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예술의 풍경

근대의 위생 프로젝트, 조선인의 일상을 바꾸다

근대 예술의 풍경 2019.03 28 제 22호 근대의 위생 프로젝트, 조선인의 일상을 바꾸다 근대 예술의 풍경 2019.03 28 제 22호 근대의 위생 프로젝트, 조선인의 일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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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시대의 숭례문 및 청계천변의 목조가옥

위생과 치도(治道)

1821~1822년 13만 명, 1859~1860년 40만 명, 1895년에는 30만 명의 조선 사람들이 죽었다. 콜레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다. 유길준이 『서유견문』(1895)에서 전염병이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었다. 콜레라는 당시 의학으로는 치료 불가능한 공포의 질병이었다. 당시 콜레라의 거의 유일한 치료법은 환자를 격리하는 방법이었다. 정부는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위생개혁에 박차를 가했고, 그 첫걸음으로 치도사업을 실시했다. 치도사업은 바로 근대화를 위한 도로정비사업을 일컫는 말이었다.

당대의 치도사업이란 교통의 편의와 더불어 길가에 나뒹구는 오물을 제거하여 나쁜 세균과 박테리아의 번식을 예방하는 작업이었다. 김옥균의 『치도약론(治道略論)』(1882)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매년 농번기 때마다 괴질과 역질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김옥균은 전염병이 유행하는 원인을 “거처가 깨끗하지 못하고 음식물에 절제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더러운 물건이 거리에 쌓여 있어 그 독한 기운이 사람의 몸에 침입하는 까닭”이라고 진단했다.

전염병 창궐과 위생을 하나의 범주에서 집중적으로 사고하게 된 것은 개항(1876) 이후부터다. 또한 이 무렵부터 ‘전염병, 위생, 건강, 신체, 인구, 인종, 국력’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기 시작했다. 김옥균과 유길준 같은 계몽가들은 건강한 신체야말로 서구열강이 지닌 막강한 힘의 원천이라고 파악한다. 그런 이유로 위생, 건강, 국력이 하나의 범주로 묶여 국가 발전의 중요한 문제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서양 인종이 몸집이 굵고 큰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마다 위생을 잘하여 거처와 음식을 몸에 이롭게 하여 병이 없이 자라서 근골이 장대한 것이라.
(「논설」, ≪독립신문≫, 1899.6.20.)
계몽가들은 조선을 서구열강과 같은 문명국가로 만들기 위해 조선 사람들의 의식주 문화를 전반적으로 개량하기 시작했다. 이때 의식주 문화의 개량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위생이었다. 1895년 모든 국민의 공분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단발령의 명목 중 하나도 ‘위생에 이롭다’는 이유였다. 계몽의 입장에서는 ‘개량’이었지만, 인민들의 입장에서는 ‘위압’이고 ‘폭력’일 수도 있는 위생산업이 전국토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위생은 만국 동포의 급선무

위생과 청결은 조선인들에게는 무척 낯선 말이었다. 위생규칙과 청결법은 더욱 낯선 용어였다. 갑자기 맹위를 떨치는 각종 위생관련 법규에 조선인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동안 노상방뇨를 해도, 개천에서 더러운 물건을 씻어도, 길가에 퇴비를 쌓아 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정부는 조선의 문명화를 위해 위생이 왜 중요한지, 나쁜 세균과 박테리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인민들에게 알려야만 했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신문이자 정부의 기관지에 가까웠던 ≪한성순보≫는 먼저 서구의 위생 정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위생은 하늘로 머리를 두고 죽기를 싫어하는 세계의 동포와 우리 백성들의 급선무이다. (…) 위생 사무에 관계되는 (…) 규칙에는 다섯 가지 조항이 있다.
첫째는 먹는 음식과 물에 대한 철저한 관리. 둘째는 시도(市道)와 골목길, 하수도, 변소 등을 청소하여 더러운 것이 흘러내리거나 증발하지 못하게 한다.
셋째는 감염되는 병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병원으로 옮겨 치료하고 그 병이 전염되지 않도록 소독한다. 넷째는 자녀가 출생하면 반드시 우두법에 따르도록 한다.
다섯째는 일체의 의약 도구를 검사하여 경솔하게 사용하거나 부질없이 시험하지 못하도록 한다.
(「만국위생회」, ≪한성순보≫, 1884.5.5.)
1894년 7월 30일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위생국이 신설된다. 위생국은 전염병 예방과 의약 및 우두와 관련된 사무를 담당했으며, 방역사업, 의약 관련 사무, 우두사업 등 제반 위생사무를 총괄하는 단일 기구였다. 위생국의 설립은 새로운 보건위생체계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먹는 음식, 골목길, 하수도, 변소를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자녀가 출생하면 ‘우두법’에 따르도록 하는 것, 일체의 의약 도구를 검사하는 등의 모든 ‘위생관리’는 조선인들에게 낯설고도 놀라운 문화적 격변이었다.

위생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

근대화의 맥락 속에서 위생은 질병을 예방하는 행위로서 정당화된다. 근대화의 위생 담론은 예측 불가능한 질병, 미래의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 시스템 속에서 가동되기 시작한다. 위생규칙이 일상에서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민들의 일상적 습속을 바꿔야만 했다.
따라서 위생은 질병과의 전쟁이자 인민의 일상적 습속과의 전쟁이었다.

1896년 6월 20일 무렵이었다. 정부는 경찰서에 훈령(訓令)을 내렸다. 여름철 위생을 위한 조치였다. 훈령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집 앞을 청결하게 유지하며, 아침저녁에 쓰고 버리는 물은 변소에 뿌려 똥과 오줌이 쌓이지 않게 할 것. 둘째, 길가에 버려진 더러운 물건은 그 물건과 가까운 집의 주인이 처리할 것. 셋째, 골목의 작은 개천은 개천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정비할 것. 넷째, 상한 생선과 고기와 익지 않은 과일의 판매를 금지할 것. 다섯째, 어른과 아이를 불문하고 길에 똥 누는 것을 금지할 것.

위생 감찰을 주 업무로 삼는 위생순검이 인민의 일상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위생순검은 노상방뇨, 개천에서 빨래하는 행위, 비위생적인 음식을 파는 행위, 변소를 치우지 않는 행위, 길가에 퇴비를 쌓아 놓는 행위, 술 먹고 노숙하는 행위 등을 단속했다. 위생규칙에 어긋난 행위를 저지른 인민들은 태형(笞刑)에 처해 지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벌금을 물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종의 ‘똥세’도 내게 되었다. 어느 날 집집마다 ‘똥표’가 날아들었다. 이른바 ‘위생비 영수증’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위생비 영수증을 똥에 세금을 징수한다고 해서 똥표로 불렀다. 1907년 이후 위생비는 조선 인민들의 일상을 더욱 팍팍하게 만드는 세금이었다. 특히 조선과 일본의 경찰들이 동시에 조선 인민들을 단속하기 시작하면서 위생비에 대한 인민들의 원성은 더욱 높아졌다. 순검과 순사와 헌병들은 아무 집이나 닥치는 대로 들어가 위생비를 내지 않은 인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렀다. 때로는 세금징수를 빌미로 여성을 강간하는 참극도 벌어졌다. 조선 사람들은 ‘위생’을 ‘고생’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1896년 5월 19일자 ≪독립신문≫에는 “백성이 병이 없어야 나라가 강해지고 사농공상이 흥할” 수 있으며, “깨끗한 것이 곧 선악보다 나은”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식산흥업과 부국강병의 기초로써 인민의 건강을 강조하는 것이자, 청결을 도덕적 가치와 덕목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그만큼 위생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일 터이다.
위생규칙만 잘 따른다면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인종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몸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개인은 국민이라는 더 큰 틀 속에서 정의되어야 하는 ‘집단적 신체’였으며, 국민의 신체를 관리하는 것은 국가였다. 국가는 국민 모두를 건강한 신체로 육성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조선의 근대화를 바랐던 사람들은 ‘건강한 신체’를 ‘근대화된 신체’이자 ‘문명화된 신체’로 판단했다. 그들에게 위생개량의 목적은 조선인을 문명화된 신체이자 근대화된 신체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위생’은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문명화의 작업이기 이전에 일상을 통제하는 폭력과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서양 사람들을 보라. 그 안색의 화려함과 원기의 왕성함과 행동의 활발함을 누가 쇠망한 나라의 사람이라 하리오.
판에 박힌 흥성한 나라 사람이로다. (…) 우리나라 사람의 안색을 보면 서양 사람에 비하여 혈색도 부족하고 화기도 부족하다 할 것이다. (…)
우리나라의 지금 형세로 말할진대 산천과 천하와 거처와 생활 등 모든 곳에서 개량하지 않을 것이 없지만 ]
제일 먼저 할 것은 국민의 혈관을 수세미질하고 얼굴을 대패질하여 번듯한 인물을 만들어 혈색 있는 얼굴이 되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외양과 국가의 성쇠』(논설), ≪대한매일신보≫, 1910.3.29.)

글 / 이승원_문화학자, 1973년생

저서 『공방예찬』 『시 읽는 여행자』 『저잣거리의 목소리들』 『사라진 직업의 역사』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학교의 탄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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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3-2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