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작은동네> 제5화

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독자의 곁에 머물고 싶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

그래도 나는 마지막으로 내 나름대로의 용기를 내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던 어느 날, 나는 어머니에게 한 번 더, 개를 데려와서 키우면 안 되느냐고 물어보기로 했다.

“엄마, 옆집 할머니는 개를 키우잖아요. 그 할머니는 나보다도 힘이 없어 보여요. 그런데도 개를 잘 키우잖아요.”

어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너도 이제 일곱 살이지,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갈 거야. 엄마는 니가 아무런 위험에 처하지 않고 자라길 바란단다. 이제 이게 바로 나의 지상 과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지상 과제요?”

어머니는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지 잠시 단어를 고르는 듯하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요구받는 일, 꼭 이뤄내야 하는 그런 일이야.”

나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포크를 든 채 그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니, 됐다. 그건 몰라도 돼. 나중에 네가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까. 하지만 이건 꼭 알아둬야 해.”
“뭘요?

어머니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 이 동네에는 큰불이 난 적이 있어.”
“불이요?”
“동화책에서 읽은 적 있지? 산에 불이 나서 동물들이 도망치는 그런 거 읽은 적 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도망을 갔어야 했어요?”
“그래, 하지만 사람은 동물이랑 달라서 사는 곳을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어. 그걸 사람들은 ‘정착’이라고 불러. 자신이 살 곳을 정한다는 뜻이야. 근데 정착한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거든. 그래서 모두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어. 도망을 갔지만 결국엔 다시 돌아와야 했지.”

나는 어머니가 하려는 말이 내가 한 요구—개를 키우고 싶다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겨워서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하자 어머니가—마치 며칠 전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얘야, 그 불이 났을 때, 정말로 엄청나게 큰불이었어. 그때, 옆집 할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잃었어.”
“잃었다고요?”
“죽었다는 말이야.”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 할머니는 무척 슬펐겠네요.”
“그래, 그 할머니뿐만이 아니야.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화재 때문에 가족을 잃었어.”

“여기까지 말한 후 어머니는 한동안 다른 곳, 내 얼굴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걸 알 수 있었다. 가끔 그런 식으로 어머니는 다른 어딘가 자신만의 세계로 떠나버렸다. 하지만 언제나 어머니는 내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 사람들은 죽은 가족 대신에 개를 키우는 거야. 내 말 알아듣겠어?”

“그럼, 우리 가족은 아무도 잃지 않았어요?”

그 당시 나는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어쨌든 그래도 그 질문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런 비극에서 비껴 나갔다는 씁쓸하지만 달콤한 안도감도.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질문의 핵심은 아주 순수하게, 우리 가족 중 아무도 죽지 않았기 때문에 개를 키울 수 없었냐는 것에 있기도 했다.

“아니야, 엄마가 지금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거야. 우리 가족 중에도 죽은 사람이 있다는 거. 네가 태어나기 전에 너에겐 오빠가 있었어. 그런데 너희 오빠가 그때 불이 났을 때 죽었단다.”

어머니는 이제 ‘죽었다’는 표현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그 누구에게도 화재와 죽은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다른 가족, 그러니까 아버지에게조차.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 되리라고 하면서. 하지만 어머니는 가끔 화재에 대한 이야기는 꺼낼 때가 있었다. 그건 보통, 어머니가 내게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을 때마다 사용되는 주제였다. 결국 어머니도 더 이상 화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게 되었는데, 대신 이런 단어를 사용했다.

고통의 균질화.

우리를 살게 하는 건 ‘고통의 균질화’라고. 우리 모두 다 함께 고통받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계속 살게 하는 거라고. 하지만 언젠가 어머니와 내가 뉴스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걸 보게 된 이후로 어머니는 더 이상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내가 결혼을 한 후 어머니는 이렇게만 말했다.

“지금의 너를 봐, 넌 얼마나 행복하니?”

하지만 그 당시, 일곱 살의 내게는 어머니가 말해준 사실 중 그 무엇도 진짜 있었던 일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심지어 나에게 오빠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오빠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는 사실 역시 실감 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아마도 나를 그렇게 울게 만든 건, 누군가의 죽음이 슬퍼서였다기보다는 부모님이 무언가에 실패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다른 부모님은 실패하더라도 내 부모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그러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나는 한동안 울기만 했다.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나를 달래듯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절대로 엄마가 너를 잃는 일은 없을 거야. 엄마가 맹세할게.”

그렇게 말을 한 어머니는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내 작은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나는 곧 울음을 멈추고 딸꾹질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물을 가지고 오겠다며 나를 방에 혼자 남겨놓았다. 어머니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부엌문을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윽고 어머니가 물을 가지고 돌아왔고, 우리는 함께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나는 약하게 딸꾹질을 하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런데, 엄마, 왜 우리 집에서는 개를 키우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문장을 끝맺기도 전에 나는 그게 그릇된 질문, 불경한 질문이라는 걸 어렴풋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탓하거나 하지는 않고 오히려 내 질문에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엄마는 네가 내게 올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개는 필요 없었단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안아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 손보미 소설가
  • 〃 작가소개 〃

    손보미소설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담요」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있다. 2012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3~2015년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으며, 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제21회 김준성문학상, 제2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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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2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