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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원전 2세기. 몽골 초원에 흉노라는 유목민들이 무리 지어 살았는데, 이 중 묵특이란 자가 있었다.
"너희들은 내가 화살을 쏘면 무조건 같은 곳으로 화살을 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죽음으로 다스릴 것이다."
묵특이 사냥터에서 사슴을 쏘자, 수하들도 같이 사슴을 향해 활을 쏘았다. 이때 같이 활을 쏘지 못한 부하들은 모두 참살되었다.
얼마 후, 묵특이 흉노의 우두머리였던 아버지에게 활을 겨누자, 병사들은 망설임 없이 활을 쏘았다. 흉노의 임금은 온 몸에 화살을 맞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한번의 활질로 흉노의 우두머리가 된 묵특은 동쪽의 동호를 비롯하여 서쪽과 초원지대까지 모든 민족을 복속시켰다. 역사상 최초로 초원세계를 통일한 것이다.
당시 중원은 진시황이 사망한 후, 유방이 그 뒤를 이어 한나라가 세운 직후였다. 유방은 북쪽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는 흉노에게 위기감을 느꼈고, 이들을 정벌하기로 결심한다. 201년, 산서성 대동지역에서 중원을 제패한 유방과 초원을 정벌한 묵특이 각각 30만 대군을 이끌고 대치하게 되었다.
흉노 군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한나라가 기병 만 명으로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한나라의 기병을 본 흉노군은 도망치기 시작했고, 결국 한군은 첫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유방은 첫 승리에 고무되었지만 다음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정탐꾼을 흉노군에 잠입시켰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묵특은 건강한 병사와 말은 뒤쪽으로 보내 숨기고, 앞쪽으로 병약한 병사와 말을 보이도록 지시했다.
이윽고 흉노군에 잠입했던 정탐꾼이 돌아와 유방에게 보고했다.
"묵특의 군대는 나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오랜 유목 생활로 체력은 떨어진 듯 보이고, 말들 또한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에 안심한 유방이 공격을 명령하자, 한 신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초원을 제패한 흉노군이 그리 허약하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이 또한 흉노의 함정이 아닐까 우려됩니다."
하지만 유방은 신하의 조언을 무시하고,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 죄로 족쇄를 채웠다. 유방은 승리를 자신하며 군대를 흉노군 깊숙이 침투시켰고, 이로 인해 후방의 보급부대와 간격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흉노군은 순식간에 한나라군의 주변을 포위했다. 보급부대와의 연결을 끊고 사방으로 진을 친 것이다. 발이 묶인 한나라 병사들은 추운 날씨로 인해 동상에 걸린데다가, 식량이 떨어져 굶주림 에 지쳐가고 있었다. 반면 추위에 익숙한 흉노군은 피해가 적었다.
결국 유방은 전투에 패해 간신히 탈출하게 되었고, 흉노에게 조공을 바치고 형제맹약을 맺어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는 굴욕적인 조항을 맺어야 했다. 이후, 묵특의 정복 사업은 점점 더 확장되었고, 흉노는 이후 70년간 동아시아의 패권을 쥐게 되었다.
연이은 성공에 취해 신하의 조언을 무시해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유방과 굳은 인내심으로 역전의 기회를 잡아 큰 승리를 거둔 묵특, 이 두 영웅의 모습은 오늘날 중요한 결전을 앞두고 있는 리더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