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큰 화제를 모은 뉴스가 있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소식이었다.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트럼프에게 “세상의 다리를 세우려는 게 아니라 오직 장벽만을 쌓으려 한다면 결코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던 교황이었기에, 그의 트럼프 지지 소식은 미국 대선 기간 중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 소식은 페이크뉴스, 즉 가짜뉴스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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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이유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동안 등장한 가짜뉴스들은 여러 논란을 일으키며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다. 2016년 8월에서 10월까지 3개월 동안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미국 대선 관련 가짜뉴스 20건의 공유 및 댓글 작성 수는 무려 871만 건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주요 언론사 뉴스의 공유 및 댓글 수 737만 건보다 18%나 많은 수치였다. 이러한 가짜뉴스는 어디서 누가 만들어 낸 걸까?
프란치스코 교황 관련 가짜뉴스를 조사한 결과, 뜻밖에도 그 생산지는 마케도니아의 벨레스라는 소도시인 것으로 밝혀졌다. 벨레스에 사는 10대 청소년들이 극우 성향의 사이트나 SNS의 글을 모아 가짜뉴스를 만들었던 것이다. 미국 대선과 이해관계가 없는 마케도니아의 청소년들이 트럼프에게 유리한 가짜뉴스를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높은 조회 수가 나오는 콘텐츠일수록 많은 광고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의 청소년들이 만들어 낸, 출처와 근거가 불분명한 가짜뉴스가 미국에서 널리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책과 뇌의 관계를 연구한 인지신경학자 메리언 울프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깊이 읽기"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짧고 단순함에 익숙해진 세대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tl;dr”
이것은 “too long; didn’t read’ 즉, ‘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다’는 문장의 줄임말로, 젊은 세대가 길고 복잡한 문장보다는 짧고 단순한 문장을 선호하고 있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는 짧고 단순한 정보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세계정보산업센터에서 한 사람이 하루에 사용하는 정보의 양을 조사한 결과, 평균 약 34기가바이트, 약 10만 개의 영어 단어에 해당하는 방대한 정보를 소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타임지>가 조사한 20대들의 미디어 사용 습관에서는 시간당 27번이나 매체를 바꾸어 가며 정보를 얻고 있으며, 휴대전화 확인 횟수는 150에서 190회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다양한 매체와 기기를 통해 산발적으로 많은 정보를 접하다 보니 우리는 스크린 화면을 훑어보거나, 건너뛰거나, 대충 읽는 것에 익숙해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읽기 능력”이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성취하는 지적 능력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새로 학습할 것이 나타나면 기존의 구조들을 활용하거나, 구조를 재정비하여 새로운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방식에 따르면 온라인 페이지를 지속적으로 옮겨 다니면서 짧은 글만 읽다 보면 우리의 뇌는 자연스레 산만함으로 가득 찬 디지털 기반의 읽기 방식으로 발달하게 된다. 이후 스크린을 꺼도 이미 우리 뇌가 디지털 기반의 읽기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책이나 신문에 실린 긴 문장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즉, “깊이 읽기”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지신경학자 메리언 울프가 말하는 "깊이 읽기"란 과연 무엇일까?
깊이 읽기와 판단 능력의 연관성
“깊이 읽기”란 책 속 문장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그 이미지를 상상하고, 타인의 관점에서 공감하고, 배경지식을 활용하여 분석하고, 추론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남긴 “초단편소설”을 천천히 읽어 보자.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비록 여섯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글이지만, 읽는 순간 우리는 조그맣고 쓸쓸한 아기 신발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신발의 이미지는 우리의 배경 지식 저장소로 흘러 들어가서 여섯 단어가 의미하고 있는 전체 내용 즉 배 속의 아기를 잃게 되어 미리 사둔 신발을 신겨보지도 못하고 처분하는 상황을 유추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아기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신발을 팔아야 했던 그 사람의 쓰라린 고통에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바로 책을 “깊이 읽는” 방식이다.
인지심리학자 키스 스타노비치는 읽기에 관한 연구를 통해, 유년 시절 어휘가 풍부한 아이는 나중에도 어휘가 풍부해지는 반면, 어휘가 빈곤했던 아이는 자라서도 어휘가 빈곤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깊이 읽기” 또한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깊이 읽기” 과정을 통해 배경 지식을 풍부하게 쌓은 사람은 이후 글을 읽을 때, 분석하고, 추론하고, 비판하면서 더욱 “깊이 읽는“ 활동을 하게 되지만, “깊이 읽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분석하고, 추론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부실하기 때문에, 가짜뉴스에 현혹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와 인터뷰한 가짜뉴스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무조건 퍼 나르기만 할 뿐, 그 누구도 그 무엇에 대해서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보 이해력,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의가 분산되고 양극화된 문화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해 보입니다.”
정보를 찾는 것보다 좋은 정보를 선별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 매일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들 가운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다시 책 앞으로 돌아오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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