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작은 동네> 제 23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3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3화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내내 자는 척을 하고 있었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도 한참 동안 침대 위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점심때쯤 강의가 있었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누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겨우 몸을 일으켜 침실 밖으로 나가 보니, 남편은 오늘 아침에도 잊지 않고 스크랩을 한 모양이었다. 식탁 위에는 신문 기사를 오린 조각들과 가위, 풀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었다.

강의는 세 시간짜리였다. 학생들의 주위가 분산되는 걸 느꼈지만, 그럴 때마다 사용했던 내 이론—반작용에 대한—을 적용시킬 기사를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반작용은커녕, 나조차도 자꾸 다른 생각에 빠져 들어가서 강의에 집중할 수도, 학생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줄 수도 없었다.

학생들의 양해를 구하고 두 시간 만에 수업을 끝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남편의 스크랩에서 읽었던 기사가 하나 떠올랐다. ‘얼굴맹’에 대한 기사. 그건 작년 말 송년회에 다녀온 다음 날—남편이 회사에 갔다는 메모를 하나 남겨두었던 날—에 읽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기사를 수업 시간에 사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얼굴맹’에 대한 기사는 웃음을 유발하는 걸까? 아니면 고통을 유발하는 걸까? 언젠가 남편은 내가 주장하는 이론—강의 시간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야기함으로써 주위를 끌어당기는 반작용 이론—이 엉터리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내 이론의 진짜 문제는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들이 웃음을 유발하는지 고통을 유발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는 것. ‘얼굴맹’ 기사에 실린 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 정도가 아주 심해서 타인의 얼굴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은 자신이 누군가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병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기억력이 나쁠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굴맹은 기억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기억력이 아주 좋은 얼굴맹 환자들도 있다. 그들은 평생 가족의 얼굴도, 친구의 얼굴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절대 기억하지 못하고, 떠올리지도 못한다……

때때로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미묘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들은 실수가 두려워서 사람들을 만나는 걸 꺼리고 단체 모임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한다. 분명히 이 이야기가 웃음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100퍼센트의 고통을 유발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이 이야기에는 복합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그건 그저 ‘얼굴맹’이라는 단어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만약 그 기사에서 ‘안면인식장애’라는 표현을 썼다면 나는 다른 식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얼굴맹’이라는 단어는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그들은 타인의 얼굴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너는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줘야 해. 이게 고통을 유발하는 말인지 웃음을 유발하는 말인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3화-1

나는 차 안에 앉아서 시동도 걸지 않은 채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직 학기 초의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 신입생들을 자기 동아리에 끌어 오려는 재학생들이 강의동 앞에 천막을 세워놓은 채 홍보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저런 풍경은 변하지도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도 재학생들은 각자 자기의 동아리에 신입생들을 데려 오려고 경쟁을 했었다.

나는 아무런 동아리에도 들지 않았었다.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는데 어쩐지 어머니가 싫어할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외톨이처럼 대학 시절을 보낸 건 아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대학 시절 친구들은 나를 “잘 웃는 애”라고 말한다고. 어머니는 그 말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갑자기 어머니가 내게 오빠의 죽음에 대해 말했던 때가 떠올랐다. 대체 왜? 어머니는 평생 동안 오빠의 죽음을 두 번 언급했다. 내가 일곱 살 때 밥상 앞에서 한 번, 열일곱 살 때 도서관에서 한 번. 그 순간들을 따로 떠올렸을 때에는 몰랐는데, 그 두 번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니까, 무언가 미묘하게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상에서 어머니는 내 이모와 이모부, 그들의 자식, 그리고 옆집 할머니와 그 집 개, 소나무 숲 별장에 살던 그 여자의 죽음을 언급했지만, 오빠의 죽음을 언급한 적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몇 달 전 눈으로 온 도시가 마비되었던 날 밤, 도심의 식당에서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 동네엔 불이 난 적이 없어, 엄마는 네게 거짓말을 한 거야.”

나는 그날 거짓말을 한다고 아버지를 몰아붙였지만, 따지고 보면 아버지가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가 겨우 여섯 살짜리 어린애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가방을 뒤져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통화 목록을 눌러 보니, 용케도 여전히 아버지의 전화번호가 남아 있었다.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아버지에게 딱 한 번만 전화를 걸겠노라고, 만약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작은 동네와 관련된 모든 일을 잊어버리겠다고. 그런 식으로 나는 이 전화 한 통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나는 아버지가 전화를 받는 걸 원하는지 받지 않는 걸 원하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의 전화벨 소리를 계속 듣고만 있었다.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가방에 집어넣은 후, 나는 주저하지 않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차가 움직임과 동시에 갑자기 심장이 너무 빨리 뛰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런 느낌은 점점 잦아들었고,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된다. ‘예전’이라는 말이 지칭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보다는 훨씬 더 안정된 상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된 삶? 나는 더 이상 밤에 깨어나서 윤이소와 그녀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지 않을 것이고, 괜한 의심으로 남편이 대체 회사에서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의구심을 가지지도 않을 것이었다. 나는 예전처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완전히 순수한 관심을 가지고 남편의 스크랩북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흘려보내 버리렴. 웃어넘겨. 모든 사람이 고통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살 수 있는 거야. 그게 고통의 균질화란다.

도심의 도로에서 신호를 받으려고 기다리며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다가, 나는 무심코 인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 옆 차선에 서 있는 차 안 사람들의 얼굴과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나는 저들의 얼굴 중 몇 명이나 기억하게 될까? 뒤차가 경적을 울렸지만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뒤에 서 있던 차들이 나를 피해 다른 차선으로 움직였고, 운전자 한 명이 차창을 열고 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제야 나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당황했던 걸까? 나는 그때, 경주,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네 시간 정도를 꼬박 달린 후에야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운전하는 내내 전화기는 가방에 넣어둔 채 한 번도 꺼내 보지 않았는데 전화벨이 울린 건 네 번이었다. 운전하는 내내 나는 아버지에게 던질 질문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경주에 온 건 처음이었다. 나는 낮은 건물이 띄엄띄엄 서 있는 도시의 도로를 그저 내키는 대로 따라 달렸는데, 늦은 오후의 도시는 마치 잠자는 것처럼 고요해서 적막감마저 돌았다. 나는 경주란 도시가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자신이 인적이 드문 곳만을 따라 달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경주의 구시가지는 문화재 때문에 고도 제한에 걸려 있어서 높은 건물을 못 올린다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잘 관리된 잔디밭과 저 너머 커다란 봉우리들이 보였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그게 누군가의 무덤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무덤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자, 처음에는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그 다음에는 이왕 경주까지 왔으니까 관광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 끝에 내가 가기로 결정한 곳은 대릉원이었다. 평일 오후인데도 주차장은 차들로 붐볐다. 나는 주차장 구석에 차를 세우고, 그제야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세 통은 남편에게, 한 통은 아버지에게 온 것이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을 하는 동안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정작 차에서 내리니까 온몸이 아파 왔다. 나는 기지개를 몇 번 한 후에, 입장권을 사서 대릉원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숲길을 지나자, 넓은 잔디밭이 나왔고 드문드문 돗자리를 펴고 간단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기념으로 한복을 차려입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그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나들이를 하거나, 오후의 피크닉을 즐기기에 적당한 날씨는 아니었다. 낮에는 전형적인 봄 날씨였지만 해가 질 시간이 다가오면서 바람이 불고 기온도 내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바람이 불어서 돗자리 위에 있는 종이 접시들이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래도 뭐가 좋은지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깔깔거리며 종이 접시들을 주우러 다녔다.

대나무 숲을 지나 좀더 걷자, 아까 본 더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나왔고, 저 멀리 커다란 릉이 보였다. 도로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서 나는 약간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그때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나는 전화벨이 다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버지에게 대릉원에 와 있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궁금한 게 있어요.”

그런 후에는 마치 정말로 관광을 온 사람처럼 휴대전화로 주위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 시간 후쯤에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매표소 앞이라고, 자신이 어디로 가면 되는 건지 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화가 난 것 같다고 느꼈다.

“제가 매표소 쪽으로 나갈게요.”

뜬금없게도 나는 얼굴맹이 아니니까 아버지의 얼굴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7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주차장은 어둑어둑했다. 아까보다는 차가 많이 빠져 있었다. 하긴, 다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니까. 나는 저 멀리 가로등 불빛 아래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 그래, 저게 바로 아버지의 얼굴이구나. 하지만 그건 이상한 생각이었다. 나는 20년 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는 대체 왜 온 거냐?”

내가 다가가자 아버지가 대뜸 물었다. 나는 어쩌면 아버지가 화가 난 게 아니라 지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더 걷기도 힘들다는 듯이 주차장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여기 조금만 앉아 있다가 어디로든 들어가자.”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았다. 어색했다. 아버지와 내가 앉은 벤치 앞에는 커다란 관광버스 두 대와 자가용 한 대 주차되어 있어서 매표소 쪽에서 보면 우리가 전혀 보이지 않을 터였다.

“혹시 윤이소라는 배우 아세요?”

아버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글쎄다. 내가 알아야 하는 사람이냐?”

나도 내가 왜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긴장하고 있는 걸까?

“아니요.”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나를 불러낸 거냐?”

아버지는 주차된 버스의 뒤꽁무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내게 물었다. 아버지는 한 달 전에 봤던 것보다 살이 좀 빠져 있었고 혈색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몰랐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아버지는 한동안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잠자코 있다가 여전히 내 얼굴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되물었다.

“궁금한 게 있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말투는 훨씬 더 부드러워진 것처럼 들렸고, 그 사실 때문에 나는 오히려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왜 그때, 우리가 만났을 때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불이 난 적이 없다고요.”

그때 한 남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는 우리를 한번 흘긋 보았고 벤치 앞에 주차된 자가용 중 한 대에 올라탄 후, 잠시 동안 차 안에 머물렀다. 나는 그가 차를 운전해서 우리 앞에서 떠나 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윽고 그 차가 떠나버리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불이 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 어머니가 거짓말을 했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왜요?”

아버지는 그제야 내 얼굴을 한 번 바라보았다.

“네 엄마는 그런 거짓말이 너를 보호해 줄 거라고 믿은 거겠지. 하지만 난 네 엄마가 네게 그런 거짓말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초봄, 밤의 쌀쌀한 바람이 아버지와 나 사이를 훑고 나뭇가지들을 흔들었다. 나는 아버지와 내 앞에 서 있는 나머지 두 대의 버스가 영원히 빠져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여기에서 나와 아버지를 숨겨주기를 바랐다. 아버지와 내가 노출되지 않도록. 그런 문장이 떠오르자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어디로부터?

“어머니의 거짓말이 어떻게 저를 보호해 주는데요?”

나는 최대한 감정이 담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아버지에게 질문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2000년에, 이혼하고 나서 6년 후에 네 엄마가 내게 연락을 했었다. 그게 우리가 이혼하고 나서 첫번째 만남이었다.”
“제가 열일곱 살 때네요.”
“그래, 니가 열일곱 살 때였겠구나.”

여기까지 말한 아버지는 약간 망설이는 것같이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때 네 엄마가 내게 알려주더구나. 조카가 죽었다고. 그 해에…… 그 애가 자살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누구에게 알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구나……”

자살? 어머니의 조카가 자살을 했다고? 왜? 그걸 왜 아버지에게 말했어야 했지?

“네 엄마가 그런 이야기는 안 하더냐?”
“무슨 이야기요?”
“조카가 죽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이모 이야기를 한 적은 있어요. 이모에게는 아들하고 딸, 이렇게 자식이 둘 있었다고요. 이모 가족들이 다 돌아가셨는데, 그들의 장례식에 한 번도 가보지를 못했다고요.”
“다 죽었다고? 네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조카들이 말이냐?”

나는 아버지가 내게 질문을 던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순순히 대답하기로 했다.

“조카들……은 아니고, 이모의 아들이요. 그러니까 저에겐 이종사촌 오빠겠네요.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말한 게 바로 제 이종사촌 오빠죠?”
“그래, 네 이모의 아들이 자살한 게 맞다.”

아버지는 깍지 낀 두 손으로 턱을 받친 후 허리를 굽혔다. 나는 아버지가 비참해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내 이종사촌의 죽음 때문에 비참함을 느껴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이제까지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질문.

“이모의 딸은 어떻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허리를 편 후 나를 바라보았다.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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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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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