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작은동네> 제7화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나는 가끔 내 발밑에 엎드려 있는 누렁이의 등에 내 두 발을 올린 채로 부모님이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준 멜로디언을 불었다.
내 멜로디언 소리를 듣고 할머니가 나올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걸 바라기도 했다.

아, 정말 내가 그랬을까? 정말로 할머니가 나오기를 바랐을까?

가끔 그 집 앞을 지나가는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내가 인사를 하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어떤 날에는 책을 가져가서 누렁이에게 읽어줄 때도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한 이야기는 『바보 한스』였다. 바보 한스가 바보 같은 일을 계속하다가 공주님의 선택을 받는 이야기였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툇마루에 누워서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 볼을 핥는 누렁이의 혀를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거기에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기서 잠들었던 어느 날, 어떻게 내가 집에서 눈을 뜰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내가 거기서 잠이 드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고, 나는 대체로 거기에 앉아서 그냥 내 눈앞에 펼쳐진 동네를 바라보곤 했다. 그러면 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내가 그 개, 누렁이를 쓰다듬을 때, 그리고 누렁이가 나를 보고 친밀감의 표시로 낮게 짖거나, 내 얼굴이나 팔을 핥을 때, 혹은 그 동네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는, 나는 이름을 알 수 없었던 다른 개들을 볼 때, 혹은 우리 집 문을 나와 동네를 걸어 다니며 낮은 지붕의 집들, 부서진 담장이나 창문을 그대로 둔 집들을 볼 때, 마당에서 마늘을 까거나 양파를 까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볼 때, 나의 마음은 약간 울렁거리지만 그건 더 이상 징그럽다거나 역겹게 느껴지지 않았고, 무언가를 내게서 떼어내고 싶다는 기분과는 좀 다른 것이었다.

아주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나는 알게 되었는데, 나는 그 개들과 동네의 어떤 모습들이 상실의 증표라는 사실에서 멀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상실의 증표라는 걸 온전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늦가을에 돌아가셨다. 혼자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의 시체는 죽고 나서도 그 방에 한참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고 했다. 기온이 높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늦게 발견된 거라고. 할머니의 시체가 한동안 방치되었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경악했다. 왜냐하면 내가 할머니네 집 툇마루에 앉아 있던 때에 이미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이제 할머니를 못 보니까 네가 많이 슬프겠구나.”

하지만 내가 할머니를 만나고 대화를 나눈 건 고작 한 번뿐이었다. 할머니가 죽었다고 해서 무언가가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느 날 학교에 간 나는 쉬는 시간에 교실 앞 책상에 앉아 있는 담임선생님에게 다가가 그 말—‘기온이 높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늦게 발견된 것’—의 의미를 물었다. 선생님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남자였다. 아마도 20대 후반쯤. 그는 내 질문에 약간 멈칫거렸지만,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사람이 죽으면 썩기 시작하고, 냄새가 난다고. 그런데 기온이 낮으면 낮을수록 천천히 썩는다고.
“그걸 ‘부패’라고 한단다. 인간은 모두 부패하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무신론자였을 것이다. 그저 그런 무신론자가 아니라
이 세상의 진실을 여덟 살짜리 꼬마애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엄청난 의무감을 가진 무신론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이 썩는 건,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거야. 사람은 자연의 일부였다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거란다.”

나는 선생님 앞에 선 채로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 난처해하다가 검지로 내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나는 누렁이는 가족을 잃었으니까, 다른 개를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누렁이는 작고 귀여운 또 다른 개와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되리라고. 하지만 그건 예측이 아니라 바람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후로 할머니의 시체가 어떤 식으로 처리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누던 대화는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내가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봐도 좋지 않을까, 하고 가볍게 말을 꺼냈는데, 어머니가 절대 안 된다며 화를 냈다. 부모님 중 어느 누구도 내게 장례식에 대해 설명해주진 않았다.

나는 나중에 궁금해하곤 했다. 만약 그 무신론자 선생님이었다면 내게 장례식에 대해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해줬을까? 이런 생각을 하긴 했다. 죽은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고. 밥을 먹다가, 혹은 수업 시간에 노래를 부르고 있다가, 혹은 잠에 들려고 누워 있다가 할머니를 떠올릴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할머니를. 나는 눈앞에 떠오른 백일몽을 통해서 할머니가 살아 있던 시간으로 다시 되돌아가곤 했다.

나는 누렁이와 함께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할머니의 방문을 연다. 방 안은 아주 깜깜하다. 등을 보인 채 앉아 있는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나를 보며 무슨 표정을 지을지 알 수가 없어서 조금 두려웠고 그 순간 나는 백일몽에서 깨어났다. 할머니가 죽은 후 누렁이는 사라졌다. 나는 어머니에게 몇 번이나 누렁이가 어디에 갔는지 묻고 싶었지만 결국 묻지 못했다. 나는 그걸 아무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병상에 있던 어머니는 그 개를 기억해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었어. 원체 늙은 개였기도 하고
주인이 죽으니까 기력을 잃어버렸나 봐. 모르겠다. 개에게는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나는 그런 말을 다른 누가 아닌,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말도 덧붙일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죽은 그해 겨울방학의 어느 날 나는 낮잠을 자고 있는 엄마 몰래 코트와 목도리를 걸치고 털모자와 장갑을 꼈다. 그리고 내 방 침대 아래에 숨겨놓은 종이 상자를 꺼냈다. 나는 각종 풍선껌과 사탕, 젤리와 캐러멜들이 들어 있는 상자를 들고 엄마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스럽게 여닫이문을 열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릴 땐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그게 너무나 신비롭게 느껴진다. 나는 최대한 소리가 안 나게 여닫이문을 닫았다. 어머니가 깰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실외에 있는 신발장을 열어 털부츠를 꺼내 신는 동안,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군것질 상자를 눈이 내리는 바닥 위에 내려놓아야 했다. 그게 젖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부츠를 다 신은 후에 나는 상자를 내 품속 깊숙이 끌어안았다.

나는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내가 넘어지면 어머니는 난리를 칠 게 뻔했다—할머니네 집까지 걸어갔다. 그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내 코는 이미 빨개져 있었다.

할머니 집 툇마루 앞, 개집 지붕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나는 그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누렁이는 없어. 나는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툇마루 쪽으로 걸어갔다. 눈길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나는 그게 좋았다.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그 소리가 좋았다.

할머니의 방문은 꽉 닫혀 있었다. 거기에서 나는 죽음의 이미지, 불길한 기운 같은 걸 느끼지는 않았다.
심지어 나는 여전히 그 안에 할머니가 앉아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을 정도였다.
장갑을 벗고 문고리를 잡고 한동안 서 있던 나는 망설이다가 문고리를 놓고 다시 장갑을 꼈다.
그리고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껌과 캐러멜, 사탕 등등을 꺼내서 툇마루에 일렬로 놓아두기 시작했다.

그 일을 다 끝낸 후에 나는 툇마루 밑으로 내려왔고, 그리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껌과 캐러멜, 사탕 등등을 바라보았다.
그런 후 나는 다시 뽀드득거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그 집을 빠져나왔다.

얼굴로 떨어지는 차가운 눈송이를 느끼며 걷던 나는 얼마쯤 그 집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한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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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1-2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