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작은 동네> 제 20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0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0화

어느 날, 평소처럼 수영 강습이 끝난 후 나는 물속에 일렬로 서서 앞뒤 친구들의 어깨를 안마해주었고,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자 물 밖으로 나와 킥판을 정리하고 샤워실로 향했다. 내가 옷을 갈아입을 동안 어머니는 내 수영복을 탈수기에 돌려주었다. 6월, 여름의 길목을 맞이한 저녁의 해는 우리가 버스를 타고 동네로 돌아갈 때까지 여전히 희미한 빛을 간직하고 있었고, 버스에서 내리자 따스하고도 상쾌한 공기의 온도가 여전히 젖은 내 머리카락에 와 닿는 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와 나는 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경찰이라고 소개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지만 무슨 일이냐고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놀랍도록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내려다보았고 어머니는 대문을 열어주며 내게 말했다.

“방에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밥 먹을 준비해.”

나는 불길한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고, 문 뒤에 서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들은 어머니에게 그녀의 자살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머니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어머니는 경찰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거의 아무런 감정도 표현하지 않았고, 그저 네, 아니요 정도의 짧은 대답만 반복했다.

나는 어머니가 나흘 전에 그녀의 집에 다녀온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녀가 죽은 건 이틀 전이라고 했다. 서울에 사는 그녀의 지인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틀 동안 통화가 되지 않아서 경찰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찾아가보니 그녀는 이미 음독자살을 한 후였고, 유서는 따로 없었다고도 했다. 물론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자세한 정황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인 내가 20대 후반의 일이다. 놀랍게도 나는 이 시절의 일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다가 윤이소가 나오지 않는 「또 다른 여자」의 어떤 회차를 보다가 갑자기 떠올렸다. 일본에서 유학을 중단하고 돌아와 국내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도심에 있는 대형 카페에 혼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다른 기사들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링크를 타고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가 나는 어떤 기사 앞에서 멈췄다.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20화-1

기사는 1년 전에 쓰인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게 그녀의 이야기인지 알지 못했다. 1980년대 말에 스무 살의 나이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여자 가수가 갑자기 티브이에서 사라졌는데, 알고 보니 유력 정치인의 내연녀가 되어 두 번이나 낙태를 해야 했고, 경기도 인근의 별장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지내다가 자살했다는 기사였다.

그 정치인은 그녀의 장례식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고, 가족들에게 애도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와의 관계를 부인했다. 그 사실을 폭로한 건 그녀의 동생이었다. 그녀의 동생은 그 정치인이 최근에 다시 정계로 복귀해서 5선 국회위원이 되었는데, 그가 얼마나 추악한 인간인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 얼굴 볼 때마다 아직도 누나의 죽음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이 더 이상 정치판에 나오지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진 속, 중년 남성은
“사라져버린 한 여자의 삶은 누가 보상합니까?”
라고 적힌 작은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 있었다.

내가 찾은 다른 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시절 제 동생과 친밀하게 지내셨던 분들을 찾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이 기사는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 같았다.

잘 모르겠다. 나는 그 기사가 나왔을 때는 일본에 있었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모든 게 지긋지긋하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그 남자를 인터뷰한 신문사 중에 흔히 말하는 메이저 신문사는 없었다.

기사에는 댓글이 다섯 개 정도 달려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정치인이 이제라도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삶은 그녀의 선택이지 다른 누군가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저런 사실을 폭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비아냥거리는 유의 댓글도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실린 기사 사진도 있었다. 어깨 부분의 러플이 강조된 검정색 블라우스와 빨간색 체크무늬가 들어간 청바지를 입고 한 손에 마이크를 든 그녀는 활짝 웃으며 무대 위에 서 있었다. 내가 어릴 적 보았던 그녀에게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분위기였다. 나는 그때 어머니에게 이 기사를 알려주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분명히 어머니는 그 기사가 나왔을 시점에 이미 읽었을 터였다.

지금에 와서 그날, 그러니까 그 커다란 카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그녀의 기사를 읽던 날을 떠올리니까,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날 나는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 커피 기계에서 스팀이 빠져나오는 소리들 사이에 앉아서 그 기사를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 거기에 있던—나와는 완전히 상관이 없고, 그녀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사람들 중 그녀의 기사를 읽거나 혹은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들은 몇 명이나 있었을까? 과연 있긴 했을까? 병상에 있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그 기사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녀의 오빠가 어머니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냐고. 하지만 나는 그런 걸 묻지는 못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녀가 그녀 자신의 선택을 한 거라고 말했다. 그 선택에 대한 판단을 다른 사람들이 할 수는 없는 거라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바로 그녀의 선택이었고, 그녀의 삶이었어.”

그녀가 자살한 당시, 부모님과 경찰,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드문드문 엿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이를테면, 그녀가 죽고 나서 이틀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옆집 할머니가 사망했을 때가 떠올랐다. 나는 무신론자 선생님에게 따지듯이 묻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왜 어떤 사람은 죽고 나서 방치되어야 하나요?”

난 최근까지도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죽고 나서 오랫동안 방치되는 그런 상상 말이다. 그런 장면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고 나면 나는 두려워지곤 한다. 이런 두려움에 대해 무신론자 선생님은 뭐라고 대답해줄까? 죽고 나면 어차피 상관이 없어진다고? 방치되든 그렇지 않든, 자연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거라고? 그런 것에 집착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그 당시 나는 그녀에게 함께 사는 가족이 없었다는 사실, 그래서 그 집 안에 그녀의 죽음 때문에 고통받을 사람—그러니까, 개를 키워야 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생각은 나를 훨씬 더 슬프게 했다.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건, 내 책가방에 대한 것이다. 그녀가 죽은 후, 내 책가방이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그 소나무 숲의 별장에 찾아간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어머니와 그녀가 우정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그 동네에 아버지와 나밖에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몰랐고, 그 별장에 누군가가 산다는 생각조차도 못 했다. 경찰이 그 집에서 내 책가방을 발견했기 때문에, 책가방 안 필통에 붙어 있던 내 학교와 학년,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에 우리 집으로 찾아왔고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었다.

경찰의 방문은 일반적인 것이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그녀가 가깝게 지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경찰이 집에 왔었다는 사실, 어머니에게 그녀의 죽음에 대해 물었다는 사실 자체에 굉장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그 모든 말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장만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린 실패한 거야.”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어머니의 친구가 자살했고, 경찰이 어머니를 찾아온 게 아버지에게 그렇게까지 절망할 만한 일이었을까? 그게 결혼 생활의 실패를 운운할 만한 일이었을까?

그 후에, 그녀가 자살하고 경찰이 찾아온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는 건 그 당시 동네를 떠돌던 미묘한 분위기였다. 화려하게 지어진 별장에 살던 어린 여자가 자살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깊은 동정과 흥미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와 유일하게 교류했던 사람이 바로 우리 어머니라는 사실도. 곧이어, 어느 날 새벽에 하얀색 세단을 몰고 그녀가 우리 집 앞에서 경적을 울렸던 사실을 기억해낸 사람들도 생겨났다. 소문은 점점 불어나서 어머니가 그녀와 함께 밤에 자동차를 타고 이리저리로 놀러 다녔다는 식으로 와전이 되었다. 아버지와 그녀가 어떤 관계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 가족은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열한 살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걸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같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때,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같은 것. 그들은 우리 가족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그녀의 죽음 뒤에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그리고 어쩌면 그러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장례식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 어머니가 그녀의 장례식에 갔었을까? 그런 건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어머니의 어떤 부분이 죽었다고, 혹은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어떤 생생한 부분이 사라졌다고 느꼈다. 아니다,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그 당시의 내가 그렇게까지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동네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바라보는 그런 미묘한 시선을 제외하면 우리 가족이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었다. 다만,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가끔 나는 닫힌 교문 앞에서 하염없이 어머니를 기다려야 했다. 수영 강습을 가는 날에도 어머니는 내 수영 가방을 챙겨오지 않았고, 수영장에 나를 데려다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주지 않았다.

어느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아버지가 집에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버지는 산책을 나간 걸까? 가끔 그럴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가끔 일요일 아침 산책을 나갔고, 나를 데리고 갈 때도 있었다. 나는 식당 방으로 가서 부엌에 있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어디 갔어요?”

어머니에게서는 얼른 씻고 밥 먹을 준비를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 밥상 위에는 밥공기가 두 개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내 앞으로 숟가락을 놓아주며 말했다.

“이제부터 밥은 우리 둘만 먹게 될 거야.”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숟가락을 든 채로 어머니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우리 가족은 너와 나 둘뿐이라는 거야.”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그랬었다. 그때가 바로 “이 하늘 아래 혈육이라고는 너와 나 둘밖에 없는 거야”라는 어머니의 말버릇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울었던가? 울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달래주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나는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악을 쓰고 울었다. 어머니는 결국 내게 이렇게 말해야만 했다.

“울지 마, 울어도 소용없어.”

한 달 후쯤에 우리는 그 동네를 떠났다. 그 동네를 떠나기 전까지 나는 식당 방에서 어머니가 차린 밥상을 보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뭐였을까? 슬픔? 상실감? 무력감? 불길함? 이사를 할 때 어머니와 나는 많은 걸 버렸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밥상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버리려고 내놓은 밥상을 보고 약간 안도감을 느꼈다.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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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5-13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