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모든 술을 하수구에 버리게 하고,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해 지하로 숨어들게 했던 금주법시대!
그리고 이 금주법으로 꽃피우게 된 칵테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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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20년대 초, 미국의 금주 운동가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노동자 계급인 하층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정폭력을 일삼는 것이 모두 알코올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죠.
급격한 도시화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농민들은 물론 적대국이었던 독일에서 주도하는 맥주 산업이 고사되길 원했던 일반 시민들까지 이 의견에 목소리를 더했고, 금주운동은 곧 알코올 전면 금지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금주법으로 하루아침에 수입원이 끊긴 바 주인장들은 어쩔 수 없이 목숨을 담보로 지하에 숨어들어 술을 팔기 시작하죠.
이렇게 몰래 영업을 하던 불법 주점들은 스피크이지(speakeasy)라고 불렸는데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국의 눈총을 받지 않고 정치적 밀담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갱단의 아지트로도 자주 이용됐죠.
금주법이 시행되고 생계를 이어갈 수단이 없어진 유명 바텐더들은 미국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이 가까운 쿠바로 떠났고, 차차 대서양을 건너 유럽 전역에까지 진출해 아메리칸 스타일의 바를 열었습니다. 아메리칸 스타일 바는 증류주인 스피릿 베이스의 칵테일을 주로 서브했고, 이러한 칵테일이 큰 인기를 얻어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게 된 거죠.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난 바텐더들의 영향으로 미국은 칵테일의 선진국이라 불리게 됩니다.
술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 금주법에 대해 알아보고
미국을 대표하는 칵테일 올드 패션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늘의 ‘치얼스토리’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전해주시길 바라며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의 라이프 스타일이 즐겁고 또 그 맛과 멋이 함께할 때까지
치얼스토리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믹솔로지스트 김봉하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