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죽음까지 불렀던 묏자리 싸움

 
고전의 지혜 : 조선탐정실록 - 죽음까지 불렀던 묏자리 싸움 고전의 지혜 : 조선탐정실록 - 죽음까지 불렀던 묏자리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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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원도 회양 군수에게 한 장의 소장이 전달됐다.
'저희 남편 김갑산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고전의 지혜 : 조선탐정실록 - 죽음까지 불렀던 묏자리 싸움-1

군수는 오작사령과 함께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응용 법물(應用法物, 사망 원인 조사에 사용되는 검시용 재료)을 시용해 시신을 닦았다.

"두 다리에 주리를 튼 흔적이 있고, 적자색인 걸 보니 구타나 포박을 당해 그 충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검시가 끝나자 군수는 김갑산의 아내를 불러 연유를 물었다.

"남편이 죽은 것은 묏자리 때문입니다."

고전의 지혜 : 조선탐정실록 - 죽음까지 불렀던 묏자리 싸움-2

보름 전, 광산김씨 일가 수십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감히 우리 조상님 묘에 투장을 하다니! 이는 우리 가문을 능멸한 것이오!"

이들이 모인 곳은 광산김씨 일가의 묘가 밀집되어 있는 장양면의 한 선산. 무덤 중 하나가 관의 회벽이 드러날 정도로 파헤쳐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조상의 시신을 좋은 곳에 안치하는 것을 자손의 도리이자 가문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사로 여겼다. 이에 따라 명당에 조상의 무덤을 쓰려고 남의 묏자리에 투장하는 일까지 벌어지곤 했다.

"한치리에 사는 김갑산이 김문호를 도와 그의 아비를 투장했다는 소문이 파다하오. 이들을 잡아와 확인해 보아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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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 광산김씨 사람들은 김갑산과 김문호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김문호는 이미 소문을 듣고 달아났지만, 김갑산은 이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렇게 광산김씨 일가에 잡혀갔던 남편은 이틀 후 초주검이 되어 돌아왔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여인의 증언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여긴 군수는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문호를 수소문했고, 도망 중에 김갑산의 소식을 들은 김문호는 두려움에 떨며 군수를 찾아왔다.

남의 묘에 투장하려 한 것이 사실인가? 그것이 중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그건 사실이옵니다. 허나 이 모든 것은 ‘유씨’라고 불리는 점쟁이 때문입니다. 부친상을 치르고 있을 때 찾아와서는 아버지의 묏자리 기운이 약하다며, 광산김씨 일가의 묘 중 후손이 끊긴 무덤에 투장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사람인 김갑산과 함께 몰래 가서 묘를 파다가 그만 관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그만 두고 도망쳐 왔는데 이렇게 일이 커질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유씨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고, 김갑산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기에 그녀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었다. 이 때, 광산김씨의 수장인 김병렬이 군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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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내 불찰입니다. 내가 사람들을 시켜 투장한 이들을 잡아 오라고 했으니 책임을 지겠습니다."

살인 사건으로 인해 가문의 명예에 흠이 난다고 생각한 김병렬은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일을 마무리 지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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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남편은 죽었고, 투장을 한 저희 집안의 잘못도 있으니 소장을 취하하겠습니다. "

당시 지역에서 광산김씨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 일로 광산김씨 일가가 처벌을 받을 경우, 김갑산과 김문호의 집안 또한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때문에 가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장을 취하했던 것이다.

토막지식

투장(偸葬)과 산송(山訟)
조선에서는 조상의 시신을 좋은 곳에 안치해 관리하는 일은 가문의 권위와 위상,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문제였기에 남의 땅에 몰래 시신을 묻는 '투장(偸葬)'까지 등장했다. 이에 따라 묏자리를 둘러싼 법정분쟁이 빈번했는데, 이를 산송(山訟)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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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4-25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