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즐겨 마시는 소주는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꽤 길다.
그 옛날에는 왕들이 즐기던 사치품이었다는데,
현대의 소주와 전통 소주는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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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류 소비 통계기관 IWSR에 따르면 한국에서 1년에 소비되는 술 가운데 소주는 33%로, 맥주(54%)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 자료는 술의 양을 환산한 것이기에 실제 알코올 도수를 대비하면 소주가 1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소주는 언제, 어떻게 우리의 삶에 깊게 자리하게 된 것일까요?
요즘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는 ‘타피오카’를 주정으로 사용합니다. 옥수수보다 저렴한 타피오카를 사용해 에탄올을 만들고 여기에 물을 희석해 희석식으로 소주를 만들죠. 반면, 과거의 소주는 쌀로 만든 막걸리의 원료인 밑술을 증류해 만드는,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안동 소주와 비슷한 형태였습니다.
몽골의 지배를 받던 고려 지역에서 몽골인들이 마시던 술이 전파됩니다. 몽골제국 5대 칸, 중국 원나라의 시조이던 쿠빌라이 칸이 다스리던 시대에 그의 병사들은 언제나 몽골의 전통주이자 우리의 소주와 비슷한 형태인 ‘아락’을 허리춤 가죽부대에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몽골군이 주둔했던 개성, 안동, 제주지역이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소주 명산지가 된 것을 보면 몽골군들이 주둔해 술을 만들던 것이 그대로 정착된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하게 됩니다.
소주는 곡식을 원료로 만들기 때문에 값비싼 술로 여겨져 서민들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고려사>에서는 소주가 비단과 금, 옥 등에 비유할 만큼 사치품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조에는 금주령이 여러 차례 내려집니다. 이때 약재를 넣은 약주는 예외였는데, 그래서 양반들은 청주를 약주인 양 사칭하면서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술을 약주로 부르게 되고, 그것이 오늘날 술을 통칭하는 이름이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초반에 30도를 웃돌았던 소주는 워낙 독주였기 때문에 인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60년대 중반 쌀 부족으로 순곡주 금지령이 내려지자 국민들은 소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를 시작으로 소주는 국민주로 거듭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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