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작은 동네> 제 22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2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2화

“당신, 도대체 왜 그래?”

“여보, 당신들은 윤이소가 힘들 때……”

“제기랄, 윤이소 이야기 좀 그만해. 여보, 당신은 윤이소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대체 왜 이제 와서 이 난리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윤이소 좋아했어. 항상 나는 그 여자가 잘되기를 바랐어.”

나는 남편에게 항변하듯이 말한다. 남편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그의 쌍꺼풀 없는 눈, 약간 둥근 콧방울, 올라간 입꼬리가 너무 자세하게 보여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바람에 나는 입고 있던 카디건 가슴 부분에 무언가를 흘린 자국을 발견했다. 이걸 대체 언제 흘린 걸까? 나는 돌이켜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걸 왜 몰랐을까? 더러운 카디건. 나는 카디건을 벗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졌다.
하지만 내가 카디건을 벗을 수 있을까? 벗어도 되는 걸까?

“당신은 윤이소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아니, 당신은 그 여자 싫어했어. 당신이 뭐랬더라? 아, 맞아, 그 여자가 이 세상의 불공평을 드러내준다고 했었지. 그 여자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좋은 교육을 받고,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난 그런 이야기한 적 없어. 그 여자는 불쌍한 여자야. 알아? 나는 불쌍한 여자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아.”

“기억 안 나?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연말 모임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내게 그렇게 이야기했었잖아.”

남편은 내게 다가왔다.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2화-1

“그 여자가 잘되기를 바랐다고? 당신은 그런 생각할 필요도 없어. 그 여자를 동정하고 싶어?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어?”

나는 남편의 말 때문에 역겨워졌다.

“웃기는 말이지만, 당신이 윤이소를 처음 본 날 내게 한 말이 완전히 정곡을 찔렀다고. 당신 말이 맞다고. 윤이소는 이 세상의 불공평을 보여주는 여자야. 그 여자는 자기가 하기 싫으면 아무런 일도 안 해도 돼. 당신이나 나처럼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가 없다고. 여보, 그 여자가 불쌍해? 그 여자는 불쌍하지 않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공주 대접 받으면서 엄청나게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나는 카디건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걸 지우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 카디건의 재질이 뭐였더라? 세탁소에 맡겨야 할까? 옷이 망가지면 어떡하지?

“만에 하나, 혹시라도 당신이 정말로 그 여자가 고통받고 있을까 봐 걱정을 한 거라면, 걱정 붙들어 매도 돼. 나를 못 믿겠다면 그 여자의 매니저였던 친구한테 연결시켜줄게.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되잖아.”

나는 남편이 비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내 앞에 서서 잠시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온 정신을 카디건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거실로 나가 집 안의 모든 전등 스위치를 내리고, 마지막으로 침실로 들어와 전등 스위치를 내렸다. 그리고 침구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나는 여전히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평정심과 무관심이 그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었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남편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했던 사람들, 남편 때문에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그런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뭐 어쩌겠는가?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내가 상관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그런 문제에 상관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남편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화장실로 가서 카디건을 벗었다. 세면대에 미온수를 받아놓은 후, 카디건의 더러워진 부분을 살짝 물에 적셔서 울 세제로 살살 비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렇게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자국이 지워지지 않자 초조해진 나는 결국 카디건을 물속에 집어넣고 울 세제를 왕창 부은 후 미친 듯이 옷을 비비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면 내 얼굴이 곧바로 거울에 비쳐 보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계속해서 숙이고만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윤이소는 잘 살고 있다. 그녀는 어디선가 여전히 행복하고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

그때, 송년회장에 있는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윤이소 매니저의 아내는 내게 이렇게 질문했었다.

“당신 누구라고요?”

나는 그때 필요 이상으로 당황했었다. 근데, 당신 누구라고요? 소나무 숲 별장의 그녀에 대해 어머니는 그게 그녀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선택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말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이를테면, 그녀의 기사를 읽었으면서도 그녀의 오빠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어머니의 선택이 바로 어머니의 삶이라는 것을 어머니 자신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머니의 딸인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내린 수많은 결정을, 내가 한 그 수많은 선택이 바로 내 자신이라는 걸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누군가가 내게 “그런데, 당신 누구라고요?”라고 물으면 나는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카디건을 세면대에 그대로 남겨놓은 채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나는 침실로 들어가는 대신 남편의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 책상에는 내가 번역하고 있던 『멋진 깔개』가 펼쳐져 있었다.
이걸 누가 읽느냐고? 내가, 내가 읽어. 그것도 몇 번씩이나. 나는 또다시 그걸 읽기 시작했다.

“3형제가 돌아갔을 때, 아버지가 죽어 있었습니다. 곰은 아버지의 시체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곰이 아버지를 죽인 것입니다. 하지만 곰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곰은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곰은 그저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한 것뿐이었습니다. 곰은 사랑과 감사의 의미로 아버지를 꼭 껴안아주었을 뿐이었습니다. 3형제는 그런 속내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해가 졌을 때, 그들은 몰래몰래 곰의 뒤로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돌로 곰의 뒤통수를 쳤습니다. 사실 곰은 3형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가올 때까지 그저 가만히 있었습니다. 곰은 너무 큰 슬픔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곰은 그렇게 아버지 곁에서 숨이 멎었습니다. 3형제는 기뻤습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너무 많은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 곰을 죽인 게 자신들이 겪은 실패를 상쇄해줄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3형제는 자신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해낸 일 때문에 크나큰 만족감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3형제는 무덤을 만들어서 거기에 아버지를 묻고, 곰은 가죽을 벗겨 멋진 깔개를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와 곰이 함께 살던 집에서, 3형제는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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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2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