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길라잡이

철공소와 예술이 만나는 곳, 문래동

다시 쓰는 역사책_제3편 문래동 철강골목의 역사를 뒤로 하고 창작 예술촌으로 거듭난 문래동
다시 쓰는 역사책_제3편 문래동 철강골목의 역사를 뒤로 하고 창작 예술촌으로 거듭난 문래동
바글바글한 문래동

바둑판 모양으로 나 있는 길, 구획화돼 있는 집들은 이 일대가 계획도시라는 것을 증명한다.
일제가 지은 단지형 주택들이 대형 공장이 되고, 예술가들의 공방으로 거듭나기까지
문래동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시 쓰는 역사책_제3편 문래동 철강골목의 역사를 뒤로 하고 창작 예술촌으로 거듭난 문래동-1

별명은 서너 개

다시 쓰는 역사책_제3편 문래동 철강골목의 역사를 뒤로 하고 창작 예술촌으로 거듭난 문래동-2

<문래역 7번 출구 앞>

문래동은 과거부터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렸다. 시간 순서대로 하나씩 살펴보자.

모랫말:
아주 오래전 이 일대는 모랫말이라 불렸다. 안양천과 도림천의 영향으로 모래가 많은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불리게 된 이름 ‘문래’는 과거 별명처럼 불리던 ‘모랫말’에서 음차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 외에도 문익점이 목화를 전래한 곳이라는 뜻이라는 설, 학교와 관공서가 많아지자 글이 온다는 뜻에서 문래(文來)라 불렀다는 설, 방적기계인 물레의 발음을 살렸다는 설 등이 있다.

인천부 금천군 상북면,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 사촌리:
서울 한복판인 문래동이 왜 인천이고 경기도냐고? 현재 문래동 일대는 구한말엔 인천이기도, 경기도이기도 했다. 1895년엔 인천부 금천군 상북면, 1896년엔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 1914년엔 경기도 시흥군 북면 도림리로 계속 명칭이 바뀌다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며 경기도가 아닌 서울로 편제되었고 영등포출장소 관할의 도림정이 되었다.

사옥정, 사옥동:
1930년대 이 근방에는 종연(鐘淵), 동양(東洋) 등 군소 방직공장을 중심으로 경성방직공장을 비롯한 면직물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고 성업을 이뤘다. 때문에 실 사(絲) 집 옥(屋)자를 써 일본인들에 의해 사옥정이라 불렸고, 1946년 사옥동이 되었다가 1952년 문래동으로 개칭되었다.

오백채:
1940년대 방직공장의 노동자들을 위해 지었던 영단주택이 대략 500채 가량 된다는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문래동 4가 일대를 오백채라 불렀으며, 동명의 식당이 지금까지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공장 노동자와 일본인 간부들을 위해 지었던 영단주택들은 이후 서민들의 소중한 집터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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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공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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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2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