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작은 동네> 제 19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19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19화

나중에 어머니가 섬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수영을 잘하겠네요?”

어머니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게 바로 그때였다.

“난 잘 못했고, 동생은 아주 잘했어. 걔는 정말 수영을 잘했어. 어릴 적엔 동네에 있는 바닷가에서 노는 게 그냥 하루 일과였으니까 말이야.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치 나는 엄마처럼 그 애를 대했던 것 같아. 그 애도 나를 엄청 의지했지. 겨우 네 살 차이였지만 그땐 그게 엄청 큰 차이라고 생각했단다. 물론 때로는 그 애가 버거울 때도 있었지. 나는 매일 부엌에서 살았어. 그때는 전기밥솥이라는 게 없었거든.
부뚜막에 앉아서 불을 피우고 밥을 짓고. 그게 내 일상이었어. 그 애는 내 옆에 앉아 종알종알 떠들곤 했어. 우리가 예전에 광주에 살았을 때, 식당 방 쪽문 앞에 앉아 떠들던 너처럼 말이야. 우린 모든 걸 함께했어. 심지어는 화장실도 함께 갔단다. 섬을 떠나기 전에 나는 차마 그 애에게 그런 말을 하지 못했어. 지금도 가끔 생각한단다. 그때 그 애에게 사실대로 내 계획을 털어놓았다면 그 애는 날 따라오겠다고 했을까?
아니면 혼자 거기에 남겠다고 했을까? 어쩌면 나는 그 애가 나를 따라나선다고 할까 봐 말을 안 했던 건지도 몰라.
우리가 다 떠나버린다면 아버지는 혼자 거기에 머물러야 하는 거니까. 내가 마음 편하게 떠나기 위해 그 애를 거기에 남겨둔 건지도 모르지.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면…… 뭐랄까…… 아득한 기분이 들어. 슬픈 거겠지. 물론 후회를 한다는 건 아니야. 그러고 싶지 않아.
다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거야…… 다른 선택…… 섬을 떠난 지 1년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용기를 내서 그 애에게 편지를 썼단다.
아버지는 관공서에서 보내는 우편물도 당신 스스로 챙기지 않아서 아버지가 편지를 볼 일은 없었지만, 가짜 이름과 가짜 주소를 편지 봉투에 적었어. 편지에 별 내용을 쓰지는 않았어. 우리 사이에 특별한 일은 발생한 적도 없다는 듯이. 하지만 답장이 안 올까 봐 전전긍긍했단다.
답장이 오지 않는다는 건, 그 애가 나를 미워한다는 뜻이잖니. 그래서 답장이 왔을 땐, 마치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기뻤어.
답장에도 별 내용은 없었어. 마치 어제까지 안부를 주고받은 사람들처럼 말이야. 우린 그렇게 가끔 편지를 주고받았단다.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19화-1

타지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아, 정말로 힘들었어. 그래도 그 애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용기를 내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취직도 할 수 있었어.
때때로 그 애는 가끔 내게 돈을 보내주기도 했어. 솔직히 그렇게 큰돈은 아니었어. ‘언니, 이 돈으로 꼭 밥을 사 먹어.’
동생은 편지에 그렇게 썼어. 난 처음엔 그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었어.

통장에 넣어둔 건 아니었고, 봉투에 넣어서 책상 서랍 안에 보관해두었지. 그땐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는 게 약간 사치스럽게 느껴지던 시절이기도 했고, 돈을 모아서 동생에게 돌려줄 생각이었어. 그런데 어느 날 그 애가 보낸 편지에 그런 질문이 있었어. ‘내가 보낸 돈으로 뭘 사 먹었어?’

나는 그냥 모아두었다고 솔직히 말할까 하다가 김치찌개를 사 먹었다고 거짓말을 써서 보냈어. 다음에 받은 동생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 ‘내가 언니 밥 한 끼 먹였네.’ 그다음 날 점심때 나는 봉투에서 돈을 꺼내 진짜로 김치찌개를 사 먹었어. 숟가락에 가득 담긴 밥을 씹고, 찌개를 한술 뜰 때마다,
얘, 어찌나 눈물이 날 것 같던지.

그래도 그렇게 밥을 먹고 나니까 하루 종일 힘이 나더구나.
뭐랄까, 진짜로 힘이 났어. 그 후로, 나는 힘든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그 감정에 1부터 10까지 숫자를 매겼단다. 그리고 7이상이 된다고 판단되면 봉투에서 돈을 꺼내 밥을 사 먹었어.
그러면 정말로 힘이 났어. 육지에서 버틸 힘이 생겼어.
사람들의 무시나 망발을 그냥 넘길 수 있는 배포가 생겼단다.

너네 외할아버지는 그 애가 결혼을 하던 해에 돌아가셨는데 한 번도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대. 정말로 대단한 분이시지 않니? 그런 이상한 고집을 나도 물려받은 것 같아. 내 동생도 내게 그렇게 말하곤 했거든. 언니랑 아버지는 똑같아. 하지만 난 그렇게까지 독한 사람은 아니야.
정말. 니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아팠단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출근도 못 하고 집에서 울기만 했었어.
그때 그 애는 겨우 스물한 살이었지. 네 외할아버지는 당신이 죽기 전에 그 애를 급하게 결혼시켰어. 그게 당신이 부모로서 해야 하는 마지막 지상과제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 애의 남편도 어부였어. 그 애는 자신의 결혼사진을 보내줬어. 대단한 세리머니는 아니었어. 섬에 있는 작은 회관에서 약식으로 이루어진 결혼식이었어. 그래도 그 애는 참 이뻤단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는 나는 뭐랄까, 좀 슬펐어, 잘 모르겠다. 내가 바란 건, 그 애가 좀더 세상 물정을 알고 난 후에 어떤 선택들을 하는 것뿐이었어. 그 애가 결혼을 한 후에도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았어. 여전히 봉투에는 가짜 이름과 가짜 주소를 적었어.
그 애 남편은 내 존재를 몰랐을 거야. 너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내 존재를 숨길 필요가 없었지만, 그땐 이미 그냥 그게 우리들 사이의 장난 같은 게 되어버린 거야. 우리 둘만의 비밀. 우리를 특별한 자매로 만들어주는 그런 거 말이야.

그 애는 아들을 낳았을 때도 내게 연락을 해서 조카가 생겼다는 걸 알려줬어. 그 애는 매해 조카 자신을 보내줬고, 나는 매해 조카를 위해 선물을 보내줬어. 하지만 조카를 만나본 적은 없어. 이상하지 않니? 생각해보렴. 나는 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섬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
섬에 가서 며칠 머물 수 있었지. 아이 때문에 동생은 육지로 나올 수가 없었을 거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동생은 한 번도 내게 섬으로 놀러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한 번도 그 섬으로 돌아가지 않았단다. 그렇게 우리는, 그 애가 결혼하고 4년 정도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어.
몇 년 후에 동생은 둘째를 임신했다고 연락을 해왔어…… 그리고 딸을 낳았단다…… 그게 마지막이야. 그 후로 나는 그 애를 만난 적이 없단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에게서 멀어져갔단다.”

수영장에 다녀온 날이면 나는 서둘러 저녁을 많이 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가끔씩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다.
몸이 공기를 가르며 떨어지다가 몸이 지상에 닫기 일보 직전에 언제나 나는 내가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그래도 나는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고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그런 꿈이 무섭거나 두렵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짜릿하거나 즐겁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키가 크려고 그런 꿈을 꾼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숲속의 그녀가 지적했듯이—또래 아이들보다 작았다. 내가 훌쩍 자란 건, 그 동네를 떠난 후였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나는 1년 동안 10센티가 자랐다. 아버지가 키에 대한 언급을 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떠올렸다. 개학을 한 후로 나는 그녀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가끔 내가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어머니는 며칠 전에 그녀의 집에 다녀왔다고, 그녀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말해주었다.

“엄마랑 그 아줌마는 친구예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대답했다.

“아마도 그런 것 같구나.”

어느 날 밤, 나는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내가 마루로 나갔을 때,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문 밖에 나가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맨발로 대문 밖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희미한 가로등이 하나 서 있는 어둡고 좁은 골목에는 술에 취한 채, 하얀색 세단 안에 앉아서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리는 그녀가 있었다. 동네 개들이 짖고 있었고, 조금만 더 있으면 이웃집에서 사람들이 나와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화를 낼 것 같았다.
나는 열린 차창 문 사이로 그녀를 볼 수 있었는데, 구정 날처럼 아름답게 꾸민 그녀는 눈물 때문에 화장이 번져 얼굴은 지저분해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제발 그만해요. 제발요.”

어머니는 차 문을 열려고 애썼지만, 차 문은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열린 차창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그녀에게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영문을 몰라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 있기만 했다. 잠시 후 경적을 누르는 걸 멈춘 그녀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마치 아이처럼. 울면서 그녀는 말했다. 자신은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고. 체념한 듯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아버지는 뒤에 서 있던 나를 발견했고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

나는 순순히 그렇게 했다. 그녀가 술에 취해 흐느끼는 걸 이미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모두 그녀의 집 안, 모든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녀가 울음을 터트릴 때마다 어머니는 그녀를 위로했는데, 그건 마치 연극처럼,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실행해야 하는 온당한 일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 좁은 길, 어둠 속은 그녀가 있어야 하는 장소가 아니었고, 거기서 우는 건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들 잘못된 장소와 시간대에 떨어져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아버지에게는 잘못된 장소나 시간을 운운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날 밤이 되기 전까지 아버지는 그녀가 누구인지도, 그녀가 아버지 자신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으로 들어간 나는 침대 위에 앉아서, 절대로 잠들지 않겠다고, 부모님이 집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다음에 내가 다시 잠에서 깬 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소리 때문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내가 잠에서 깰까 봐 내내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겠지만, 결국 감정이 극에 달한 것 같았다.

“저런 여자랑 엮이다니 진짜 제정신이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당신, 동네 사람들하고는 대화조차 나누려고 하지 않았잖아.”

“내가 과민하다고 말했던 건 당신이야. 이제 와서 왜 그러는 건데?”

나는 소리가 안 나도록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부모님 방으로 다가가 문에 귀를 대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지 궁금했다. 그녀가 술에 취해서 분별력을 잃었기 때문에?
화장이 지워진 채 울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면 그녀가 너무나 멋진 하얀색 자가용을 몰았기 때문에?

“아빠는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야.”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어머니는 내게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내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그녀의 집에 데리러 온 날 밤에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그때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었다.

“뭐가 걱정이 되는데요?”

내가 묻자, 어머니는 갑자기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나는 어머니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화를 낸 게,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내게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그 후로도 어머니가 그녀를 찾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르긴 몰라도 어머니는 일주일에 두어 번은 그녀를 만나러 갔을 텐데, 그런 사실로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물어보면 어머니는 솔직하게 그녀의 집에 갔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보, 나는 그저 친구를 도와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일 때문에 종종 다투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그 싸움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생각—내가 애초에 가출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리라는—때문에 혼자 방 안에 앉아 괴로운 마음을 삼키곤 했다.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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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13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