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작은 동네> 제11화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11화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11화

내가 살던 동네 애들은 어렸을 적에 악기를 배우는 일이 거의 없었고, 내 기억이 맞다면 나처럼 멜로디언을 가진 애들조차 없었다. 그래도 초등학교엔 그런 애들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반 아이들은 교실 앞에 있는 오르간을 선생님만 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서 특별히 잠겨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감히 뚜껑을 열어볼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가끔 선생님이 없는 틈을 타서 뚜껑을 열고 연주를 하는 애들이 있긴 했다. 그 애들은 멋들어지게 한 곡을 연주해 보이곤 했고, 선생님이 돌아오기 전에 잽싸게 오르간 뚜껑을 닫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중년의 남자였다. 아마도 내 아버지와 비슷한 또래였을 텐데, 제 나이보다 좀 나이 들어 보였고, 자기 자신도 나이 들어 보이는 걸 더 좋아할 법한 그런 스타일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그가 어떤 식으로 생각을 했는지는 지금의 내가 알 길은 없다. 그는 안경을 썼고, 짧은 머리카락은 항상 파마를 한 것처럼 곱슬곱슬거렸다. 그 당시만 해도 한 반에는 40여 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마흔여 명의 열 살짜리 애들에게 영향력을 내비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음악 시간에 오르간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걸 시키는 대신, 우리에게 싸구려 플라스틱 단소를 사게 만들었다. 내 기억으로, 모든 아이들이—그게 아무리 싸구려라고 할지라도—플라스틱 단소를 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그건 돈의 문제일 수도 있었고 돈을 포함한, 훨씬 더 심오한 문제의 결과일 수도 있었다. 그런 애들이 있었다. 그저 살아 있는 게 기적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우리 반에는 그런 애가 한 명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담임선생님은 그 애에게 플라스틱 단소를 선물로 주었다. 아마도 그는 교무실에 가서 이렇게 말했으리라. “난 모든 아이들이 공정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가능한 그 모든 경험을 다 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것 역시 그냥 내 생각에 불과하고 그가 실제로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이 말을 한 번 더 반복하자면—지금의 나는 알 길이 없다. 그 애, 선생님에게 플라스틱 단소를 선물 받은 그 애는 목욕을 하지 않아서 언제나 머리카락에는 기름때가 끼어 있었고, 여름에도 피부가 말라서 갈라져 있었으며, 얼굴과 몸은 새까맣고 팔꿈치에는 두꺼운 각질이 쌓여 있었다. 사시사철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녔고, 겨울에는 얇은 점퍼 하나를 덧입었을 뿐이었다. 몸에서는 무언가에 찌든 냄새가 났다. 그건 내가 맡았던 옆집 할머니의 냄새처럼 나를 두렵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나를 불쾌하게 만들기는 했다. 무엇보다 그 애는 수업 시간에 항상 늦었다. 가끔 아예 학교를 안 올 때도 있었지만, 선생님이 특별히 그 애를 혼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애의 이름은 고장연이었는데, 반의 짓궂은 남자애들은 그 애를 ‘고장난’이라고 불렀다. 어딘가가 고장이 나서 저렇게 냄새가 나는 거라고. 하지만 학기 초의 나에게는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고장연이든 고장난이든 어쨌든 그 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있었을 것이다. 그 애와 내가 한 부류로 묶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학기 초부터 나는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해야 했고, 무리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무리로부터 떨어진다면 나는 ‘깨끗한 버전’의 고장연이 되고 말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절대로 그 애에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하고도 웃긴 일이 일어났다. 음악 시간에 모두들 단소를 입에 대고 소리를 내려고 안간힘을 쓰던 와중에 갑자기 내 단소에서 소리가 난 것이다. 단소는 리코더 같은 악기와는 달라서 그냥 입에 대고 분다고 소리가 나는 건 아니었다. 그때까지 제대로 맑은 소리를 내는 애가 한 명도 없었는데 내가 갑자기 그런 소리를 내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선생님과 아이들의 눈길이 모두 내게 쏠렸다. 나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선생님은 내게 다가와서 무릎을 굽힌 후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괜찮다고, 천천히 구멍을 막은 손가락을 하나씩 때면서 소리를 더 내보라고 했다. 교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모두들 내 단소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공기—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 때문에 나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감싸고 있는 공기의 온도가 변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숨이 막히는 것쯤은 참아야 한다고 나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건 본능적인 깨달음에 가까웠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어쨌든 그 시간 이후로 내 조그만 삶의 축이 천천히, 하지만 확고한 방향을 가지고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음악 수업 시간에 나는 일종의 조수가 되었다. 선생님은 내게 앞으로 나오라고 한 후에 시범 연주를 시켰다. 나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집에 있을 때에도 단소 연습을 했다. 내가 하도 하루 종일 단소 연습만 해서, 어느 주말에 아버지는 내게 단소로 한 곡을 연주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했고, 나는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 단소 연주를 했다. “굉장하구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고, 어머니는 약간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학교에서 나는 더 이상 친구들에게 술래가 될게,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선물을 줄 필요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용기를 낼 필요도, 굴욕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그 애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내가 그 애들에게 무엇을 받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때로는 불안했다. 우리는 쉬는 시간에는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같이 갔고, 심지어는 화장실의 같은 칸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관계는 때때로 나를 현기증 나게 만들었고, 자주 어떤 것들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나는 더 이상 과거에 내가 만나고 관계를 맺어왔던 사람들에 머물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들을 놓아주어야 했다. 혹은 미래의 나, 앞으로 내가 바라는 관계와 관련된 백일몽을 꾸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 그들과 있었고, 나는 내가 서 있는 시간과 장소를 아주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숨을 참다가 갑자기 늘숨을 내쉬는 것처럼, 급작스럽고 빠른 속도로. 그리고 거기에 바로 고장연이 있었다. 나는 그 애를 잘 몰랐다. —당연한 말이지만—나는 그 애가 뭘 원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가끔씩 그 애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어떤 감정들이 마음 밑바닥에서 치밀어 올랐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다가도, 미술 시간에 그림 그리기를 하다가도, 체육 시간에 달리기를 하다가도 나는 혼자 멀찍이 떨어져 있는 그 애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이 그 애가 혼자 그런 식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게 싫은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그 애의 행복을 바란다고 생각했다. 행복? 나는 그 애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한 첫날,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일곱 명에게 수업이 다 끝난 후 교실에 남으라고 했다. 선생님은 양손을 허리에 짚은 채, 약간은 으스대는 태도로 우리에게 말했다.

“너넨 이제 플라스틱 단소가 아니라 떡갈나무로 만든 진짜 단소를 가지고 연습을 할 거다.
일주일에 두 번씩. 열심히 하면 연말에 단소 대회에 나갈 수 있을 거다. 다들 하고 싶지?”

내가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싫어하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회에 나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다음 날, 선생님에게 나는 대회에 나갈 수도 없고 방과 후 연습에 참가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를 물었는데 나 자신도 그 이유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어머니가 새 단소를 사주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해버렸다. 선생님은 나의 대답을 굉장히 인상 깊게, 그러니까 내가 은연중에 우리 집의 경제적 상황을 언급하고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거라고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괜찮다고, 자신이 단소를 하나 선물해주겠다고. 상황이 그렇게까지 되어버리니까 나로서는 더 이상 거절을 할 명분이 사라져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한번 방과 후에 남았던 친구들 사이에는 이미 묘한 연대감 같은 게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그 연대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한 시간 정도 늦게 오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웃으며 물었다. “왜? 너 나머지 공부해?” 나는 나무 단소를 언제나 가방 아래쪽에 넣어두었고 집에 가자마자 내 방, 책상 가장 아래 서랍에 숨겨두었다. 한편으로, 방과 후에 남아서 단소를 연습하고, 함께 연습하는 친구들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되면서, 고장연에 대한 나의 관심은 훨씬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은 동네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제 11화-1

9월 말쯤에 선생님이 짝을 바꾸겠다고 했을 때, 고장연에 대한 나의 감정은 폭발해버렸다. 고장연과 짝이 되고 싶다고 자청한 것이다. 반 아이들이 나와 고장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고장연은 늘 혼자 앉았다. 짝이 정해지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받을 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지만 그 상황이 완전히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한번 감정이 폭발해버리자 그 잔해들이 흘러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고 내가 다른 어떤 힘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짝이 된 다음 날, 나는 그 애에게 내 색연필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나는 굴욕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 애는 내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고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얼굴을 보고 인사해야지.” 나는 마치 엄마가 내게 하듯 그 애에게 말했다. 체육 시간에도 나는 그 애 옆에 붙어 있었다. 짓궂은 남자애들이 나와 고장연을 싸잡아서 놀렸다. 예전에는 고장연과 같은 부류로 묶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건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나와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 내게 물었다.

“왜 그래? 걔 냄새나지 않아?”

그건 사실이었지만, 그 애와 있을 때 나는 숨을 참지도 않았다. 나는 어쨌든 그 애를 공정하게 대하고 싶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하나도 안 나.”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나는 드디어 해결책을 찾아냈고 기쁜 마음으로 어느 날 토요일, 수업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 그 애에게 말했다.

“나랑 약속 하나 해, 다음 주까지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오면 내가 초콜릿을 줄게.”

월요일에 그 애는 1교시가 끝난 후에야 모습을 나타냈는데, 그 애는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이틀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때에 절은 옷이나 가방은 그대로였지만,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은 흔적이 있었다. 그 애가 책상 옆 걸이에 가방을 걸고 내 옆에 앉자마자 나는 그 애의 책상 쪽에 초콜릿을 올려주고 슬쩍 웃었다. 나는 애들에게 고장연이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며칠 후 체육 시간에 이인삼각 달리기를 할 때에도 나는 고장연과 짝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애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고장연의 두 손을 잡았다. 깎지 않은 손톱에 잔뜩 때가 낀 그 애의 까만 손을. 친구들 중 한 명이 내 귀에 대고 말했다.
“걔가 네게 병을 옮길 거야.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 저런 애들은 병균이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어쨌는지 고장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우리는 이인삼각 경기에서 꼴찌를 했지만, 나에게는 이미 등수는 별로 문제도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교실 안에서 나는 그 애를 잠깐 안았다가 놓아주었다. 나는 그 애에게 병균이 옮아도 상관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그 애에게 물었다.

“세수를 할 때 비누를 사용했어?”
“아니.”

그 애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애의 목소리는 저음이었다. 나는 그 애가 좀더 밝게 목소리를 내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중에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 애에게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그럴 줄 알았어. 세수할 때는 비누를 써야 해. 머리 감을 때는 샴푸를 써야 하고. 잘 씻으면 다른 친구들하고도 놀 수 있을 거야.
내일 잘 씻고 오면, 내 샤프 줄게.”

고장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계속 말했다.

“너 눈이 엄청 예뻐. 네가 잘 씻기만 한다면 다른 친구들도 다 널 좋아할 거야.”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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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3-0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