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대 영화

'차(茶)'에서 인생을 보다

원작 대 영화 일일시호일 글_이대현 영화평론가 원작 대 영화 일일시호일 글_이대현 영화평론가

책에도, 영화에도 향기는 없다. 코로 맡을 수 있는 진짜 향기는 오로지 차(茶)에 있다. 그러나 모리시타 노리코의 수필집 『매일매일 좋은 날』에서도, 오모리 타쓰시 감독의 영화 <일일시호일>에서도 우리는 그 향기를 맡는다.

눈으로, 귀로, 그리고 마음으로 글과 영상에서
만나는 차의 향기는 기억과 느낌이다. 그 향기는 글을
쓴 사람, 영상 속에서 사람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향기이기도 하다. 차에 인생이 스며있고,
삶 속에 차의 향기가 퍼져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요리방법만을 정리해놓은 책이나 식욕만 자극하는 ‘먹방’ 프로그램이 아닌, 글과 영상으로 만나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카모메식당>와 <심야식당>, <리틀 포레스트>에서의 식탁에서 사람들은 삶의 희로애락, 사랑과 눈물의 향기를 맡는다.

당연히 그 향기는 솜씨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간과 마음에서 나온다. 시간은 향기를 천천히 그러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들게 하고, 그렇게 스며든 향기로 가득한 마음은 그것을 삶 속으로 펴지게 한다. 『매일매일 좋은 날』에서의 글, <일일시호일>에서 영상으로 사계절, 24절기를 24번이나 반복하는 차의 향기가 그렇다.

원작 대 영화 일일시호일 글_이대현 영화평론가-1

모리시타 노리코의 수필집은 일본의 다도를 소개하고 자랑하는 글이 아니다.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고 있던 대학 3학년, 스무 살의 어느 봄날 어머니의 권유로 다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날그날의 일과 느낌을 적은 일기장과도 같다. 뜨문뜨문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 도구를 닦는 데 쓰는 천인 ‘후쿠사’를 다루는 법에서 차 도구를 들고 다다미를 걷는 법, 다양한 도구로 차를 타는 ‘데마에(占前)’까지 그 과정을 세밀하고 생생하게 적었다.

그뿐이라면 글에도 영화에도 ‘향기’가 없었을 것이다. 노리코의 ‘차 이야기’는 형식과 풍경에 머무르지 않고 거기에서 마주하는 것들을 자신의 시간과 생각과 마음, 삶의 풍경과 느낌으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 다도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그녀의 이야기에 귀와 가슴을 기울이고, 공감한다. 15개 글의 제목부터가 그렇다. 차의 종류, 도구, 물 끊이기, 차 젓기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다」「머리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오감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다」「내면에 귀를 기울이다」이다. 다(茶, 차)란 말이 들어간 게 하나도 없다.

그녀도 처음에는 다도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무 살의 현대 여성이라면 가질 법한 거부감, 다도는 꽃꽂이와 같이 옛날부터 결혼을 취직으로 여기는 보수적인 부모들이 딸에게 배우게 하는 ‘일종의 신부수업’으로 부자들의 사회적 지위 과시, 이유 모를 권위주의, 여자들의 허영심 경쟁이란 고정관념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노리코 너, 다도를 배워보지 그러니?”라는 엄마의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어차피 뭔가 배울 거라면 플라멩코나 이탈리아어 쪽이 좋은데’라고 생각한다.

원작 대 영화 영화 일일시호일 글_이대현 영화평론가-2

걸어서 10분 거리에 사는 다케다 아주머니에게 다도를 배우면서도 못마땅한 게 더 많다. 예법으로 사람을 가두려는 까다로운 격식 때문이다. 왜 후쿠사는 그렇게 복잡하게 접어야 하는지, 왜 차선(거품을 내는 대나무 솔)으로 차를 저을 때는 손목을 빙그르르 돌려야 하는지. 스승에게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이유는 상관없어, 지금은. 어쨌든 이렇게 하는 거야. 다도란 원래 그런 거니까”이다.

‘원래 그런 것’은 누군가가 만들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반복했고, 그 시간 속에서 의미와 가치가 더해진 것이다. 그래서 말로는 그 의미와 가치를 채울 수 없다. 머리로 생각하면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시간을 들여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 길은 그런 것이며, 다도(茶道)도 길이다. 이유도 모른 채 무작정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에 불만인 노리코에게 다케다는 이렇게 말해준다. “차라는 건 말이지. ‘형태’가 그 첫걸음이란다. 먼저 ‘형태’를 만들어 두고 그 안에 ‘마음’을 담는 거야” 무려 15년이 걸렸다. 노리코가 그 엄격하고 딱딱한 다도의 형태에 ‘마음’을 담기까지. 그리고 처음 다케다 집에 갔을 때, 벽에 걸린 액자에 쓰여 있는 ‘일일시호일’의 의미를 깨닫기까지. 4계절, 24절기를 수없이 반복할 때마다 차와 마주하고, 자연과 차가 서로 어우러지고, 그 소리에 마음을 열고,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인 결과이다. 폭포같이 내리는 빗소리에 ‘귀가 멀어버린 듯한 감각’이 가져온 것이다. 그 마음이란 불안, 공포심, 걱정이 모두 사라지고 어딘가 갈 필요도, 해서는 안 되는 것도, 해야만 하는 것도, 부족한 것도 하나 없는 ‘그저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온전히 충족시키는 어마어마한 자유’이다.

원작 대 영화 영화 일일시호일 글_이대현 영화평론가-3

그 자유를 느끼는 순간, 노리코에게 다도는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듣고,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바라보고,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몸이 갈라질 듯한 추위를 맛보는,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기는’ 그런 삶의 방식이 됐다. 그녀의 말대로 다도의 형태 그 자체가 마음이었다. 아니 마음이 형태가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아무것도 빼지 않은 그런 ‘물’같은 데마에(차 만들기). 더 이상 그녀에게는 좋지 않은 날씨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날도 좋은 날이 되는 것이다. 날마다 좋은 날이다. 도(道)는 이렇게 스스로 깨치는 것이다.

그녀가 ‘다도’로 우리에게 말해주려는 것도 “오감을 사용해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보렴. 그럼 알게 될 거야. 자유로워지는 길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단다”, “긴 안목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라”이다. 노리코는 책 서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와 대학생 때 다시 본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을 예로 들면서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바로는 알 수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한 번 지나가면 그걸로 충분하지만 바로 알 수 없는 것은 서서히 이해하게 되고, 하나씩 이해할 때마다 자신이 보고 있던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서 ‘차란 건 그런 존재’라고 했다.

노리코에게 다도는 인생의 길과 같다. 차에서 인생을 보았다. 차는 타인이 아닌 어제의 자신과 비교한다. 똑같은 차를 두 번 만들 수 없듯이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차는 그 사람 자신을 비추고 있기에 사람 수만큼 존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노리코 다도에 특별한 의미나 철학적 해석을 부여해서가 아니다. 차를 끓이고 그 향기를 마시면서, 그때 함께 한 소소한 사물과 사람에게서, 차와 어우러진 자연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깨달음이다.

차만 그럴까. 세상만사, 삼라만상에는 삶의 이치가 숨어 있다. 단지 귀와 눈과 가슴을 열지 않아 그 향기를 맡지 못할 뿐. 노리코의 차 이야기가 책이 되고, 영화가 되어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유이다. 영화는 ‘또록또록 또로록 또록’하는 차가운 물소리와 ‘따랑따랑’하는 뜨거운 물소리의 차이를 소리로 들려준다. 연기가 아닌 실제로 다도의 제자와 스승 같은 쿠로키 하루(노리코 역)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지난해 타계한 키키 키린(다케다 역)의 모습은 이야기를 살아 숨 쉬게 하고, 듬성듬성하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노리코의 글을 가지런히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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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20년 가까이 옮겨 ‘지금’으로까지 이어준 영화에서의 차와 인생의 향기는 분명 글보다 더 감미롭고 감동적이다. 앞서 그 향기를 섬세하게 잡아낸 노리코의 글이 있어서다. 그래서 먼저 글로 향기를 맡고, 영화의 향기가 더 진하고 깊게 다가온다.
아버지의 죽음 말고는 특별한 사건도,
반전도 없는 이런 작고 소박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많고,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는 일본.
우리가 그것을 가져와 다시 우리 영화로 만들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조금은 부럽다.

이대현_영화평론가. 1959년생저서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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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4-25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