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문학 기행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는, 작가 한강

다큐 문학 기행 :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는 작가 한강 다큐 문학 기행 :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는 작가 한강

1980년 오월의 봄 광주. 도청 강당 안은 하얀 천을 덮고 있는 시신들로 가득하고, 한 소년은 양초에 불을 붙여 시신이 썩는 냄새를 지우려 한다. 소년의 이름은 동호,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열여섯 살이다. 아들을 찾으러 온 엄마는 집에 가자며 소년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소년은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내며 대답한다. “여섯 시에 여기 문 닫는대요. 문 닫으면 나도 들어갈라고요.” “해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 <소년이 온다> 중에서 이후 소년의 모습은 외신기자가 찍은 흑백사진에서 발견된다. 도청 안마당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소년. 소년은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소설 <소년이 온다>는 작가 한강이 2014년 발표한 여섯 번째 장편 소설로,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계속된 광주 민주화 항쟁이 그 배경이다. 이 작품은 만해문학상과 이탈리아 문학상인 말라파르테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번역 판권이 20개국에 팔리기도 했다. 작가 한강이 말한 <소년이 온다> 집필 이유는 이러하다. “이 소설을 쓰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한강 인터뷰 한강은 왜 꼭 광주의 이야기를 써야 했을까. 그리고 <소년이 온다>를 완성하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쳤을까.

1980년 오월의 봄 광주. 도청 강당 안은 하얀 천을 덮고 있는 시신들로 가득하고, 한 소년은 양초에 불을 붙여 시신이 썩는 냄새를 지우려 한다. 소년의 이름은 동호,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열여섯 살이다. 아들을 찾으러 온 엄마는 집에 가자며 소년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소년은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내며 대답한다. “여섯 시에 여기 문 닫는대요. 문 닫으면 나도 들어갈라고요.” “해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 <소년이 온다> 중에서 이후 소년의 모습은 외신기자가 찍은 흑백사진에서 발견된다. 도청 안마당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소년. 소년은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소설 <소년이 온다>는 작가 한강이 2014년 발표한 여섯 번째 장편 소설로,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계속된 광주 민주화 항쟁이 그 배경이다. 이 작품은 만해문학상과 이탈리아 문학상인 말라파르테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번역 판권이 20개국에 팔리기도 했다. 작가 한강이 말한 <소년이 온다> 집필 이유는 이러하다. “이 소설을 쓰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한강 인터뷰 한강은 왜 꼭 광주의 이야기를 써야 했을까. 그리고 <소년이 온다>를 완성하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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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다

다큐 문학 기행 :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는 작가 한강-1
젊은 한강 소설가의 첫 작품, ‘여수의 사랑’
1970년, 작가 한강은 광주 변두리 기찻길 옆의 셋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장티푸스에 걸려 약을 먹은 뒤 임신 사실을 알게 돼 고민 끝에 낳은 아이여서, 그녀는 어른들로부터 “하마터면 못 태어날 뻔 했지”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한강의 아버지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잘 알려진 소설가 한승원. 아버지 덕분에 서가에 빼곡한 책들을 골라 읽으며 자란 한강은 열한 살이 되던 겨울,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 <샘터>에서 일하며 1993년 <문학과 사회>에 시로, 그 이듬해에는 <서울신문>에 소설로 등단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강은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내놓았을 때부터 파격적인 찬사를 받았다. 치밀하고 빈틈없는 세부, 긴밀한 서사구성, 풍부한 상징 등 젊은 마이스터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강의 소설은 당시 신세대 소설가답지 않게, 세상을 다 살아버린 자의 좌절과 비애의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결손 가정이나 비참한 죽음을 과거사로 안고 있거나, 발작이나 허무한 복수의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차원 높은 상징성, 뛰어난 작법은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했다.
한강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는 외국에서도 인정을 받아 2016년 5월, 아시아 최초로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 - 영국 일간 가디언

“허술한 데가 한 군데도 눈에 띄지 않아 놀랍다” - 미국 소설가 에이미어맥브라이드
다큐 문학 기행 :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는 작가 한강-2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채식주의자’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는 2007년 발표작으로,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소설 3편을 하나로 연결한 연작 소설집이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어떤 꿈을 꾼 이후로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데,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은 사람들을 동원해 그녀를 말린다. 하지만 강제로 그녀의 입에 고기를 먹이려 하자 손목을 긋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 <채식주의자> 중에서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는 고기만이 아니라 식음을 전폐하고 나뭇가지처럼 말라간다. 그리고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변해가길 희망한다. 이처럼 주인공들이 자멸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한강의 소설은 어둡고 우울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작가 역시 스스로 인간을 껴안는 것이 어렵다고 인터뷰에서 고백한 바 있다.

“제 소설 속에 어떤 내적인 투쟁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인간을 껴안고 싶고,
더 나아가고 싶었지만 잘 안됐어요.”- 한강 인터뷰


왜 인간을 껴안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한강은 몇 번이고 질문을 던지며 내적인 탐색과정을 거친 끝에 ‘광주’라는 이름을 찾아낸다.

다시 5월, 소년이 온다

다큐 문학 기행 :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는 작가 한강-3
광주를 배경으로 한 소년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 ‘소년이 온다’
한강은 가족과 함께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그 사건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어른들 몰래 펴본 사진집에서 으깨어진 여자아이의 얼굴을 발견한다. 작가는 여기서 분노와 증오의 마음이 아니라 가슴 속 묻어둔 오래된 질문을 찾아낸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인간에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

“그 발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나는 몰라. 언제나 같은 사람인지,그때마다 다른 사람인지도 몰라.
수많은 사람들이 희미하게 번지고 서로 스며들어서 가볍디 가벼운 한 몸이 돼서 오는 건지도 몰라.”
- <소년이 온다> 중에서
그리고 1980년의 광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소년과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소년의 죽음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그날, 도청에서 빠져 나왔던 은숙은 분수대의 물줄기 조차 감당 못하며 살아남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소년과 김밥을 나눠먹었던 선주는 심한 성고문을 받은 뒤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소년에게 항복하면 살 수 있다고 말했던 진수는 고문 후유증으로 자살한다. 살아남았지만 인생을 장례식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와 소설 속 인물들은 같은 의문을 가진다. 아우슈비츠에서 학살을 저지른 이도 사람이지만,
지하철 선로에 아이가 떨어지면 목숨을 구하는 것도 사람이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작가는 소설을 완성하고 그 답을 찾았을까.

인간의 존엄을 묻는 글쓰기

다큐 문학 기행 :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는 작가 한강-4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해 언급한 ‘내 여자의 열매’
“나는 괜찮아요.
오래전부터 이렇게 바람과 햇빛과 물만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꿈꿔왔어요.”
- <내 여자의 열매> 중


2000년에 쓴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소설은 <채식주의자>의 씨앗이 된 소설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던 아내가 나무로 변하자 남편은 그녀를 화분에 옮겨 심는다. 여자가 원하는 것은 오직 바람과 햇빛과 물. 여자는 냄새나는 육식을 피하고 세계에서 스스로를 격리하면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애쓴다.

이러한 햇빛의 이미지는 한강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소년이 온다>에서도 소년은 나무 그늘이 해를 가리는 것이 싫어,
길을 걸을 때면 엄마를 힘껏 양지쪽으로 잡아끈다.
“엄마아,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핀 쪽으로.”
- <소년이 온다> 중에서


작품 속 주인공들은 상처를 지녔지만 눈이 부시게 밝은 햇빛 아래 서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서서, 자신이 인간임을 확인하듯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눈 역시 햇빛과 같은 역할을 한다. 눈은 차갑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몸이 얼마나 따뜻하지 알려준다.

“빛을 향하고 있다면 그건 어두운 상태가 아니니까요.
빛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므로, 제 소설은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 한강 인터뷰
다큐 문학 기행 :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는 작가 한강-5

한강은 햇빛과 희디 흰 눈을 통해 우리가 따뜻한 체온이 흐르는 인간임을 일깨우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날의 현장에서 으깨어진 얼굴들을 안은 채로, 눈부신 이야기를 만날 때까지 질문을 던지며 나아간다.

[참고도서] <채식주의자> 한강,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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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2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