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한 그릇에는 격동의 근현대사가 담겨있다고 한다. 6.25 전쟁 이후 실향민들은 냉면을 먹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동시에 위로를 얻었다. 조선시대 임금은 물론 일반 서민들도 즐겨 먹었던 음식, 냉면. 작년 평양을 방문한 남측예술단이 옥류관에 방문해 평양냉면을 먹으며 이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대되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왜 오래된 냉면집을 찾는 것일까? 각각 평안도, 함경도, 경상도 지방에서 즐겨 먹던 냉면이 어떻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냉면이 되었는지 그 역사와 제조법 그리고 유서 깊은 대표 맛집을 소개한다.
냉면의 유래와 대중화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냉면을 먹었을까? 냉면의 기원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중기 평양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 중기의 냉면을 기록한 고문헌에 '찬 곡수(穀水)에 면을 말아 먹는다'라는 취지의 기술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각종 문헌에서 본격적으로 냉면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17세기 초 장유가 쓴 <계곡집>의 ‘자줏빛 육수의 냉면’이라는 시에서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쓰였다. 이때 독특한 맛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소수계층과 지역에서만 즐겼던 음식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냉면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조선후기부터이다. 1849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겨울철 제철음식으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냉면이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1896년에 쓰인 《규곤요람》에서는 냉면에 대해 ‘싱거운 무김칫국에다 화청(和淸)해서 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잘 삶아 넣고 배, 밤과 복숭아를 얇게 저며 넣고 잣을 떨어나니라.’라고 했다.
겨울철 별미음식,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냉면은 예부터 무더운 여름을 이기기 위해 먹었던 음식일까? 사실 그 반대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모두 이북에서 겨울철 즐기던 음식이었다고 한다.
겨울의 동치미 국물을 육수로 사용해 메밀순면을 곁들이는 음식이었던 평양냉면은 추운 겨울 따뜻한 방안에 모여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서북지방에서 자라는 긴 무로 겨울에 동치미를 담그기에 겨울철 음식이었던 것이다. 남한으로 전해지며 동치미 국물이 아닌 고기육수를 사용하게 되었고 무더운 여름을 버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렇다면 함흥냉면은 어떨까? 함흥냉면의 원조는 바로 농마국수이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농마국수의 ‘농마’는 녹말의 함경도 사투리라고. 함경도 지방에서는 감자가 많이 나 녹말가루로 면을 뽑아서 국물에 말거나 고명을 얹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그중 쉽게 수확이 되었던 가자미를 고명으로 만들어 뜨거운 육수와 함께 즐기며 매서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매운 양념은 덤으로 몸에 열을 내주어 추위를 견디게 해주었다. 이러한 농마국수의 형태가 남쪽으로 전해지면서 감자전분이 아닌 고구마전분, 가자미가 아닌 홍어나 명태가 주재료로 바뀌고 자연스레 여름을 나기 위한 시원한 음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냉면의 원조, 평양냉면
물냉면으로 흔히 알려진 평양냉면은 겨울이 긴 이북에서 발달했다. 메밀국수를 동치미 국물에 담가 먹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즐겨 먹으며 대중화되었다. 남한으로 내려오며 다양한 계열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평안도의 맛을 유지하는 유서 깊은 식당이 존재한다.
1946년 서북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우래옥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다. 故 장원일 씨와 가족은 한국전쟁 때 피란을 갔다가 돌아와 영업을 재개하였고 ‘다시 돌아온 곳’이라는 의미의 우래옥으로 이름을 바꿨다. 요즘에는 ‘한번 다녀간 손님은 잊지 않고 또 찾아오는 곳’이라는 의미로 통한다고. 실향민과 그들의 자손들이 대대손손 찾아 예나 지금이나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소고기 국물로만 육수의 맛을 내 깔끔하고 심심한 맛이 특징인 우래옥과 달리 의정부 계열로 분류되는 을지면옥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육수를 내고 그 위에 고춧가루와 파를 올리는 게 특징이다. 현재는 을지로 지역재개발사업으로 하루하루 떠들썩하니 더 늦기 전 좁은 골목을 지나 옛 정서를 느끼러 다녀오길 추천한다.
빨간 고명을 얹은 함경도식 국수, 함흥냉면
6.25 전쟁 이후 함경도 실향민들은 속초와 서울, 부산으로 분산되었는데 서울에는 건어물 유통 중심지인 중부시장을 중심으로 몰렸다고 한다. 1953년 개업한 오장동 흥남집을 시작으로 여러 함흥냉면 식당들이 영업했지만, 현재는 흥남집과 오장동 함흥냉면 두 곳만 남았다고. 여전히 많은 손님이 찾아 이 식당에 가면 합석은 기본이다. 좁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위치해 있지만 오묘하게 맛 차이를 보이는 이 두 곳을 추천한다.
오장동 흥남집은 1953년 문을 열어 4대째 맛을 이어가는 유서 깊은 식당이다. 간장국물이 자작하게 고여 있는 것이 이 집만의 특별한 비결이라고 한다. 이 국물이 냉면의 고소함을 한층 가미한다.
2013년 서울시로부터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오장동 함흥냉면은 1953년에 개업해 3대째 운영 중이다. 손님들 사이에서 ‘오장동에서 함흥냉면 잘하는 집’이라고 불려 자연스레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고. 이 집은 특이하게도 회냉면에 계란을 제공하지 않아 냉면 자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양념 맛이 진한 것 또한 특징이다.
양반문화와 지리적 위치가 결합된 남한 최고의 냉면, 진주냉면
냉면의 원조를 꼽을 때 이쪽 지방의 냉면을 빠뜨리고 말할 수는 없다. 이북지방 최고의 냉면으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꼽는다면 국내 최고의 냉면은 진주냉면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한 육수의 제조법과 육전을 올리는 것이 특징인 진주냉면은 요리만화 <식객>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고.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진주냉면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많지만, 조선시대 교방에서 발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한다. 양반들이 술을 먹고 난 후 입가심과 해장으로 이 냉면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진주냉면의 핵심은 육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각종 해산물로 육수를 우려 아주 특별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양지를 삶은 육수를 사나흘 간 숙성시킨 뒤 마른 황태, 마른 오징어, 디포리, 다시마 등 다양한 해물과 표고버섯을 넣어 열두 시간 가량 한 번 더 우려낸다고 한다. 이렇게 우려낸 육수에 자작하게 지진 육전을 올리면 그 맛은 금상첨화이다.
진주냉면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하연옥은 타지역에 다른 분점 없이 진주시에서만 영업 중이다. 10여 가지의 해산물로 육수를 만들고, 비린 맛을 제거하기 위해 무쇠를 달궈 끓는 육수통에 넣는다. 70년째 영업중인 이곳은 진주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특히나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1945년에 개업해 약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맛을 이어오고 있는 박군자 진주냉면집이다. 진주에 본점을 두고 전국에 여러 분점을 냈다. 수원에 위치한 분점을 방문해 진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따뜻한 육전을 따로 주문해 시원한 국물의 냉면과 함께 먹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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