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재생이 안 될 경우 FAQ > 멀티미디어 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현재 아테네 군이 우익, 테베 군이 좌익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보병은 3만 명 정도로 저희와 비슷 합니다.
먼저 기병대를 이용하여 돌진하면 어떻습니까?"
"흠. 시도해본 적이 없으니 적군이 예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계획대로 하라."
기원전 338년 8월, 마케도니아와 테베-아테네 연합군이 그리스의 카이로네이아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최전선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이들은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 그리고 당시 18살의 나이로 처음 전쟁에 참여한 왕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였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페르시아 정복을 꿈꾸며 차츰 세력을 확장해나가던 중이었다. 필리포스 2세는 과감한 군제개혁을 시행했는데, 그 일환으로 귀족 출신의 왕실 친위기병대를 만들었다. 이들이 '헤타이로이'라 불리는 정예병이었다. 한편 마케도니아의 세력 확장에 위기를 느끼던 테베와 아테네는 서로 연합하여 마케도니아와 전쟁을 선포했다. 이것이 바로 카이로네이아 전투였다.
전투가 시작되자 알렉산드로스는 좌측을 맡고, 필리포스 2세는 우측을 지휘했다. 그에 맞선 연합군은 아테네 군이 좌익, 테베 군이 우익에 위치했다. 그 때 알렉산드로스는 헤타이로이 기병대를 좌측의 배후에 대기시켰다. 그리고 바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병사들은 지금 후퇴한다!"
필리포스 2세의 명령에 따라 마케도니아 보병들이 후퇴하자, 이를 본 아테네 군은 사기가 올랐다. 작전대로 아테네 군은 마케도니아 군을 쫓아갔고, 곧 아테네 군과 테베 군의 전열이 끊어지며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이다. 전열이 끊긴 적군들 사이에 침투하라!"
조용히 대기 중이던 헤타이로이 기병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적군의 빈 공간을 침투했다. 기병대는 엄청난 기세로 공격했고, 테베 군은 당황하며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머지 보병들은 테베 군의 전방을 공격하라!"
알렉산드로스는 보병들을 테베 군의 전방으로 투입했고, 앞뒤로 마케도니아의 군사들에게 협공을 받은 테베 군은 우왕좌왕하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필리포스 2세는 이를 틈타 두 번째 작전을 시작했다. 아테네 군을 피해 후퇴하던 군대를 다시 돌려세운 것이다. 테베 군이 무참히 당하는 모습을 보며 당황한 아테네 군은, 적군이 방향을 바꾸어 거꾸로 돌진하자 전열이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마케도니아 군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마케도니아 군의 승리에는 헤타이로이 기병대의 역할이 컸다. 당시 기병의 주된 임무는 정찰과 추격, 보호 등이었다. 하지만 헤타이로이 기병대는 장창을 쥐고 쐐기꼴 대형으로 적진에 파고 들어가 적의 대형을 분쇄하는 역할을 했다.
또 보병대의 긴 창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보병들은 다루기 쉬운 2.4미터 길이의 창을 사용했다. 하지만 필리포스 2세는 기존의 창을 4.2미터 길이의 장창으로 바꿨다. 문제는 창이 길어진 만큼 두 손을 사용해야 했기에, 방패를 들 수 없었는데,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방패를 가벼운 것으로 바꾸어 팔에 매달았다.
이와 같이 마케도니아는 기병과 장창의 장점인 공격력을 극대화 하고, 연합군의 약점인 전형을 집중 공략한 끝에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 전투를 통해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지배권을 손에 넣었으며, 이는 훗날 마케도니아를 물려 받은 알렉산드로스가 대제국을 세우는데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