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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라, 일확천금의 꿈! 조선의 금광

노려라, 일확천금의 꿈! 조선의 금광노려라, 일확천금의 꿈! 조선의 금광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의 마음을 뛰게 한 것은 바로 금은보화, 보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땅 속에 묻혀있던 귀금속을 찾아내어 부자가 되는 것도 수많은 사람의 로망이었지요.

당연히 조선시대 사람들도 부자가 되는 걸 좋아했습니다.
금과 은은 몹시도 비쌌고요. 또한 한반도에서도 황금 광산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금광은 금점(金店)이라고 했습니다.

부르는 게 값이었던 금, 하지만 금광은 없었다?

노려라, 일확천금의 꿈! 조선의금광

조선 초기 금과 은의 가격은
금 한냥이면 면포 30필을, 은 한 냥이면 면포 2필을 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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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시대 금은광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중국 때문입니다.

조선은 매년 황금 150냥, 백은 700냥을 명나라에 공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부담이 컸던 조선은 "나라에 금은이 안 난다!" 라고 끈질기게 주장해서
1429년 마침내 공납을 없애고 광산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노려라, 일확천금의 꿈! 조선의금광

금, 은광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금과 은을 캐려면
많은 시간과 인력이 동원되고 번거로웠습니다.

당시 광물을 국가가 채취하면 공채(公採), 개인이 캐면 사채(私採)라고 했는데,
조선은 사채를 엄격하게 금지했고, 아예 광산을 폐쇄해버리기도 했습니다.

금이 없다면 수입해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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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금이 필요하면 어떻게 하느냐?
수입해다 썼습니다!

1475년 기준, 이미 수입 금은 조선 국내 생산량의 3배에 달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수입금은 바로 일본산이었는데,성종 시기 일본에서의 황금 수입량은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흥청망청 연산군, 금광 개발에 도움을 주다!

노려라, 일확천금의 꿈! 조선의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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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조선의 황금 생산량은 차츰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반대로 광산 개발에 힘을 기울인 임금이 있으니 바로 연산군입니다.

흥청망청 사치에는 금은이 필수였거든요!

그래서 매년 금 200냥씩을 펑펑 써댔고 부족하자 광산을 찾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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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함경남도 단천에서 막대한 은광이 개발됩니다.

한때 질 좋은 은을 ‘단천은’이라고 하고 중국에 수출될 만큼 크게 각광을 받았지만
이 사실이 중국에 알려질까 걱정한 조선은 광산을 일부러 폐쇄하기도 했습니다.

노려라, 일확천금의 꿈! 조선의금광

조선의 금은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1864년 대원군이 파탄이 난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광산의 채굴권을 외국에 팔아 넘기면서 였습니다.

영국, 독일, 러시아 등이 조선의 금과 은을 엄청나게 파냈습니다.

황해도 수안광산은 1905년 영국에게 채광권이 넘어갔고,
1932년 즈음에는 연간 134,951kg의 금이 생산되었습니다!

팍팍해지는 삶, 금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노려라, 일확천금의 꿈! 조선의금광

그러다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집어삼키면서
조선의 모든 광산들은 일본의 소유로 넘어가게 됩니다.

곧이어 이어진 전쟁으로 금값이 폭등하게 되고,
조선사람들은 집의 벽을 허물고 콩밭을 파헤치며 황금을 찾으려 들었습니다.

노려라, 일확천금의 꿈! 조선의금광

하지만 그 많은 수고에도 황금 부자는 나오지 않았으니...
일확천금이란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 이한 작가

역사 이야기로 글 쓰고 책 쓰는 사람.
조선기담, 요리하는 조선남자, 조선왕조실톡(해설)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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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2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