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작은동네> 제6화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며칠 후, 한 손에 자두가 든 봉지를 들고 어머니는 나를 옆집으로 데려갔다.

내가 기억하기로 어머니가 이웃의 집을 방문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머니는 별로 거리끼는 기색도 없이 내 손을 잡고 그 집 앞 공터, 그러니까 파와 상추가 자라나고 있는 땅을 지나 개집 근처로 갔다. 나는 어머니가 남의 땅을 침범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줄에 묶인 개가 갑자기 우리를 공격할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개는 그 자리에 서서 우리를 올려다보며 큰 소리로 짖었을 뿐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툇마루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도, 그 아래에는 안쪽에 인조털이 달린 신발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개가 짖었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어머니가 아무도 안 계세요? 하고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먼지 쌓인 툇마루와 연결된 미닫이 방문이 열렸다. 나는 그녀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문을 잡은 채 상체만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는 주름들 때문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흰머리는 짧게 잘라서 뽀글거리는 파마를 했고, 피부는 가무잡잡했으며, 손과 입술에도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어머니는 내게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라고 했다. 내가 꾸벅 인사를 하자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내가 개를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개를 키울 형편이 안 된다고 설명하면서 내가 그 집 개와 잠깐씩만 놀아도 되는지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우리 딸은 아주 얌전해요. 시키실 심부름이 있다면 시키셔도 되고요. 얘가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게 좋으시다면 그렇게 할 거예요. 우리 애는 그냥 개 옆에서 잠깐 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거거든요.”

어머니가 그렇게 말을 하자 할머니는 여전히 문을 붙잡은 채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벽돌집 딸이구나.”

목소리. 늙은 사람의 목소리는 겉으로 보이는 주름보다 훨씬 더 이상한 것이었다. 그녀가 한마디 한마디 하려고 애쓸 때마다 그녀의 주름진 성대 기관에 상처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안다. 성대는 주름지지 않을 테니까, 그저 탄력을 잃을 뿐이다. 할머니의 눈동자는 탁했고 무언가 막이 씌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마치 나를 심판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결국 허락했다.

사실, 어머니가 할머니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어쩔 줄 몰라서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할머니가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까 봐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개를 만지는 것, 그건 이제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이제 내게 그 집 개, 혹은 이 동네의 다른 집에서 키우는 그 모든 개들의 의미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건 내가 안고 싶고 눈을 마주치고 싶은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가 소중한 것을 상실했다는 증표였으며 징그럽고 나를 소름끼치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개 옆으로 가보라고 말했다.

“개를 만져봐.”
“그래, 그래 보려무나.”

할머니가 끙차,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로 나왔다. 할머니의 몸은 아주 조그마했고 허리는 굽어 있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사온 자두를 씻어 와서 나와 어머니에게 건넸다. 할머니 손 위에 있는 자두는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사물같이 보였다. 무언가 생명력을 잃은 듯한. 손바닥으로 툇마루의 먼지를 한번 쓸어낸 어머니는 그 위에 앉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두어 번 치며 내게 앉으라고 눈짓을 했다. 나는 엉거주춤 선 채로, 할머니가 건넨 자두를 받아 들고 먹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그렇게 늙은 여성 혹은 늙은 사람과 가까이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연히 외조부모를 만날 일은 없었고, 친조부모를 만날 일도 없었다. 명절 때, 아버지는 혼자만 서울에 있는 친가로 갔고 어머니와 나는 단둘이 집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마치 휴가를 얻은 사람처럼 빈둥거렸고, 나에게는 자장면을 사주거나, 식빵과 딸기잼 혹은 라면 같은 걸 먹였다. 명절 연휴 동안 어머니는 내가 뉴스를 제외한 티브이 프로그램을 원하는 만큼 시청해도 된다고 허락해주었다. 때때로 어머니와 나는 밤늦게까지 함께 티브이 앞에 앉아서 옛날 외국영화 같은 걸 봤다. 어머니는 연휴가 시작하면 신문에서 방영해주는 영화의 목록을 확인하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영화가 하는 날 밤이면, 방에 불을 끄고 영화를 볼 준비를 했다. 대체로 나는, 어머니 곁에 앉아서 같이 영화를 보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끝까지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결국은 그렇게 됐다. 그러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나는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고 있었다. 어머니가 특별히 좋아한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어머니는 내게 그 영화의 원작이 소설이고, 언젠가 내가 소설을 직접 읽어보면 좋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가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면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스스로 눈을 가리게 만들었지만, 그 이외에는 내가 눈을 가려야 하는 장면은 없었다.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어머니와 ‘합법적으로’ 늦게까지 티브이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내가 그 시기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명절 연휴 내내 집 안에는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에 나는 명절을 우리 가족처럼 보내는 경우가 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어머니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되물었다.

“명절에 우리 둘만 집에 남아 있는 게 외롭니?”

나는 그 후로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직전에, 어머니가 그 시절을 이야기하다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채로, 몇십 년 만에 그 말을 반복했을 때, 나는 그제야 그 당시 어머니를 감돌던 그 기묘한 분위기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아버지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런 분위기는 명절 연휴가 끝날 때쯤, 아버지가 양손에 한 아름 무언가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얼마간 지속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싸 들고 온 음식이나 옷가지 같은 것—거기에는 내 새 옷도 포함되어 있었다—을 정리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부모님, 그러니까 어머니의 시부모님이 어머니의 안부를 궁금해한다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그 말에 대꾸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어머니의 대답을 들은 건 딱 한 번이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답했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좋네요.”

어머니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중에 내가 좀더 나이를 먹었을 때, 그러니까 그 동네를 떠난 이후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날 어머니가 옆집 할머니에게 나를 데려간 게 혹시라도 나에게 할머니라는 존재를 느끼게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은 좀더 발전해서 혹시라도 할머니, 그러니까 나이 든 여성(혹은 남성이라도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을 원했던 건 어머니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날, 나는 억지로 개를 몇 번 쓰다듬었다. 개의 체온이 고스란히 내 손으로 전달되었다. 개의 이름은 촌스럽게도 ‘누렁이’였다. 누렁이는 내가 자신을 쓰다듬는 동안 고개를 들고 앉아서 혀를 내민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할머니가 준 자두를 몰래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어때? 기분 좋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잘 모르겠어요.”
“잘 몰라?”

나는 다시는 그 집에 가서 개를 만지고 싶지도 않고 그 집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거나 할머니가 주는 음식 같은 걸 먹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아마 그렇게까지 내 의견을 똑바로 내비치지는 못했고 그저 더 이상 개와 놀고 싶지 않다는 뜻을 겨우 피력한 수준이었지만, 여하튼 그랬다. 어머니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나는 조금 열린 틈으로 보이던, 잡동사니가 무방비하게 쌓여 있던 할머니의 어두운 방을 떠올리고—그건 마치 동굴 속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방과 할머니의 몸에서 나던 냄새를 떠올렸다. 그건 불쾌하다기보다 이상한 것에 가까웠다. 그건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통과한 온갖 것들의 온갖 특성이 응축된 듯한 그런 느낌을 줬다. 나는 그게 무언가를 상실하고 개를 대신 키울 수밖에 없었던 사람, 다른 식으로 시작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표식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나는 그냥 동네 초입에 서서 그 좁은 흙길을 바라보기만 해도 약간 속이 울렁거렸다. 모든 집에 재앙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꼈기 때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더 이상 내게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알았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어머니는 내게 그렇게만 말했다.

그 후로 어머니가 그 할머니네 집에 가거나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작 나는 그 집을 찾아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여러 번이라고 표현하는 건 너무 불공평한 것 같고 나는 그 후에 그 집에 자주 찾아갔다. 시간이 지나자, 그 개가 상실의 증표라는 사실은 내게서 점차 멀어져갔다. 나는 어머니 몰래 그 집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렸고, 그 집 마루 밑에 신발이 없는 걸 확인하면 살금살금 개에게 다가가 그 개를 쓰다듬었다. 나중에는 대담해져서 그 집 마루 밑에 신발이 있든 없든 개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익숙해졌다. 그런 일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도 이어졌다. 아마도 옆집 할머니도 내가 그 집에 들러서 누렁이와 놀다 가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도둑 방문을 하는 옆집 꼬마애가 자신과 접촉—이 단어 말고 나는 다른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겠다—하는 걸 꺼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 집에 가면 가끔 먼지 쌓인 툇마루에 내가 먹을 사탕이나 껌이나 과자가 올려져 있었다. 그건 오래되어서 먼지 쌓인 게 아니라, 한눈에 딱 봐도 새로 사온 것, 아이라면 누구나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군것질거리였다. 나는 전에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툇마루를 손으로 한번 쓸고 그 위에 앉았다. 아직 나는 키가 작아서 그렇게 앉으면 내 발이 땅에 닿지도 않았다. 나는 두 발을 흔들거리면서 망설이다가 할머니가 놓아준 군것질거리를 먹었다. 처음에 나는 그걸 다 먹지는 않았고, 툇마루에 사탕을 하나 남겨두었다. 하지만 다음에 찾아올 때까지도 사탕은 그대로 거기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 내가 또 캐러멜을 남겨놨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상자를 하나 받았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두꺼운 종이 상자 안에 나는 할머니가 준 군것질거리 중 하나씩을 남겨서 넣어두었다.

“그건 누구 건데? 엄마가 하나 먹으면 안 돼?”

어머니가 그렇게 물으면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안 돼요.”

나중에 병상에서 어머니는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내게 말했다.

“왜 그렇게 욕심을 부린 거니? 그거 그래서 네가 다 먹었니? 유통기한이 지나서 다 버렸겠구나.”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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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2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