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류는 몇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언어다양성보존활용센터에 따르면 세계 74억 명 인구가 6,909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는 무엇일까? 대부분 영어를 떠올리겠지만, 모국어를 기준으로 할 때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는 바로 중국어다. 무려 12억 1,300만 명이 중국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2등은 스페인어로 3억 2,900만 명, 영어는 3억 2,800만 명 정도로 3등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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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국제언어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 영어
하지만 영어는 세계 각지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국제언어다. 약 4억 명이 영어를 제 2언어로 사용하고,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무려 7억 명에 달한다. 이를 다 합치면, 세계에서 14억 명이 넘는 사람이 영어를 쓰는 있는 셈이다. 게다가 북대서양조약기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의 국제기구에서 첫 번째 공식 언어가 영어일 정도로 영어는 국제언어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각 언어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한 결과 중국어는 647조인데 반해, 영어는 그 10배에 가까운 6,171조로 평가되었다. 그렇다면 영어가 이렇게 전 세계를 지배하는 국제언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영어가 국제언어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무기와 해상력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고 교역을 통해 그것을 유지했다. 게다가 17세기 영국 청교도들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간 영어는 전화, 라디오 등의 통신기술과 영화와 텔레비전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사라진 수많은 언어들처럼 영어 역시 여러 번의 위기를 겪었다. 영어는 본래 유럽 대륙에서 살던 게르만족 중 약 15만 명의 소수 부족이 사용하던 지역 방언에 불과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영국의 원주민인 켈트족은 다른 민족의 공격을 막기 위해 게르만 용병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영국 땅이 마음에 들었던 게르만족은 오히려 고용주인 켈트족을 공격해 땅을 빼앗았고, 100년 넘게 이어진 이 싸움이 게르만족의 승리로 끝이 나면서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 즉 영어가 영국에 뿌리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영어가 영국에 뿌리를 내리게 된 계기
하지만 유럽 대륙은 영국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8세기경부터 북유럽 바이킹들이 영국을 침략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군사력이 강했던 이들은 덴마크의 데인족이었다. 데인족은 영국 중부와 동부 지역의 막대한 영토를 차지했고, 영어는 바이킹의 스칸디나비아어를 피해 변방으로 밀려날 상황에 부닥쳤다. 이때 영국이 데인족에 받은 영향은 오늘날 사람들의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이킹은 아버지의 이름 뒤에 son을 붙여 이름 짓곤 했는데, johnson이나 nicholson 등도 거기서 내려온 것이다.
영어가 이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등장한 영웅이 있었다. 바로 영국의 수호자, 알프레드 대왕이다.
그는 잉글랜드 서남부의 웨스트색슨 왕국의 왕으로, 초반에는 데인족에게 패배를 거듭했지만, 878년 치열한 전투 끝에 큰 승리를 거두면서 자신의 영토를 지켜냈다. 그런데 그가 지켜낸 것은 영토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직접 라틴어를 배운 뒤 종교, 철학, 역사에 관한 다섯 권의 책을 자신의 왕국인 웨스트색슨 지역 방언으로 번역해 배포했다. 이 책이 널리 퍼지며 드디어 역사상 첫 표준영어가 탄생한 것이다.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066년 영국이 프랑스 노르만족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영어는 다시 위기를 맞이한다. 노르만족에게 지배를 당하는 동안 프랑스어가 영국으로 물밀 듯이 쳐들어왔던 것이다. 이때 프랑스 정복자로부터 army, crown, govern이라는 단어들이 탄생했다. 이후 300년간 고대 영어는 어휘의 85%를 잃었고, 프랑스어와 라틴어가 왕실과 교회, 법정은 물론 새로운 문화의 언어로 자리잡으면서 영어는 3등 언어로 전락했다. 영국에서 상류층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고, 학생들도 학교에서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배우도록 강요받았다. 다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영어를 구한 것은 알프레드 대왕 같은 영웅이 아닌, 바로 ‘흑사병’이었다.
14세기에 흑사병으로 불린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고 영국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사망했다. 흑사병은 인류의 재앙이었고, 급격한 사회변화를 가져왔다. 흑사병으로 많은 수의 성직자가 죽자 평신도들이 이들의 역할을 대신 했는데, 평신도는 간신히 문맹에서 벗어난 이들로 그들이 사용했던 유일한 언어가 바로 영어였다. 또한 소작인이나 장인 같은 노동자들이 흑사병으로 주인을 잃은 농장과 상류층의 집을 차지하면서, 영어도 자신의 보금자리를 되찾게 되었다.
지배를 당하면서 위기를 맞이한 영어
1,362년, 거의 300년 만에 법정에서 프랑스어 대신 영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1,399년에는 영국 왕실에서도 다시 영어를 사용했다. 문법과 가장 기초가 되는 단어들이 민중의 언어로 계속 거리에 남아있다가 제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이 세상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다”는 시 구절처럼, 겨우 15만 명이 쓰던 게르만어의 방언이 오늘날 국제언어로서의 매력을 갖추게 되기까지는 격변의 시간이 있었다. 다른 언어와 부딪치며 더욱 풍성하게 발전해 온 영어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언어의 힘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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