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14년 추적으로 누명을 벗다

고전의지혜 조선탐정실록 - 14년 추적으로 누명을 벗다 리더는 통한다 고전의지혜 조선탐정실록 - 14년 추적으로 누명을 벗다 리더는 통한다
 
  • 이동통신망을 이용하여 영상을 보시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네트워크 상황에 따라 재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영상 재생이 안 될 경우 FAQ > 멀티미디어 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도 수안의 현감에게 고소장이 접수되었다.
“오라버니 김애격이 제 남편 이지휼을 죽인 것 같습니다."

조선탐정실록 - 14년 추적으로 누명을 벗다-1

수안현감은 이지휼의 아내, 김선합에게 소장을 올린 연유를 물었다.

“평소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어제 남편이 오라버니가 훔친 물건을 찾아온다며 나갔는데, 아직도 돌아오질 않았으니, 이는 둘이 다투다가 죽은 것이 분명합니다."

수안현감은 김애격을 불러 그가 이지휼을 죽였는지 물었다.

"아닙니다. 그날 다툰 것은 맞지만, 절대 죽이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도 옆에 있었습니다."

조선탐정실록 - 14년 추적으로 누명을 벗다-2

곁에 있던 김애격의 아내, 김봉생 또한 같은 내용의 증언을 했다.

그때, 한 관리가 다급하게 뛰어와 근처 산에서 시체가 발견되었음을 현감에게 보고했다. 현감은 오작사령과 함께 시체가 발견된 곳으로 갔다. 시체를 덮은 거적을 치우자 끔찍한 모습이 드러났다.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얼굴이 짓이겨져 있었다.

조선탐정실록 - 14년 추적으로 누명을 벗다-3

“목에 자국이 남아 있는 걸 보니, 타살인 것으로 보입니다.
허나 얼굴이 심하게 손상되어 누구인지 확인은 불가하옵니다."


이때 함께 시체를 살펴보면 이지휼의 아내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조선탐정실록 - 14년 추적으로 누명을 벗다-4

“아이고 여보! 남편이 맞습니다! 그 날 입었던 옷이 틀림없습니다!
오라버니! 사람을 어찌 이렇게 만들어 놓았소!"


김애격은 바로 관아로 잡혀와 심문을 당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정황은 있으나 증거가 확실하지 않을 경우, 자백할 때까지 형장을 가해 심문했다. 김애격은 가혹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죄를 부인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김애격의 하인들 또한 가혹한 심문 끝에 넷이나 죽고 말았다.

사건 일주일 전, 이지휼과 김선합 부부는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선탐정실록 - 14년 추적으로 누명을 벗다-5

“오라버니의 재산을 뺏으려면 이 방법뿐이오."
"알겠네. 그럼 일을 치른 후 강원도 친척집으로 가 있겠소."


이지휼 부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김애격의 재산을 빼앗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이지휼은 일부러 김애격에게 싸움을 건 다음, 바로 도망쳤다. 이지휼의 아내는 연고가 없는 시체에 남편 옷을 입힌 뒤 알아볼 수 없도록 얼굴을 손상시켰다. 결국 그들의 계획대로 김애격은 누명을 쓴 채 죽었고, 재산은 김애격의 동생이자 이지휼의 아내인 김선합이 물려받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있던 김봉생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어디선가 몸을 숨기고 있을 이지휼을 찾기 위해 남장을 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지휼의 용파(조선시대에 사용한 용의자의 몽타주)를 보여주며 14년 동안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결국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이지휼을 찾아냈다.

조선탐정실록 - 14년 추적으로 누명을 벗다-6

“아니, 어찌 여기까지. 그동안 날 찾아다닌 것이오?"
"남편을 위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소. 어찌 그런 짓을 한 것이오."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었던 이지휼은 관아로 가 죄를 자백했고, 이지휼의 아내도 곧 체포되었다.용의자의 몽타주)를 보여주며 14년 동안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결국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이지휼을 찾아냈다.

조선탐정실록 - 14년 추적으로 누명을 벗다-7

‘죄인 이지휼과 그의 아내 김선합은 김애격을 누명 씌워 죽게 하였다.
그뿐 아니라 연고 없는 시체를 심하게 훼손하였다.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이들을 당장 교수형에 처하거라!’

토막지식

“용의자의 몽타주, 용파”
조선시대에는 살인사건 발생시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목격자를 심리했는데, 만약 용의자가 달아났을 경우에는 '용파'라고 하는 범인의 신상명세서를 만들어 뿌렸다. '용파'에는 용의자의 얼굴을 그린 그림과 이름, 나이, 신체적 특징이 적혀 있었다.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9-05-27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