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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치솟는 집값, 나라가 어찌할 소냐?

하늘로 치솟는 집값, 나라가 어찌할 소냐? 하늘로 치솟는 집값, 나라가 어찌할 소냐?

쉬지도 않고 오르기만 하는 집값,
‘조금만 더 과거에 태어났더라면…’ 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 않나요?

그런데 웃지 못할 사실 하나,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 때문에 골치를 썩었던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오늘날보다 더 심했던 집값문제?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서울)이 수도로 지정된 이래 600년.
그 동안 서울 집값은 떨어지는 일 없이 계속 올랐습니다.

오늘날보다 더심했던 집값문제

조선 초기의 서울(한성)은 남대문-동대문-북대문-서대문으로 둘러싸인 곳만을 말했고,
넓이는 대량 400만 평방미터, 여의도 크기의 절반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공부하러 온 사람, 일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좁은 땅에 자꾸만 사람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주택 문제가 심각해졌죠.

오늘날보다 더심했던 집값문제

집값, 얼마나 올랐을까!?

‘조선 시대에 집값이 올라봤자 아냐?’ 하지만 당시 집값 상승은 오늘날에 절대 뒤지지 않았답니다.
한성부 장통방(지금의 종로 3가 근처)에 있던 집값 상승을 본다면 1690년에 160냥이던 집이 1870년에는 무려 2600냥이 됩니다.

한성부 중부 장통방 가옥매매

1760년 기준 당시 1냥이 10만 원 ~ 100만 원 정도였다니
얼마나 가격이 올랐는지 가늠이 되나요?

조선시대에도 부동산 정책이 있었다!

무섭게 올랐던 조선 시대 집값.
가난한 사람들은 감히 서울에서 집을 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남의 집을 빌리거나 산 밑, 도로변, 개울가 등에 불법 가옥을 짓고 살았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조선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각종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는데요.

조선시대 부동산 정책

01 신도시 성저십리

먼저, 기존의 남대문-동대문-북대문-서대문 안에만 해당하였던 한성부를
사대문 바깥으로 넓히고 ‘성저십리’라 명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신도시를 설립한거죠!

신도시 성서접리

조선시대 부동산 정책

02 집넓이 제한

당시 부유층들은 서울에 큰 집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집이 부족한 판국에 이는 너무나도 부당한 일이었죠.

그래서 경국대전에서는 신분에 따라 집의 크기를 7등급으로 나눠
가당치 않게 집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집넓이 제한

1,170평이라니!

하지만 이 법도 나름 땅이 남아돌던 조선 초기에만 해당하였고,
나중에는 대군이나 공주도 50% 삭감된 15부만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주택문제가 심각했던 거지요!

집넓이 제한

조선시대 부동산 정책

03 위장전입 금지

조선시대 지방에서 올라온 관리들은 서울 백성들의 집을 빌려 살았는데,
신분 차이를 악용해서 집이 부서지고 망가져도 나 몰라라 하거나 심지어 집을 뺏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위장전입 금지

그래서 조선시대 영조는 아예 민가를 사들이거나 세를 드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
이를 어기면 벌금은 물론 과거를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관리들이 집이 아닌 천막을 치고 사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고 합니다.

위장전입 금지

굳세어라 대한민국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도
내려갈 줄 모르고 계속해서 올라왔던 서울의 집값.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서민들은 집값 걱정에 한숨을 쉬었네요.

우리는 언제쯤 집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굳세어라 대한민국
글 / 이한 작가

역사 이야기로 글 쓰고 책 쓰는 사람.
조선기담, 요리하는 조선남자, 조선왕조실톡(해설)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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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0-2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