 벽화의 역사적 진실은 장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대규모의 파도 그림 장식이 당나라 송나라 주요 건물에 설치되었다는 사실이다.
좀 더 선명한 유적은 남송 황실의 화원화가 마원(馬遠,약 1190-1255)이 작은 화면에 그려놓은 《수도(水圖)》 12폭(그림 1)이다. 열두 가지 다양한 물결을 묘사한 이 그림에 대하여 명나라 문인 이동양(李東陽, 1447-1516)이 ‘활수(活水)’라 칭했다. “상태가 각각 다르고, 강물이 더욱 기이하다. 규범 너머로 빼어나니 실로 소식이 말한 ‘활수’로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쉬운 대로 마원의 《수도》를 통하여 송나라 ‘활수’의 파도그림의 활기를 감상할 수 있겠다.
당나라, 송나라 등 중국 고대의 건물을 장식한 멋지고 커다란 파도 그림에 대한 기억을 명나라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궁춘효도(漢宮春曉圖, 한나라 황궁의 봄 새벽을 그리다)>가 그것이다. 이 그림 중 아침 일찍 출근한 화가가 단장한 황실 여인의 초상을 그리는 장면이 유명한데, 꾸미고 앉은 아름다운 여인 뒤에 배설된 병풍이 바로 파도 가득 출렁이는 화면이다(그림 2). 이를 그린 화가는 구영(仇英)이다. 수년 전 구영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바 있다. 전시기간을 못 채우고 돌아갔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구영의 이름을 각인시켜 주었다. <청명상하도>와 <한궁춘효도>는 당시부터 인기가 높아 거듭 임모되었고, 조선후기 한반도로 전달되었다.

그림2_구영(仇英), <한궁춘효도(漢宮春曉圖)>, 부분도, (전체크기 30.6 X 574.1cm), 대만고궁박물원

조선의 서재(書齋)에 출렁이는 파도(波濤)
조선의 문인들은 송나라 한림원에 설치되었던 동우의 파도 그림을 기록으로 보았고, 송나라 문인 소식의 ‘활수’ 이야기도 익히 알고 있었다. 조선 초기 김안노(金安老, 1481-1537)가 소식의 글을 옮겼고, 조선 후기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은 명나라 이동양이 마원의 수도로 소식의 활수를 이해한 내용을 인용했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은 활수의 파도 그림을 상상하며, “여름에 한기가 나서 몸이 더위를 잊는다(夏生寒氣, 體粟忘暑)”는 상상의 파도 그림을 글로 다시 묘사하며 독자로 하여금 추위의 전율이 일어나도록 하고자 했다.

심사정, <해암백구풍범(海巖白鷗風帆)>,
종이에 담채, 28.8 x 31.2cm, 국립중앙박물관

파도 그림을 상상하거나 소유하거나, 혹은 파도 그림으로 서재를 장식하는 문인들이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이다. 18세기 이종휘(李鍾徽, 1731-1797)는 자신의 서재 온 벽에 《화해장자(畵海障子, 바다물 가리개 그림)》를 붙여놓은 ‘상상’을 하면서, 자신의 서재명을 ‘함해당(涵海堂, 바다에 담긴 집)’이라 하였다. 사실 함해당에는 《화해장자》가 없었고, 함해당의 위치는 바다로부터 먼 곳이었지만, 그가 우울증으로 답답할 때 조용히 누워 남해를 상상하며 마음을 다스리다가 서재 벽에서 파도의 물결을 보았다. 그것은 《화해장자》의 환상이었다. 그 순간, 그의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졌다고 한다.
19세기 문인들의 파도 그림에 대한 관심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신위(申緯, 1769-1847)의 문집에는 이병규(李秉奎, (?-?)가 가지고 있는 <해파도(海波圖)>를 보려고 간절하게 요청하는 시가 실려 있다. 19세기 문인 조두순(趙斗淳, 1796-1870)과 조면호(趙冕鎬, 1804-1887)가 모두 조병황(趙秉璜)의 서재를 장식한 파도 그림에 대한 애정을 기록했다. 조병황의 모습은 마른 학과 같고 정신이 맑고 고고했다고 한다. 조병황의 서재 ‘해당(海堂)’에는 ‘바다를 그린 그림(畵海水)’이 장식되어 있었다. 조명황은 이런 시를 남겼다. ‘곁 사람은 문 열기를 쉬이 하지 마시오. 물결이 쏟아져 그에게 닥칠까 심히 걱정되기에(傍人開戶休容易, 深恐橫波漏及他)’. 그의 서재명이 ‘海堂’인 이유가 충분하다. 신위가 보고자 한 파도 그림, 조병황 서재의 바다 그림이 현전하지 않음이 아쉬울 뿐이다.

김홍도 《병진년화첩》 14폭, <창랑낭구도<滄海浪鷗圖)>,
종이에 담채, 41.7 x 48cm, 간송미술관

현전하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파도 그림 두 점을 이제 펼쳐보고자 한다. 심사정(沈師正, 1707-1769)과 김홍도(金弘道, 1745-?)의 작품이다(그림 3, 4). 출렁이는 파도 표현에 화가가 심혈을 기울인 점이 눈에 들 것이다. 그림 속 물결을 보며 피부의 체온을 조금 낮출 수 있을 것이며, 마음은 절로 후련해올 것이다. 김홍도 그림의 화제는 “왕래유저불승한(往來幽渚不勝閑, 먼 물가에 오르락내리락 한가롭구나)”이다. 여기서,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위좌승 어른께 삼가 올립니다(奉贈韋左丞丈)」의 마지막 구절, “너르고 호탕한 물결 사이에 출몰하는 흰 갈매기, 만리 밖 어느 누가 길들일 수 있으리오(白鷗沒浩蕩 萬里誰能馴)”가 떠오른다. 이제는 한 마리 갈매기가 되어, 그림 속 찬바람 찬 물결에 부딪쳐볼 일이다. 이것이 이 그림에 대한 온전한 감상법이다.
글, 사진 / 고연희

1965년생,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저서
『정선 : 눈앞에 보이는 듯한 풍경』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
『꽃과 새, 선비의 마음』
『화상찬으로 읽는 사대부의 초상화』
『조선시대 산수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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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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