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작은 동네> 제 18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16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16화

어느 날 밤에, 남편과 잠들기 위해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을 때, 나는 남편에게 내가 번역하고 있는 동화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여보, 나 요즘 일본 작가가 쓴 동화책 번역하고 있거든.”
“그래?”
“응.”
“그걸 누가 읽어?”

글쎄, 그런 걸 누가 읽을까? 우선은 내가 읽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야. 들어볼래?”
“그래……”

그는 벌써 흥미를 잃었고, 졸리다는 듯이 대답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제목은 『멋진 깔개』야. 동화에는 아버지와 아들 3형제가 나와. 어머니는 없어. 그냥 처음부터 없어. 아마 죽었거나 그렇겠지? 그들은 산골 마을에 외따로 살아. 왜 그런지는 몰라. 아들 3형제는 아직 어려. 열 살, 여덟 살, 여섯 살. 아버지는 이 3형제를 정성을 다해 키운단 말이야.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이 애들은 청소년이 돼. 청소년이 된 아이들은 산골 마을을 지겨워해. 떠나고 싶어 하지.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지만, 아들 셋은 어느 날 소리 소문도 없이 아버지를 떠나버려. 아버지는 슬픔에 빠져서 하루하루 쓸쓸하게 살아. 아들들을 기다리면서.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집 마당에서 아기 곰 한 마리가 잠을 자고 있는 거야. 정말 작은 곰이야. 마치 작고 귀여운 강아지처럼 말이야. 새근새근 잠들어 있어. 숨을 쉴 때마다 가슴 부분이 오르락내리락해. 길을 잃은 아기 곰일 거라고 아버지는 생각했어. 아버지는 아기 곰을 키우기 시작해. 곰이 마치 사람인 것처럼. 잠도 같이 자고, 밥도 같이 먹고, 사랑을 쏟아. 둘은 대화는 통하지 않지만, 눈빛만 봐도 서로서로의 뜻을 알아채는 그런 관계가 됐어. 그런 식으로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몇 번의 계절이 지나. 곰은 몸집이 점점 커지고, 아버지는 아들들을 완전히 잊어버렸어. 이제는 엄청나게 몸집이 커진 곰과 행복하게 살아갈 뿐이었지. 아버지를 떠났던 아들 3형제는 도시의 쓴맛을 잔뜩 봤어. 돈을 사기당하고, 범죄자로 몰리고, 무전취식을 해야 했지. 그들은 자신들이 패배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살 방도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진 줄 알아?”

나는 남편이 내 말에 대답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질문을 했다. 그는 벌써 잠들어서 코를 골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조금이라도 밝으면 잠들지 못하기 때문에 밤마다 집의 모든 창에는 암막 커튼을 치고,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가끔 이런 완벽한 어둠이 두렵다. 이런 두려움이 온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온 후 나는 가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옛 기억의 침입을 받았다. 때때로는-임신한 친구를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어떤 기억들이 튀어나올까 봐 내 몸 어딘가를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어떤 기억 속으로 영원히 빠져들어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린 것 중 하나는 숄이었다.

숄. 내가 그녀의 집에 처음 갔을 때, 그녀가 스스로 덮고 있던 숄, 어머니와 내가 그녀의 집에 초대받았던 날 어머니가 그녀에게 덮어주었던, 바로 그 숄 말이다. 그 후로 그녀는 숄을 두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숄을 두른 그녀를 떠올렸다.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은 채로, 낡았지만 포근한 숄을 두르고 있는 모습을. 마치 그게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어쩌면 그녀가 영원히 그 숄을 벗어던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 숄을 기억했을까?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복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말하는 건 아무래도 부당한 것 같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 어느 것도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면, 그건 어머니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그건 어머니가 평생 동안 견지해온 삶의 태도 중 하나였다. 어쩌면 말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어머니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었던 걸까? 입 밖에만 내지 않으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만들 수 있으리라는 믿음 같은 것. 나는 질문했어야 하는 것을 질문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 당시, 그러니까 어머니가 병실에 있었던 당시에는 내가 어떤 종류의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게 그냥 나의 삶이었고, 어머니의 삶이었다.

어머니는 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이를테면 이런 것, 열일곱 살 여름방학 때 어머니는 죽은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냈었다. 그때, 어머니와 나는 동네에서 가까운 구립 도서관 자료 열람실 안에서 사람들이 책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읽을 책을 고르고 있었다.

“네 오빠가 죽었어.”

어머니는 서가에 꽂힌 책 제목에 시선을 둔 채, 마치 그 일이 엊그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속삭이듯이 말했다. 문득 열람실 구석에 커다란 배낭을 멘 남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저 남자는 저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서가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엄마 왜 이제 와서 오빠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반복하시는 거예요?

왜 나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나도 질문을 한 적이 있긴 하다.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질문들. 어머니와 내 인생에 어떤 위협도 되지 않을 만한 질문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언젠가 나는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후회한 적이 없느냐고. 어머니가 ‘진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가족들을 등지고 고향을 떠나왔다는 사실을 들은 후에 말이다.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대답했다.

“나는 지금 네가 행복해서 무척 좋아.”

나는 고개를 젓고 다시 한번 더 똑같은 질문을 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고 후회할 만한 일을 하나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했다면, 하물며 그게 내 어머니라면, 내가 그 삶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마치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는 말투로, 딱 한 번 그런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여동생이 죽었을 때, 여동생의 아들이 죽었을 때, 그리고 제부가 죽었을 때 나는 모두 알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들의 장례식 그 어디에도 난 가지 않았어. 너를 데리고 거기에 가보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단다.”

어머니는 내가 그들의 죽음을 슬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전 그분들 얼굴도 모르는 걸요.”

어머니는 내가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지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변명하듯이 덧붙였다.
“사실 그 일을 그렇게까지 후회하는 것도 아니란다. 그냥 억지로 생각하니까 그런 게 떠올랐을 뿐이야.”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눈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나는 내가 그런 식—엄마, 전 그분들 얼굴도 모르는 걸요—으로 대답한 걸 후회했다.

4학년이 되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우선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었다. 친구들은 도시락 통을 들고 다니면서 상급생이 된 기분을 만끽했지만, 나는 여전히 어머니와 함께 등하교를 해야 했으므로 그런 기분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즈음부터 나는 공부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내가 좋아한 과목은 산수였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이과 계열하고는 점점 멀어졌다. 어머니는 한 번도 내 학업에 이렇다 저렇다 할 참견은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병상에 있을 때,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긴 하다.

“나는 네가 산수를 너무 좋아해서 수학자나 뭐 그런 게 될 줄 알았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쩌면 약간 배신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내가 일문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언어랑 문학을 다룬다는 건 멋진 일이야.”

그런 식으로 내가 모르는 어머니의 ‘진짜’ 마음이 얼마나 더 있는 걸까? 내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어머니는 두말하지 않고 나를 위해 유학비를 보태주었다.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지만, 그건 순전히 나의 문제였지 어머니의 문제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양육비를 받고 있었지만 그 돈은 여자 두 명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어서 아침에는 유치원 아이들을 등교 차에 태우는 일을 했고, 오후에는 마트 캐셔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그 일이 힘들다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일문학 박사가 되었을 때도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하지만 그때에도 어머니는 ‘진짜’ 마음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산수 말고, 내가 열한 살 때 흥미를 붙인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수영이었다. 그해 4월에 나는 우리 반 친구들 중 몇 명이 시내에 있는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영장에 다녀온 다음 날이면, 그 애들은 약간 으스대듯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 한 명은 반 아이들 중 키가 가장 큰 여자애였다. 그때 그 애는 이미 이차성징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 애의 귀에는 금 재질의 작은 리본 모양 귀고리가 달려 있었다. 짧은 드롭식이어서 그 애가 말을 하거나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작은 리본이 쉴 새 없이 흔들거렸다. 나는 가끔 그 귀고리를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18화-1

나는 여름에 부모님과 함께 해수욕장에 간 경험이 몇 번 있긴 했지만 실내 수영장에 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특히나 수영을 배운다는 개념이 무척 신기했다. 어머니에게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을 때, 의외로 어머니는 단번에 허락했다.

“수영장에 어떻게 갈지 방법을 궁리해봐야겠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시내에 사는 친구들은 수영장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우리 동네까지 셔틀버스가 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결국 일주일에 두 번, 학교가 끝나면 나를 데리고 수영장으로 가기로 했다. 내가 수영을 배우는 동안 어머니는 유리벽으로 된 대기실에서 강습받는 걸 보고 있다가 수영 강습이 끝나면 나를 데리고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거기에서 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이런 고생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수영을 잘 못했다. 수영을 배웠던 두 달여 동안 나는 발차기도 제대로 못 했고, 단 한 번도 킥판 없이 스스로 물에 떠본 적도 없었다. 그래도 수영장에 가는 걸 나는 좋아했다. 해수욕장에서는 절대 착용하지 않을 수경과 수모를 쓸 때에는 내가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고, 물속에 들어가서 완전히 숨을 멈추고 있다가 수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

그 순간, 수면 아래에서 차단되었던 세상의 모든 소음이 내 귀로 다시 들리는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 깊이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강습을 받는 도중, 가끔 어머니를 바라보기도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는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지만, 때때로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어서 나를 발견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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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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